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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원 vs 대구경북의원 ‘신공항 기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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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부산 가덕도, 경남 밀양 ‘염두’…‘동남권 신공항’ 좌초되자 지역여론 달래기용?

7월 2일 국회 본회의장. 새누리당 김정훈 의원(부산 남갑)이 본회의장에서 한 제정법률안을 들고 지역의원들을 대상으로 서명을 받으러 다녔다. 김 의원이 들고 있던 법안은 ‘부산국제공항공사법 제정안’. 이 법은 신공항을 부산 가덕도에 건설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유승민, 조원진 의원 등 대구·경북 의원들은 발끈했다. 일부는 “우리 허락도 안 받고 회람을 돌리면 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해공항의 이전이냐, 새로운 신공항 건설이냐. 새누리당 영남권 뇌관인 ‘신공항’ 논란이 재점화됐다. 부산 의원들이 7월 16일 ‘부산국제공항공사법안’을 제출했다. 그러자 대구·경북 의원들은 이날 오후 기다렸다는 듯이 ‘남부권국제공항공사법안’으로 맞불을 놨다. 한 발 더 나아가 남부권신공항을 빨리 짓자며 ‘남부권신공항건설촉진법안’도 냈다.

부산 김정훈 의원, 대구 주호영 의원 주도
부산 의원들은 지난 4·11 총선을 앞두고 “19대 국회가 개원되는대로 신공항을 재추진할 것”이라고 지역민들에게 약속했다. 5월 29일에는 부산상공회의소가 ‘김해공항 가덕 이전 범시민운동본부’와 공동으로 부산상의 상의홀에서 시민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정훈 의원은 부산국제공항법 제정방안을 공개하기도 했다.

17일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장이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육정책에 관한 생각을 밝히던 도중 신공항 문제에 대한 견해를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17일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장이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육정책에 관한 생각을 밝히던 도중 신공항 문제에 대한 견해를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부산국제공항공사법은 한 마디로 부산 가덕도에 신공항을 짓자는 얘기다. 한국공항공사가 운영하는 김해국제공항을 떼내어 주식회사형 공사인 부산국제공항공사로 전환하고 이 공사가 자체적으로 공항 건설을 추진하면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민간자본을 많이 유치해 정부 부담을 줄여주면 정부나 다른 지역도 반대할 명분이 적을 것이라는 속내가 깔려 있다. 김정훈 의원은 “금융권 차입과 채권 발행 등으로 50~60% 자본조달을 하고 나머지 40~50%를 국비로 조성하면 된다”면서 “공항 활주로를 하나로 할 경우 사업비가 5조원이면 되고 국비도 2조원 정도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정치권과 부산시는 이명박 정부에서 동남권 신공항 건설이 좌초되자 전략을 수정했다. 새로운 공항을 건설하자는 게 아니라 기존 김해공항을 이전하자는 명분을 내세웠다. 부산권 내에 있는 공항을 부산권 내로 이전하는 만큼 가덕도로 가든 어디로 가든 다른 시·도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를 댔다. 부산국제공항공사법에는 지역은 언급돼 있지 않지만 부산 정치권은 가덕도를 적지로 보고 있다.

대구·경북 정치권도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대구시당위원장인 주호영 의원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남부권신공항 법안을 마련했다. 수도권에 대응하기 위해 영호남과 충청권이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대형 국제공항이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지역은 명시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경남 밀양을 염두에 둔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해석하고 있다.

두 법안이 동시에 국토해양위원회에 제출되면서 여론의 지지를 받는 것이 중요해졌다. 양측은 법안 발의 과정에서도 기싸움을 벌였다. 부산국제공항공사법은 20명이 서명을 했다. 부산에서는 새누리당 의원 16명과 민주통합당 조경태 의원이 서명했다. 경남에서는 김성찬 의원(경남 창원·진해)이, 무소속은 김한표 의원(경남 거제)이 서명에 동참했다. 선진통일당 김영주 의원(비례대표)도 발의자 명단에 들어갔다. 민주당 문재인 의원(부산 사상)은 서명에 참여하지 않았다. 서병수 사무총장, 유기준 최고위원 등 새누리당 고위당직자와 지도부도 서명에 참여했다.

김성찬 의원과 김한표 의원이 서명에 참여한 것은 신공항이 부산 가덕도에 건설되는 것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가덕도는 창원시와 진해시에 인접해 있고 거제도도 거가대교가 있어 접근이 매우 용이하다. 또 신공항 건설 이후 관련 직원들이 거주할 곳도 진해·거제가 될 가능성이 커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부산 출신의 선진통일당 최고위원인 김영주 의원이 동참한 데 대해서도 부산 의원들은 의미를 크게 두고 있다. 충청권 지원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부산광역시 청사 외벽에 ‘김해공항 가덕 이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적힌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 권기정 기자

부산광역시 청사 외벽에 ‘김해공항 가덕 이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적힌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 권기정 기자

대구·경북 정치권이 발의한 남부권국제공항공사법에는 22명이 서명했다. 22명 중 21명이 대구·경북 의원들이다. 타 지역구 의원으로는 조해진 의원(경남 밀양)이 유일하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서명에 동참하지 않았다. 다만 서명자 중에는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 캠프에 참여한 최경환 의원을 비롯, 김재원·유승민 의원 등 힘있는 친박인사들이 대거 포함됐다. 영향력을 보자면 부산 쪽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의미다.

상정되더라도 여론 팽팽할 경우 폐기 가능성
김정훈 의원 측은 “원래 김해공항이 좁아서 넓은 데로 옮기겠다는 것인데 신공항 건설이라고 하니 마치 새로운 공항을 짓는 것처럼 콘셉트가 처음에 잘못 세워졌다”면서 “대구 측 논리대로라면 기존 부산에 있는 공항을 다른 지역으로 내놓으라는 것인데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호영 의원 측은 “사무총장과 최고위원이 서명에 참여한 것은 신공항을 정치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며 “우리는 남부권신공항이 필요하니 공사를 빨리 촉진하고 이에 합당한 공항공사를 만들자는 것으로, 건설 적합지 선정은 전문가에게 맡기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요란하게 제출됐지만 두 법안은 상정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국토해양위 새누리당 간사인 강석호 의원(경북 영양·울진)이 두 법안을 대선이 끝날 때까지 계류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대선 이후 설사 상정되더라도 여론이 팽팽할 경우 둘 다 폐기될 수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새누리당 부산 의원과 대구·경북 의원들의 관련법 제출에 대해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지역 여론을 달래기 위한 보여주기식 쇼가 아니냐는 것이다.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은 부산과 대구·경북의 갈등에 대해 원론적인 답변을 하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은 올 초 ‘남부권 신공항’ 발언을 했다가 부산지역의 반발을 일으켰던 악몽이 있다. 그는 7월 19일 부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제가 대선 공약으로 만들어서 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며 “그런데 이것이 갈등의 씨앗이 되는 것은 굉장히 불행한 일로 제대로 추진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분들이 수긍할 수 있다, 힘을 모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났을 때 추진해야 한다”며 “(신공항 건설은) 제가 확실하게 실천하겠다는 약속을 또 한 번 드린다”고 말했다. 건설은 하는데 어디에 할지는 모르겠다는 얘기다.

또하나의 변수는 민주당이다. 민주당이 대구·경북보다는 부산·경남에 집중하고 있는 만큼 가덕도 신공항에 전략적으로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상임고문은 새누리당 부산 의원들의 부산국제공항공사법 발의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내심 가덕도 신공항에 마음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는 경남지사 시절 밀양 유치에 무게를 뒀다.

<박병률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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