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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 정권의 고삐 풀린 우경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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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적 자위권 개정, 센카쿠 열도 국유화 등 언급… 지지율 회복 위한 정치용 해석에 ‘무게’

일본 정부가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기존의 헌법 해석을 뒤집고, 유사시 전쟁에 개입할 수 있도록 조항을 변경하고자 하고 있다. 본래 집단적 자위권이란 자국과 동맹관계인 외국이 무력공격을 받을 경우,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여 군사개입할 수 있는 조항이다. 일본은 미국과 미·일동맹을 맺고 있으며, 따라서 미국이 공격을 받을 경우에 자위대의 전투 개입이 가능해진다. 가까운 예를 들자면, 한국 내 미군기지가 북한이나 중국의 공격을 받을 경우, 일본은 한반도 분쟁에 자동개입할 수 있다.

국익우선 교육받은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
일본의 평화헌법 9조 1항에 따르면,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하고 국가의 교전권을 포기한다’고 되어 있다. 2항에는 ‘제1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기타 군사력을 보유하지 않는다’라고 적고 있다. 현재까지 일본 정부의 헌법 해석은 일본이 직접적인 무력공격을 받는 경우에만 군사력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되어 있다.

6월 3일 일본 자위대가 아오모리현 아오모리 시내에서 창립 50주년 기념식을 개최한 뒤 군사행진을 벌였다. | 연합뉴스

6월 3일 일본 자위대가 아오모리현 아오모리 시내에서 창립 50주년 기념식을 개최한 뒤 군사행진을 벌였다. | 연합뉴스

일본에서 집단적 자위권 해석 변경은 우파들의 숙원이었다. 헌법개정과 국제분쟁 개입, 자위대의 국방군화, 방위산업 육성과 무기수출, 심지어 핵무장론에 이르기까지 매일 매스컴에 그런 부류의 주장이 실리고 있다. 자민당 정권기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북한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그리고 중국의 군사대국화에 대항하여 일본도 헌법을 개정하고 집단적 자위권을 보유할 것을 주장하였다.

문제는 최근 들어 민주당 정권 내 우파정치인들이 이런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芳彦) 총리 자신이 7월 9일 국회에서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헌법 해석 변경을 검토하겠다고 언급하였다. 이미 본인은 2009년 출판한 책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회복하여 자위대를 해외파병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아니나 다를까 6일 일본 정부의 국가전략회의 산하 지식인회의 프런티어 분과회가 보고서에서 집단적 자위권의 해석 변경을 제안하자, 노다 총리는 이에 맞장구치는 발언을 하고 나선 것이다.

일본 정부는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서도 자위대가 테러조직에 의하여 공격받을 경우에 보다 적극적으로 군사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법안을 바꿀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미·일 3각동맹에 매달리는 이명박 정부와 서둘러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맺고자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중국과 북한의 위협, 영토분쟁, 민주당 분열 등의 국내외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일본 내 우파정치가와 방위성, 외무성 관료들이 일본의 재무장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일본 민주당은 1998년 창당 이래 몸집을 불리고자 진보파뿐만 아니라 우파정치가까지 대거 받아들였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나 겐바 코이치로(玄葉光一郞) 외상 둘 다 대기업 위주, 국익 위주의 교육을 철저히 받은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이다. 겉으로는 국제파로 불리나 실제로는 우파나 매파로 분류된다. 아시아연대, 역사인식보다는 국제정치의 현실에 바탕한 국익 우선을 강조하는 그룹이다. 특히 노다 총리는 일본 내에서도 잘 알려진 골수 보수파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이나 전후 반성에 양보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겐바 외상도 영토문제에서는 자민당보다 더 우파에 속한다.

일본 매스컴은 최근 들어 영토문제와 역사문제를 더욱 빈번하게 보도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센카쿠 영토는 일본이 먼저 분쟁을 조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극우파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가 개인소유로 되어 있는 센카쿠 열도를 도쿄도에서 구매하자는 모금운동을 벌여서 무려 13억엔(한화 약 186억원)이나 걷혔다. 노다 총리는 이에 발맞추어 아예 일본 정부가 사들여서 국유화하겠다고 밝혔다.

노다 총리의 발언에 대하여 중국과 대만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 관계자는 중국의 주권지대임을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군사연습구역이나 실탄사격장을 설치해야 한다는 강경론까지 나온다. 가을에 공산당 대회를 앞두고 있는 중국 정부로서도 국내 여론상 양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올해 중·일 국교정상화 40주년을 무색케 할 정도로 사사건건 대립하는 양국관계는 보기에도 딱하다. 마잉구 대만 총통도 주권 양보는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못박았다. 잘 나가던 일본-대만관계도 찬물이 끼얹어지면서 일본과 대만 간 어업협정 교섭 재개도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지지율 낮아 헌법해석 변경 쉽지 않을 듯
일본 자민당이 선거를 앞두고 우파 결집을 위하여 자주 사용하던 방법을 이제는 민주당 내 우파인 노다 총리가 전용하고 있다. 노다 총리에 대한 지지율은 25%에 불과한 반면, 반대하는 비율은 58%에 달한다. 게다가 소비세 증세를 둘러싸고 노다 총리를 자민당 2중대로 간주하는 오자와 이치로(小澤 一郞)전 대표는 반대표를 던지고 아예 탈당하여 약간 이름이 긴 ‘국민생활이 제일인 정당’을 창당하였다. 금년 내에 해산, 총선거시 민주당이 참패할 확률이 아주 높다.

노다 정권은 이미 추락한 인기를 회복할 재료가 그리 많지 않다. 우선 당장 센카쿠 열도 국유화로 단기적인 정권 부양을 노리고 있다. 우파세력을 결집시키거나 다음 선거에서 캐스팅보트를 휘두를 하시모토 도루(橋下徹)시장의 오사카유신회와 손잡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차기 총리 후보감인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 역시 극우파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를 초청하여 강연까지 시킬 정도이다. 그러나 민주당 내 자위대 해외파병에 대한 신중론자들이 많고 지지율도 낮은 노다 총리가 무리하게 헌법 해석을 변경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차기 총선 후 자민당을 비롯한 보수 정당과의 연립용 재료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일본 국내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과 자민당 간 연립정권을 선호하는 비율이 36%로 가장 높은 편이다.

미국은 중국과의 파트너십을 강조하면서도 국제규범과 외교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최근 매년 군사비 지출이 증가하고 있는 중국이 대양해군을 지향하면서 서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것에 대하여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중국 정찰용으로 무인정찰기 드론을 배치하고 오스프레이 최신형 수송기를 오키나와 기지에 배치할 예정이다. 중국의 군비증강과 영토분쟁,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이유로 일본은 미·일동맹 강화, 대중 적극 견제에 나서고 있다. 최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아세안 외상회의에서도 일본은 남지나해에서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아세안과 결합하여 법적 구속력이 있는 행동규범을 수용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아세안, 일본과 협력하여 중국을 몰아붙이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군사대국화, 북한 미사일에 반발하는 일본은 역사적 반성이나 국제협력보다는 영토 갈등이나 자국 이익이라는 단기적인 시야에 매몰되어 있다. 민주당 내에서 비교적 진보그룹이었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의 동아시아 공동체 주장이나 간 나오토(菅直人) 전 총리의 2010년 강제병합 100년에 대한 사과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자민당인지 민주당인지 헷갈릴 정도로 민주당 우파는 본래 매니페스토는 완전히 포기한 채, 소비세 증세, 원자력발전 재개, 대중 견제와 미·일동맹 강화, 영토분쟁과 역사인식 후퇴로 일관하고 있다. 오죽하면 우파 산케이신문에서조차도 단타식 정책 결정에만 매달리는 노다 총리의 철학과 비전 부재를 한탄하고 있을까.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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