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 영화가 진실규명의 불쏘시개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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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참사 다큐 <두 개의 문> 김일란 감독… 경찰의 시선으로 보고싶었다

6월 21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은 용산 참사를 다룬 영화다. 용산 참사를 다룬 영화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용산>, <마이 스윗 홈>, <용산 남일당 이야기>,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등 용산 참사를 다룬 작품들은 이미 여러 편 제작됐다. <두 개의 문>은 극장에서 정식으로 개봉하는 첫 작품이면서 피해 당사자인 철거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가해 당사자인 경찰특공대의 시선으로 참사의 진실을 재구성한 최초의 시도다.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시선을 뜯어보고 있다는 점에서 <두 개의 문>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전달하며 정의를 호소해온 독립 다큐멘터리의 전통적 접근법에서 어느 정도 비켜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에는 사망한 철거민의 유족이나 철거민들의 인터뷰가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는 경찰특공대의 진술 및 법정 증언과 1월 19일부터 사건 당일인 20일 새벽 사이에 전개된 상황을 교대로 보여주며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용산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영화가 왜 철거민이 아니라 경찰특공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일까.

<두 개의 문>을 공동 연출한 홍지유(왼쪽)·김일란 감독. <두 개의 문>은 용산 참사의 진실을 경찰 채증영상, 인터넷 독립방송 활동가들의 영상, 경찰 진술 및 법정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한 다큐멘터리다. | 정원식 기자

<두 개의 문>을 공동 연출한 홍지유(왼쪽)·김일란 감독. <두 개의 문>은 용산 참사의 진실을 경찰 채증영상, 인터넷 독립방송 활동가들의 영상, 경찰 진술 및 법정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한 다큐멘터리다. | 정원식 기자

12일 만난 김일란 감독은 “그간 한국 사회는 약자가 어떤 방식으로 억울한 일을 당했는지 말하는 데는 사회적 경험이 많이 축적돼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피해자를 순결한 희생자로 만드는 접근법은 진실을 드러내는 데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라고 말했다.

투입 경찰들 현장정보 충분히 못들어
공동 연출자인 홍지유 감독은 피해자에게 초점을 맞췄을 때 가해자가 추상화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흔히 어떤 사건에서 가해 당사자를 다루는 방식은 국가권력이나 재벌처럼 거대하고 막강한 힘들을 겨냥하는 것입니다. 

저희는 국가폭력을 수동적으로 행하는 사람, 가해행위를 직접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주목했어요. 진압에 투입된 경찰들 개개인이 바로 그들이죠. 그들이 왜 그날 현장에 있어야 했는지, 그리고 사건 이후에 그들의 행위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말해지는지를 다루지 않는 한 가해자는 저 멀리 있는 힘일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가 누구를 당사자로 호명할 것인가에 있어서 진압경찰들 개인을 호명해내지 않으면 추상적인 문제 설정을 넘어서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구체적인 가해 당사자를 조명함으로써 영화는 당시 경찰 진압이 얼마나 성급하게 결정되고 허술하게 수행됐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진압에 투입된 경찰특공대원들은 법정에서 “망루의 구조나 철거민들이 위험물질을 얼마나 소지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 들은 바가 없다”고 진술한다. 김형태 변호사가 증인신문에서 말한 것처럼 “(농성 54일 동안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고 진압에 나선 세교지구에서와 달리) 여기는 망루를 짓기도 전에 출동 지시가 특공대에 떨어지고, 특공대 입장에서도 그 안의 정보를 파악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진압 현장은 아수라를 방불케 했다. “시너가 물과 혼합이 되지 않아서인지 옥상 위로 가득한 물 위로 불길이 이리저리 떠다녀 비좁은 옥상에서 많은 직원들(경찰들)이 화염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중략) 유독가스와 화염에 휩싸여 고통을 호소하는 상황은 생지옥과 비교될 정도였습니다.”

사전 정보 없이 혼란스러운 현장에 투입된 특공대원들은 두려움에 떨거나 그럼에도 불구, 임무 수행을 위해 용기를 내는 등 인간적으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경찰에 대한 연민일까. 홍지유 감독은 분명한 선을 그었다. “현실에서는 경찰에 대한 적개심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의 문제에서는 경찰 개개인을 상식을 지키는 시민으로 호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그 조직의 변화가 가능할 테니까요.”

철거민 유족들은 “왜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경찰의 이야기를 했느냐”는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옳은 선택이었다. “유족들도 영화를 다시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전재숙씨(고 이상림씨 유족)가 ‘우리가 아무리 정당하다고 말을 해도 철거민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듣지 않는데, 경찰들도 이렇게 힘들었다고 말하면 우리 주장에 동의할 거 같다. 경찰이 봐도 동의할 수 있게 만든 것 같다’고 말했어요. 자칫 오해가 있을 수도 있었는데, 그게 참 감사했습니다.”(김일란 감독)

영화를 본 일부 경찰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홍지유 감독은 “온라인 상에서 경찰 신분을 밝히고 연락처를 남긴 분을 만난 적이 있어요. 기존 다큐와 다른 방식을 취한 걸 보고 놀랐다고 하더군요. 경찰이 어떻게 투입돼 현장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담긴 걸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해요. 무리한 진압이었고 유사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경찰 내부에도 존재한다고 하더군요”라고 말했다.

경찰을 기계적으로 하청폭력을 수행하는 ‘조직’이 아니라 갈등을 품고 있는 ‘인간’으로 보여줌으로써 특공대원 또한 피해자일 수 있다는 걸 암시하지만, 영화가 가해자의 존재를 숨기는 것은 아니다. 영화 도입부에 ‘무관용’을 강조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뉴스 보도 영상이나 참사 직전 김석기 경찰청장 임명 뉴스 보도 영상을 배치한 것은 누가 이 참사를 책임져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명확한 지표다.

경찰도 갈등 품은 인간으로 보여줘
두 사람은 지난 2002년 여성주의와 성소수자의 시각으로 인권문제를 다루는 문화운동단체 ‘연분홍치마’에서 처음 만나 함께 활동해 왔다. 용산 참사 직후에는 남일당 건물 레아호프에서 다른 장르 예술가들과 함께 ‘용산 이후’를 기록하는 작업을 했다. 두 사람이 <두 개의 문>을 기획한 것은 2009년 8월 법정 공판을 지켜보면서다. “화재 원인이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재판 결과는 철거민 6명이 실형을 선고받는 것으로 나왔어요. 저희는 법정에서 경찰특공대원들이 그날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김일란 감독) 홍지유 감독은 “판결문을 마주했을 때 우리 시대가 유지하고 있는 상식이 이 정도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희가 법정에서 녹음한 특공대원들의 진술을 어떤 식으로든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덧붙였다.

두 감독은 이 영화가 진실 규명의 사회적 불쏘시개가 되기를 바란다. “야구에서의 적시타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이 정권 들어서 용산, 쌍용차, 유성기업, 한진중공업 등 극단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시 용산으로 돌아가서 이런 흐름을 바꾸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용산 참사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진실이 규명되지 않는 데 대한 자괴감을 느끼는 분들도 있지요. 그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이 영화를 통해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문이 열리기를 바랍니다.”(김일란 감독).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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