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에 담긴 격동의 역사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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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북한이 발행한 ‘해방 1주년 기념우표’에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김일성 초상과 무궁화 문양이 그려져 있다. 대한제국 이래 이어진 국기와 국화를 채택함으로써 남북통일정부 수립을 목표로 한다는 허울을 대외적으로는 선전한 셈이다. 북한은 ‘해방 5주년 기념우표’를 2개월 앞당겨 1950년 6월 20일 발행했다. 전화에 휩싸인 남한은 매년 발행하던 해방 기념우표를 이 해에는 하지 못한다. 북한이 해방 기념우표를 미리 낸 것은 남침을 계획하고 전쟁 중에는 발행이 어렵다는 계산을 한 결과가 아닐까.

1954년 9월 한국은 독도를 소재로 한 보통우표를 발행했다. 1951년 1월 이승만 대통령의 ‘평화선’ 선포와 그해 10월부터 1953년 10월까지 국교정상화 교섭 과정에서 증폭된 한·일 갈등사를 이 우표가 대변하고 있다. 일본은 독도우표가 붙은 우편물을 받지 않겠다고 공표했으나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만국우편연합(UPU) 규정을 어길 수 없어 독도우표에 먹칠을 해서 배달하는 편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대로 배달된 경우도 상당수였다.

나이토 요스케, <우표로 그려낸 한국 현대사>

나이토 요스케, <우표로 그려낸 한국 현대사>

1955년과 1956년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생일(3월 26일) 기념우표가 발행됐다. 히틀러의 나치, 김일성·김정일의 북한,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등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 1954년 사사오입 개헌과 1956년 3선 달성으로 종신 집권을 꾀하던 이승만 정권의 개인숭배 작업의 절정감을 과시한 것이었다.

1962년 발행된 ‘5·16혁명 1주년 기념우표’는 그해 기공식을 가진 울산공업단지를 형상화한 디자인이었다. 박정희 군사정부는 장면 내각이 책정해 두었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이어받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2~1966)에 착수했다. 이 기간에 매년 2종류씩, 총 10종의 이와 관련한 특별우표를 발행했다. 발전소와 철탑/저수지와 벼(1962), 채탄자와 탄광부/공장과 시멘트 포대(1963년), 원양어업과 생선/정유공장과 드럼통(1964), 비료공장과 벼와 비료 포대/화물선과 컨테이너(1965), 동아시아 지도와 여객기/안테나와 전화기(1966) 등을 담은 것이었다. 우표의 내용만 보더라도 어떤 분야에 역점을 두고 경제개발을 추진했는지 알 수 있다.

1973년 12월 10일 인권의 불꽃을 바라보는 사람의 옆모습을 그린 ‘세계인권선언 25주년 기념우표’가 발행된 것은 웃지 못 할 역사적 아이러니다. 박정희 정권은 1972년 10월 유신쿠데타를 감행하고 이듬해 8월 김대중 납치사건을 저질렀다. 대학가에 시위가 불붙고 재야에서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이 시작됐다. 박 정권은 1974년 1월 8일 긴급조치 1호를 발동, 헌정사에서 가장 암울한 긴급조치 시대의 막을 열었다. 당시 한국의 상황은 어느 모로 보나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이 존중되고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이상은 한 일본인의 눈으로 본 한국 현대사의 몇 장면이다. 우편학자이자 우편수집가인 나이토 요스케(內藤陽介)가 쓴 <우표로 그려낸 한국 현대사>(한울)에 나오는 내용이다. 저자는 1945년 미 군정기부터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까지 발행된 우표를 통해 한국 현대사 60여년을 조명하고 있다.

우표는 우편요금 선납증지로서 국가의 이름으로 발행되기 때문에 ‘국가미디어’의 성격을 갖는다고 그는 주장한다. 우표를 발행하는 정부가 그것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정통성과 정책, 이데올로기 등을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얘기다. 이런 인식을 토대로 그가 우표에 담긴 격동의 한국 현대사 181개 장면을 스토리텔링하듯이 유연하게 펼쳐놓은 것이 놀랍다. 우표는 가장 작은 공간에 농축해놓은 훌륭한 역사책이라는 점을 새삼 일깨워주는 저작이다.

<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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