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리더 없는 ‘8인의 친박(親朴)’ 한계는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권력쏠림 경계하는 박근혜식 인사… 갈등 조정자 없어 내부 균열 ‘리스크’

인사(人事)는 만사라는 말이 있다. 정치권은 더 그렇다. 최근의 잘 된 예는 4·11 총선 때 신당 창당이 예견됐던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백의종군한 것이다. 불출마 도미노를 막고 과반 확보를 견인했다. 나쁜 예는 아껴 쓰던 보좌관의 각종 비리의혹으로 그 모습도 쓸쓸히 퇴장한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이다. 요즘 여의도 정가에서는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6선의 ‘정치 어른’을 이야기하는 이가 없다.

최근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인사 스타일이 회자된다. 누굴 믿고 어떻게 쓰고 대하는지, 그의 인사 스타일이 대권가도에서 먹힐지를 놓고서다.

(왼쪽)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 | 강윤중 기자 (가운데)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 | 김석구 기자 (오른쪽) 새누리당 서병수 의원. | 박민규 기자

(왼쪽)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 | 강윤중 기자 (가운데)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 | 김석구 기자 (오른쪽) 새누리당 서병수 의원. | 박민규 기자

박 전 위원장은 항상 인(人)의 장막에 싸여 있다는 말을 듣는다. 여의도 정치권에서 회자하는 ‘친박(親朴) 8인방’이 나쁘게 말하면 ‘장막’이고 좋게 말하면 ‘홍반장’이다. 친이명박계에 밀려 비주류였다가 18대 국회 말미에 주류로 부상한 친박계 중 골수 진성 원조 핵심 친박으로 일컬어지는 인사들인데, 이번에 당직을 맡은 이혜훈 최고위원과 서병수 사무총장, 유승민 유정복 이학재 최경환 의원과 이성헌 이정현 전 의원이 그들이다. 이성헌 이정현 전 의원은 낙선해 원외에서의 역할을 찾고 있다는 것이 조금 바뀐 것일 뿐 박 전 위원장을 위시한 8인방은 무너지지 않았다. 이들은 대권가도에서 조직, 기획 및 전략, 정책, 메시지, 홍보 등의 길목에서 키(key)를 쥔 마스터(master)들로 박 전 위원장이 가장 신뢰하는 집단이다. 박 전 위원장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역할을 분담해 해결하는데, 예를 들어 박 전 위원장이 실언(失言)했을 경우 언론사에 톤 다운(tone down)은 누가, 기자들의 양해를 구하는 것은 누가, 해명서 발표나 상대 진영의 예상 반응과 대응책 마련은 누가, 해명 시기 등은 누가 짠다는 식으로 불란하게 뭉쳤다 헤쳐 모이기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조직·기획 등 분업 확실한 8인방
하지만 이들 사이에 미세한 균열이 일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박 전 위원장의 인사 스타일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뜻인데, 어떻게 쓰는지는 변함이 없지만 누굴 쓰는지는 변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치권 호사가들이 “아껴 쓰는 이들의 부침(浮沈)이 심해지고, 새 인물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친박 내부의 권력지형에도 변화가 나타나는 것 아니냐”고 입을 모으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최경환이냐, 서병수냐를 놓고 벌어진 당 사무총장 인선에서 서 의원이 발탁된 것이다. 발표가 나기 직전까지도 최 의원이 유력시됐고 최 의원 대안부재론이 비등했다. 최 의원은 지난해 말부터 박 전 위원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언론사 출연 등을 기획했고, 공천 과정에서도 어느 정도 입김이 통할 만큼 박심(朴心)으로 통했다. 서 사무총장은 그 직전 ‘친박계 지도부 리스트’ 파문으로 원내대표 출마를 접어 당직과는 거리가 멀어졌다는 말이 회자한 바 있다. 결국 박 전 위원장 아래에서 권력의 균형추가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박 전 위원장이 철저히 막고 있다는 것이다.

핵심 측근이 아닌 새 사람, 즉 범친박으로 분류되는 황우여 당 대표, 18대 국회 초반까지 중립성향이었다가 갑자기 ‘박근혜 경제과외교사’로 등장한 이한구 원내대표, 세종시 정국에서 박 전 위원장과 반대입장을 표명하면서 멀어진 진영 정책위 부의장이 신(新)실세로 회자하는 것도 박근혜식 인사 스타일의 확대로 읽힌다. 대신 박 전 위원장은 서 의원을 대선가도에서 조직과 자금을 지휘할 사무총장에 앉힘으로써 균형을 맞췄다. 서로 경쟁하되 감시도 하라는 의미로 읽힌다.

친박계의 자문 역할을 하고 있는 한 정치권 인사는 박 전 위원장이 ‘권력의 균형(balance of power)’을 가장 중시한다고 했다. 박 전 위원장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트라우마는 크게 두 가지로 긍정적인 것은 ‘균형’이고, 부정적인 트라우마는 ‘배신’이라는 것이다. 이 인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누구에게 힘이 더 크게 실리거나 하면 균형을 맞추기 위해 힘을 나눠주거나 경쟁자를 키우는 식이었다”며 “차지철, 김재규 같은 인물들이 연쇄적으로 뜨고 진 것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학자 스타일 정치인 선호 도마에 올라
박 전 위원장은 알려진대로 철저히 ‘수직적 분할 통치론자’다. 오른팔, 왼팔을 두지 않고 각 분야마다 역할을 주어 같은 계급의 인사를 골고루 쓰는 스타일이다. ‘친박계 좌장’이라 불렸다가 관계가 소원해진 김무성 전 의원이 대표적인 예. 만약 누군가 급부상해 ‘좌장’ 운운 하다가는 뒤로 밀리게 된다. 박 전 위원장도 스스로 “친박계에 좌장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같은 계급의 이들 사이에서 문제가 일어나면 거중조정자 역할을 해줄 인사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대선가도에서 불거지면 박 전 위원장을 괸 기둥 하나가 사라지면서 위험천만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또 좌장이 없으니 이들에겐 올라설 목표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서 호가호위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는 말도 들린다. 박 전 위원장이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박 전 위원장이 학자 스타일을 중용하는 것도 도마에 오른다. 황·이·진·서 지도부가 그렇고, 새로 등장한 안종범·강석훈·이종훈 당선자도 학자이고 학자풍이다. 박 전 위원장은 온화하고 똑똑한 이들을 좋아한다. 정치공학으로 무장한 정치인은 싫어한다는 말도 있다.

김무성 전 의원은 최근 기자와 만나 이런 박 전 대표의 인사 스타일에 대해 “학자는 자기 세상에 갇힌 모습이 강하다. 옆을 안 본다. 통솔력이 약하다”고 한 뒤 “열을 알아도 하나를 이야기하는 것이 정치인이라면, 하나를 알면서도 열을 말하는 것이 학자여서 설화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런 인사 스타일이 성공하겠느냐고 물으니 “미래의 일이니 앞으로 잘 하면 된다”며 말을 아꼈다. 친박 자문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지적한다.

“지금 박 전 위원장의 인사 스타일은 ‘신중현과 엽전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수준이다. ‘엽전’과 ‘위대한 탄생’은 2030세대는 아무도 모른다. 신중현과 조용필 정도만 기억하지. 적어도 ‘서태지와 아이들’ 정도의 인사와 리더십을 발휘해야만 지지세를 확장할 수 있다. 야권은 이미 ‘소녀시대’ 수준 아니냐. 누가 나서도 나머지는 결집해주는 유닛형이다. ”

혹자는 박 전 위원장에게 ‘노자를 업은 공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균형도 좋지만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수직적 리더십의 대표격으로 공동체주의, 국가주의를 중시한 공자가 박 전 위원장이라면 수평적 리더십을 펼치고 다분히 개인주의자였던 노자를 업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지세를 다지는 것보다 넓혀야 할 박 전 대표로서는 49대 51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선은 이 ‘1%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서상현 <매일신문 기자> subo801@msnet.co.kr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