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속가능한 지구’ 외면하는 선진국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세계야생동물기금의 지적대로 선진국 정상들은 20년 만에 열리는 이번 유엔 지속가능개발회의를 외면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달 말 브라질 정부에 회의 참석이 어렵다는 뜻을 밝혔으며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불참을 통보했다.대선을 앞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이번 회의에 참석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수십년 안에 지구의 환경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는 경고들이 잇따라 쏟아져나오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위기를 비롯해 자국 내의 문제들에 매몰된 대다수의 선진국들은 환경오염으로 인한 위기를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청정에너지 개발 속도 역시 가속화되고 있지만 아직은 화석연료를 통한 에너지 생산량에 비하면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5월 3일 두 대의 굴착기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열대림에서 2010년 8월 벌목을 진행 중인 모습을 공개했다. 그린피스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지나치게 많은 열대림지역에서 벌목을 허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수마트라/AFP연합뉴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5월 3일 두 대의 굴착기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열대림에서 2010년 8월 벌목을 진행 중인 모습을 공개했다. 그린피스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지나치게 많은 열대림지역에서 벌목을 허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수마트라/AFP연합뉴스

세계야생동물기금(WWF)은 5월 15일 펴낸 ‘살아있는 지구 보고서 2012’에서 현재 인류의 자원소비 행태로는 2030년이 되면 지구가 2개가 있어도 부족할 지경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가 인류의 활동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또 세계야생동물기금은 현재 수준의 소비활동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당하기 위한 토지와 삼림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구의 크기가 현재보다 1.5배가량으로 커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야생동물기금은 또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로 인해 전 세계의 평균기온은 이번 세기 말이 되면 ‘파멸적인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며 이 같은 현상은 현재진행형이라고 경고했다. 이 단체는 이를 막기 위해 2030년까지 전 세계의 청정에너지 이용률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화석연료 기반 경제체제 위기?
보고서는 1970년대 이후 전 세계의 생물다양성이 28%가량 줄어들었으며 열대지역에서는 60%나 급감했다고 밝혔다. 세계야생동물기금은 세계의 환경과 생물다양성에 관한 보고서를 2년에 한 번씩 발행하고 있다. 생물다양성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전체 동식물 종의 수를 가리킨다.

또 보고서는 소득이 높은 나라들의 생태발자국이 낮은 나라들의 5배에 달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생태발자국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자원을 토지로 환산한 지수로 인간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뜻한다. 생태발자국 지수가 높은 나라들은 카타르,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덴마크, 미국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뿐 아니라 현재의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경제체제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5월 10일 한국을 방문한 사상가이자 미래학자인 제레미 리프킨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은 글로벌녹색성장서밋 개막총회에 참석해 “화석연료를 이용한 경제는 이제 끝물”이라고 경고했다.

리프킨 이사장은 “화석연료 가격은 현재의 세계 경제가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까지 올라갔다”며 “원유 가격이 배럴당 140달러가 되면서 세계 경제가 침체되고 있으며 화석연료로 인해 생물다양성도 위협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2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20%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말 펴낸 ‘OECD 환경전망 2050’ 보고서에서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새로운 정책이 추진되지 않으면 2050년 전 세계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2011년에 비해 50% 증가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이렇게 되면 지구 평균기온도 3~6도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5월 3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숭가이셈빌랑 국립공원의 모습과 벌목 작업이 끝난 후 나무 한 그루만을 남긴 채 파괴된 인근 열대림의 모습을 비교한 사진을 공개했다. 수마트라/AFP연합뉴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5월 3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숭가이셈빌랑 국립공원의 모습과 벌목 작업이 끝난 후 나무 한 그루만을 남긴 채 파괴된 인근 열대림의 모습을 비교한 사진을 공개했다. 수마트라/AFP연합뉴스

게다가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고 있는 나라일수록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도 문제로 드러난 상태다. 독일 비영리 민간기후연구소 ‘저먼워치’가 세계 58개국을 대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배출수준, 기후변화 대응정책 등을 평가한 결과 양대 온실가스 배출국으로 꼽히는 중국과 미국은 각각 57위, 52위를 기록해 최하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55위)와 일본(43위), 지난해 교토의정서 탈퇴를 선언한 캐나다(54위) 등도 순위가 바닥을 맴돌았다. 꼴찌는 사우디아라비아였다. 지난 20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빠르게 증가한 나라 역시 중국(256%)이었고, 두 번째가 인도(179%), 세 번째가 한국(136%) 순이었다.

‘새 국제환경기구 설립’ 목소리 나와
세계야생동물기금 짐 리프 사무국장은 15일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위기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각국 정부는 6월 20~22일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릴 예정인 유엔 지속가능개발회의(리우+20)에서도 환경문제에 있어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리프 사무국장은 “참가국들은 이 같은 지구의 난제에 대처하기 위해 진지하게 나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야생동물기금의 지적대로 선진국 정상들은 20년 만에 열리는 이번 유엔 지속가능개발회의를 외면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달 말 브라질 정부에 회의 참석이 어렵다는 뜻을 밝혔으며,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불참을 통보했다. 대선을 앞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이번 회의에 참석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 현지 언론들은 주요 국가 정상들의 불참으로 녹색경제를 위한 패러다임 구축과 새로운 국제환경기구 창설 등 현재까지 제기된 의제들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1992년 6월 개최된 ‘리우-92’ 이후 20년 만에 개최되는 ‘리우+20’에는 유엔 산하 국제기구들의 수장과 각국 정상, 정부 대표들이 참석한다. 개최 장소는 리우데자네이루 서부 바하다치주카 지역의 리우센트로이며, 전체 참가 인원은 5만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의에서는 녹색경제, 식량안보, 에너지 안보, 물부족, 도시화, 해양오염, 고용창출, 자연재해 대처 등 전 지구적인 도전과제들에 대한 협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현재 유엔환경계획과 환경단체 및 일부 과학자들은 유엔환경계획(UNEP)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국제환경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각국 정부와 비정부기구(NGO) 등이 참여해 세계보건기구(WHO)처럼 기후변화 문제를 전문적이고 지속적으로 다룰 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존의 유엔환경계획으로는 기후변화와 지속가능 개발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없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셈이다.

리우+20의 개최국인 브라질 정부 역시 유엔에 가칭 지속가능개발협의회 설치를 공식 제안할 예정이다. 브라질 정부는 이 단체를 세계보건기구나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기구로 확대 발전시키자고 주장하고 있다.

<김기범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holjjak@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