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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부인 ‘결혼은 NO, 동거는 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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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프랑스에서 동거는 일상적이다. 프랑스에서도 가정을 이루는 보편적 방식은 결혼이지만, 결혼하지 않고 동거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31%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퍼스트 레이디'라는 호칭처럼 대외적 역할을 수행하는 영부인이 결혼하지 않은 동거인이라는 사실은 간단치 않은 문제인 것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카를라 브루니,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당선자의 전 동거인 세골렌 루아얄, 올랑드의 현 동거인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왼쪽부터). | AP연합뉴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카를라 브루니,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당선자의 전 동거인 세골렌 루아얄, 올랑드의 현 동거인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왼쪽부터). | AP연합뉴스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58)의 프랑스 대통령 당선 소식은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모았다. 유럽 재정위기의 해법으로 긴축 대신 성장을 제시한 좌파 후보의 당선도 의미있는 사건이었지만, 그의 사생활도 주목을 받았다. 올랑드 당선자의 ‘동거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47) 때문이었다.

한국은 김윤옥, 미국에는 미셸 오바마, 프랑스는 카를라 브루니. 원래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영부인에게는 많은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이번 프랑스의 경우는 더욱 특별했다. 대통령이 공식적으로는 미혼상태로 동거하는 ‘파트너’만 있었기 때문이다.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프랑스에서 동거는 일상적이다. 프랑스에서도 가정을 이루는 보편적 방식은 결혼이지만, 결혼하지 않고 동거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31%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퍼스트 레이디’라는 호칭처럼 대외적 역할을 수행하는 영부인이 결혼하지 않은 동거인이라는 사실은 간단치 않은 문제인 것이다.

5월 15일이면 연임에 실패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57)이 엘리제궁을 떠난다. 사르코지는 잇단 말실수와 요란한 사생활 노출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지만, 부인 카를라 브루니(45)도 화제성으로는 못지 않았다. 브루니는 이탈리아 토리노의 부유한 집안 출신이다. 슈퍼모델로 잘 나가던 시절 한 해 400만 파운드를 벌어들이고, 유명 잡지의 오트 쿠튀르 의상 화보를 촬영했다. 또한 포크가수로 활동하기도 해 사르코지가 밤마다 침실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준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팝밴드 마룬5의 히트곡 <Moves Like Jagger>의 주인공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과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2008년 두 번째 이혼을 한 사르코지와 4개월 만에 치른 결혼은 그를 전 세계적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직장생활 유지 뜻 밝혀
그러나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는 브루니의 ‘블링 블링’한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선거유세 도중 인터뷰에서 “평소 시장에 옷을 사러 가고, 아이들이 침대 밑에 던져놓은 양말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며, 집에서 찬장 문을 열고 다니거나 출입문을 닫지 않는 올랑드의 나쁜 습관 때문에 몹시 짜증이 나지만, 그의 이런 모습이 숨길 게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트리에르바일레의 평소 입버릇은 “나는 신데렐라가 아니다”라고 한다.

영국 가디언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가 프랑스 동부 앙제의 평범한 가정에서 여섯 형제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고 전했다. 트리에르바일레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지뢰를 밟아 한쪽 다리를 잃었으며, 그가 21살때 사망했다. 그의 어머니는 계산원으로 일했다고 한다. 소르본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후에는 프랑스 주간지 <파리 마치>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으며, 2005년부터는 케이블TV채널 ‘디렉트8’의 정치 토크쇼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년간의 기자생활 동안 정치분야를 주로 담당했다. 두 번의 이혼 경력을 가진 그는 두 번째 남편인 잡지사 동료와의 사이에서 10대 자녀 3명을 낳아 키우고 있다. 트리에르바일레는 올랑드가 당선돼도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면서 자신이 다니던 직장에도 계속 출퇴근하며 월급을 받겠다고 밝혀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선거유세 도중 자녀들을 키우기 위해서 일을 그만둘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선거유세 동안에는 문화부로 옮겨 활동했지만, 대통령 부인이 정치부 기자라는 것은 많은 논란을 낳을 수밖에 없다.
 
그는 “내 기자출입증을 뺏긴다 해도 기자로 죽겠다. 이것은 나의 영혼”이라고 라디오방송에서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당당한 커리어우먼으로 살아가려는 시도는 대통령 올랑드의 부인이 되면서 쉽지 않게 됐다.

어려움은 이것만이 아니다. 트리에르바일레는 파리 마치의 기사 때문에 분노한 일이 있다. 잡지 표지에 ‘발레리, 올랑드의 매력적인 자산’이라는 헤드라인의 기사가 나갔다. 그는 트위터로 ‘브라보, 파리 마치의 성차별주의…. 나는 모든 분노한 여성들이 걱정된다’라는 글을 올렸다. 선거 캠페인 중에는 사르코지 소속 정당 대중운동연합 의원이 트리에르바일레(Trierweiler)를 사냥개인 로트와일러(Rottweiler)로 바꿔 인신공격을 하기도 했다. 선거 기간 내내 집앞을 지키던 기자들로 인한 사생활 침해도 이제 당연한 일이 되었다.

2007년 프랑스 사회당 대선후보 세골렌 루아얄(59)도 부담스럽다. 세골렌 루아얄은 프랑수아 올랑드의 전 동거인이다. 올랑드는 1978년 국립행정학교에서 루아얄과 만나 25년 동안 동거하면서 3남 1녀를 두었다. 두 사람은 2007년 대선이 끝난 후 결별 사실을 발표했다. 당시 올랑드는 트리에르바일레와 교제하고 있었다. 루아얄은 여전히 사회당 여성정치인 중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루아얄은 결별 후 올랑드와 남남처럼 지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적극적으로 그를 도왔다. AFP통신은 루아얄이 올랑드가 꾸릴 행정부에서 역할을 맡게 되거나 의회 대변인에 기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런 개인적인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정작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부분은 트리에르바일레의 ‘영부인’으로서의 역할이다. 그가 결혼 안 한 영부인이라는 것은 의전절차에서 큰 문제를 낳는다. 프랑스 대통령 내외가 방문하는 국가들은 의전절차에서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트리에르바일레는 “이것이 왜 큰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바티칸에 교황을 방문할 때나 문제가 되지 결혼은 사생활문제”라고 일축했다.

의전문제 때문에 혼인신고 할 수도
그러나 아랍국가들을 비롯한 보수적인 국가에서는 민감한 사안이다. 2008년 사르코지는 중동 방문 당시 카를라 브루니와 사귀고 있었지만 결혼을 올리지 않아 동행하지 않았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혼전 동거가 금지되어 있다. 동거생활을 하는 타국 수반이 방문하는 것은 종교적·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인 것이다. 사르코지는 2008년 인도 순방 때도 사전 협의를 했지만, 결국 의전문제로 단독 방문을 했다. 인도에서는 결혼과 가족이 인생의 중요한 목적이기 때문에 민감한 사안이었다고 한다. 결국 사르코지와 브루니는 ‘사랑의 금자탑’으로 불리는 타지마할을 결혼 후에나 방문할 수 있었다.

프랑스 외무부는 “대부분 국가들은 우리 국빈 방문시 대통령의 의사를 존중할 것”이라며 “21세기에 결혼하지 않는 게 큰 문제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익명의 관리는 “우리가 그를 영부인으로 대우해달라고 요청하면 그들은 그냥 그렇게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의전문제 때문에 대통령 취임식을 갖는 오는 15일 전에 올랑드와 트리에르바일레가 혼인신고를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올랑드의 대통령 당선 이후 한국만이 아니고 각국 언론은 그와 트리에르바일레의 사생활을 보도하고, 프랑스에서도 사적인 대화 소재가 됐다. 그러나 공적인 논쟁거리가 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지도자의 사생활에 관대한 프랑스의 분위기와 우리로서는 낯선 동거문화가 여러 모로 흥미롭다.

<배문규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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