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절대반지’ 품은 박근혜, 새누리당 벌벌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총선 이후 강화된 당 장악력… ‘눈치껏 처신’ 몸 사리는 의원들

#1.
4월 25일 새누리당 서병수 의원이 국회 정론관을 찾았다. 그는 “(지도부 내정설이라는) 유언비어가 나도는 상황에서 원내대표 경선에 뛰어들어 당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되겠기에 결단을 내렸다”며 “19대 첫 원내대표 경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는 통화를 했습니까?” 서 의원이 답했다. “오늘 잠깐 기자회견한다고 전화드리려 했었는데 이미 대전에 가 있어 아직 통화를 못 했습니다.”

#2.
일주일 뒤인 5월 2일 유기준 의원이 같은 자리를 찾았다. 그는 “당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전당대회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한 기자가 물었다. “박근혜 위원장하고는 얘기가 된 건가요?” 유 의원은 말했다. “지난번 부산 총선 공약 실천 행사 때 오셔서 오찬 자리에서 다른 분이 그런 이야기(전대 출마)를 꺼냈는데 듣고만 계셨습니다. (가타부타) 언급은 안 하셨습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5월 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황우여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5월 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황우여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새누리당에서 ‘박근혜’라는 산이 갈수록 거대해지고 있다. 박 위원장이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152석을 안겨주면서 이미 예상됐던 일이다. 그래도 상상 이상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박 위원장의 심중을 읽지 않고는 어떤 정치적인 행보도 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렇다고 박 위원장이 뚜렷한 메시지를 주는 것도 아니다. 그의 의사를 알아서 읽고 눈치껏 처신해야 한다.

친박 세상이지만 ‘친박 자처’ 없어
친박 세상이 열렸지만 친박을 자처하는 세력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특이하다. 주류가 된 계파들이 으레 목소리를 높였던 것과 달리 친박으로 ‘추정’되는 세력들은 전면에 결코 나서지 않는다. ‘2인자’를 키우지 않는 박 위원장 특유의 리더십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같은 대세론이지만 ‘박근혜 카리스마’는 ‘이회창 카리스마’를 압도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카리스마는 역대 우리 정치사상 유례가 없었다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19대 총선 이후 더욱 강화된 박근혜 위원장의 당 장악력이 어느 정도이기에 이런 얘기들이 흘러나오는 것일까.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당에 대한 혹평으로 포문을 열었다. 그는 “박 위원장의 의중만 읽으려고 하는 독심술의 시대가 열렸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더 문제는 지금 누가 실세인지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라며 “누가 어떻게 의사를 결정하는지도 모를 정도”라고 말했다. 김 지사 측은 최근 세규합을 위해 당 의원들을 접촉했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박 위원장 눈밖에 나서 좋을 게 없다’며 몸을 사렸기 때문이다.

박근혜 위원장이 당을 완전 장악한 것은 지난 연말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하면서부터였다. 당명 개정, 당로고 변경 등은 박 위원장이 밀어붙인 작품들이다. 지난 2월 새누리당 당명 개정을 위한 의원총회를 앞두고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당초 당 비대위에서 당명을 결정하려 하자 당 쇄신파들은 의총 소집을 요구했다. 쇄신파들은 의총을 여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박 위원장의 참석 여부를 놓고는 의견이 갈렸다.

정두언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박근혜 위원장은 (의총장에) 안 계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이 참석하면 의총에서 의원들이 소신발언을 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남경필 의원은 “(박 위원장은 의총에 참석해 얘기를) 듣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이 의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안듣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학급회의 자리에 담임선생님이 계시는 게 좋은가, 계시지 않는 것이 좋은가를 두고 논의하는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총선 승리 이후 박 위원장의 힘은 절대적이 됐다. 제 목소리를 내는 의원들이 사라졌다. ‘박 위원장이 쓴소리를 싫어한다’는 얘기는 의원들 사이에 불문율이다.

심지어 탈당자들도 박 위원장에게 기댔다. 제수(동생의 아내) 성폭행 혐의로 당에서 탈당한 김형태(경북 포항남구·울릉군) 당선자, 논문표절 의혹으로 탈당한 문대성(부산 사하갑) 당선자도 “박 위원장에게 돌아오겠다”, “박 위원장에 반하는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친박 유승민, “대화에 한계 느낀다”
박 위원장의 힘은 갈수록 세지지만 정작 친박세력은 잘 보이지 않는다. ‘친박 실세’로 알려졌던 최경환(경북 경산)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에 해명의 글을 올렸다. 그는 “최근 언론은 저를 최재오라고 한다. 공천권을 좌지우지했다고…. 그러나 이는 정말 ‘카더라’ 통신이다. 측근이 공천권을 행사할 경우에 발생하는 문제점과 폐해를 잘 알았기에 2개월 동안 지역에 머물렀다”고 말했다.

박근혜 리더십에 반기를 드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룹은 김문수 지사, 정몽준 전 당대표, 김태호 의원 등 당 대선후보가 유일하다. 개별 의원으로는 유승민, 김용태 의원 정도가 있다. 유 의원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 위원장과 대화할 때 한계를 느낀다”면서 “박 위원장이 다양한 이야기를 듣지 않아 판단에 문제가 생긴다. 어차피 내가 쓴소리를 하니 박 위원장도 나를 싫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만으로도 당은 시끌시끌했다.

박 위원장의 절대적 카리스마는 당 장악에 유용했다. 하지만 12월 대선국면에서도 장점이 될지는 예단하기 힘들다는 목소리들이 많다. 소통을 중시하는 수도권 2040에게 확실히 절대적 리더십은 낯설다.

당의 한 관계자는 최근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위원장의 리더십을 이렇게 분석했다. “이 대통령은 명함에 1에서 100까지 써놓고 돌린 뒤 이를 받은 사람만 챙기는 스타일이다. 그러다보니 챙기는 소수 멤버만 계속 챙긴다. 친이세력도 뚜렷했다. 반면 박 위원장은 자신의 명함을 들고다니는 것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않는다. 하지만 그 명함을 가지고 마음에 맞게 처신하면 그대로 두지만 그렇지 않으면 곧바로 뺏어버린다. 그러니 친박 같기도 하고, 친박 같지 않기도 한 아리송한 일이 생기는 거다.”

<박병률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