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박시장, 9호선 ‘샅바 주도권’ 잡았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48% 인상. 4월 15일 서울시 지하철 9호선의 운영사인 서울시메트로9호선 측의 기습적인 500원 요금인상 고지로 9호선뿐만 아니라 민자사업 전반에 대한 비판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9호선을 ‘시민기업’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이를 계기로 서울시의 민자사업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메트로9호선 측의 요금인상 시도에 제동을 건 데 이어, 민자사업 전반을 다시 한번 살펴볼 것임을 시사했다.

서울 강서구 개화동에 위치한 서울메트로 9호선 본사 건물의 모습. | 김석구 기자

서울 강서구 개화동에 위치한 서울메트로 9호선 본사 건물의 모습. | 김석구 기자

4월 26일 서울시의회 별관에서는 참여연대, 공공운수노조연맹 주최로 ‘지하철 9호선 요금폭등 위기, 원인과 해법을 모색한다’는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

기조발제에서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서울지하철 9호선을 서울시가 인수해 시민이 참여하는 시민기업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오 실장이 말하는 시민기업은 이용자인 시민과 서비스 생산자인 노동자가 서울시와 함께 이사회에 참여하는 형식이다. 시민기업에 대해 오 실장은 “9호선을 또 하나의 공기업이 아니라 새로운 공공서비스 모델을 만드는 계기로 삼자는 제안”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시민기업 설립 방안은 다음과 같다. 현행 4%대 금리로 서울시 지방체와 시민채권을 발행해 조성한 6천억원으로 9호선을 인수하면 지불한 이자액이 줄어들어 경영상태가 호전된다는 계획이다.

민자사업에 도사린 크고 작은 문제들
오 실장에 이어 발제한 정창수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은 서울지하철 9호선뿐만 아니라 모든 민자사업에 크고 작은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위원은 민자사업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잘못된 수요예측으로 인한 과다한 보조금을 들었다.

대표적으로 정 위원은 민간자본의 투자로 건설된 인천공항 주변 교통시설을 예로 들었다. 그는 “인천공항고속도로, 인천공항철도, 인천대교의 일일 추정교통량은 79만9667명이었지만 실제로는 하루 평균 20만명이 이용했다”며 “인천공항고속도로의 경우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지급된 5369억원의 최소운영수입보장금으로도 건설비 충당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 위원은 “메트로9호선을 비롯한 서울시의 민자사업에 대한 재조사가 필요하다. 서울시에서 문제점을 밝힐 수 있다면, 전국적으로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오훈 서울도시철도노조 정책기획실장은 “민간이 운영하면 공공부문보다 효율적일 것이라는 주장과 달리 9호선이 다른 서울시 노선보다 비효율적이었다”고 주장했다.

권 실장은 수송인원당 적자를 따져봤을 때 메트로9호선은 1명당 510원, 서울메트로(1~4호선),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는 174원, 181원에 불과했다고 분석하면서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는 무임권으로 인한 적자가 전체 적자의 각각 90%, 40%에 이른다. 9호선은 강서에서 강남을 잇는 황금노선을 운영하면서도 효율성은 더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4월 18일 공공운수연맹과 참여연대가 서울시청 다산플라자 앞에서 지하철 9호선의 요금인상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문석 기자

4월 18일 공공운수연맹과 참여연대가 서울시청 다산플라자 앞에서 지하철 9호선의 요금인상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문석 기자

전상봉 서울시민연대 대표는 9호선을 시민기업으로 만들기 위한 ‘9호선 펀드’ 조성을 제안했다. 펀드 형식으로 6000억원 정도의 자금을 모은 뒤, 시민기업이 세워진 이후에 시민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토론에서는 ‘반MB’만으로는 민자사업의 문제점을 풀 수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오건호 연구실장은 “민간투자사업의 문제점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며 “노무현 정부 시절 민간투자법에서 민간자본 투자의 대상을 학교, 하수관, 의료 등 사회서비스 시설로 확대했다”고 말했다. 민주정부 10년간 벌어진 각종 민자사업에서도 잘못된 수요예측과 지나치게 높은 수익률 보장의 문제는 똑같이 나타났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9호선이 사과한다면 협상에 응할 생각”
한편 정부는 메트로9호선 측을 두둔하고 있다. 김동연 재정부 2차관은 4월 24일 언론브리핑에서 “9호선 문제는 운용상의 문제”라며 “민자사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김 차관은 메트로9호선이 일반 이율보다 높은 연이율 15%로 7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빌린 것에 대해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민자사업에 후순위채로 투자된 자금의 평균 금리는 13.6%”라며 “(메트로9호선에 주는 이자율은) 결코 높은 수준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태도는 완강하다. 박 시장은 최근까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메트로9호선이 요금인상 파동에 대해 시민들에게 사과해야 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을 보였다. 메트로9호선의 요금인상 공지 직후 서울시는 ‘300원 인상안’이라는 당근과 ‘정연국 메트로9호선 사장 해임’이라는 채찍을 들고 나왔지만 정연국 사장은 “공식 사과 예정도 없고, 요금 인상은 위법이 아니다”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박 시장의 입장도 강경해졌다.

4월 19일 서울시의회의 시정질문 자리에서 박 시장은 김미경 민주통합당 시의원의 ‘9호선 이자율이 터무니없이 높다’는 지적에 동의를 표했다. 이어 김 의원이 “(9호선 등) 민자사업 전부에 대해 감사원 감사를 통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한다”고 말하자 박 시장은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이튿날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강연에서 박 시장은 수위를 좀더 올렸다. 박 시장은 “(9호선 요금인상 논란으로)이번 기회에 과거에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됐고, 민영화나 민자사업을 원점에서 전적으로 검토해볼 수밖에 없다”며 “(9호선 측이) 사과하기 전까지는 협상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4월 26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메트로9호선 측이 ‘혼자 나가떨어지는’ 상황에 놓였다고 말했다. 인터뷰에서 박 시장은 “9호선 문제는 시민의 관점에서 보면 된다”며 “서울메트로9호선 측이 인상통보를 하면서 자충수를 뒀다. 사과한다면 협상에 충분히 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관련기사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