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긴급전화 112, 시스템 개선 ‘긴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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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내역 절반 가까이 민원성… 비긴급 전담 전화 마련해 효율성 높여야

지난 1일 발생한 수원 20대 여성 납치 살해사건은 경찰의 112 시스템의 허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2년 전 국정감사에서 112 신고전화에 대한 개선방안이 제시됐지만 경찰은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또한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긴급상황에서 경찰의 위치추적이 상당히 실효성이 낮다는 점도 드러났다. 법적으로 경찰이 자체적으로 위치추적을 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이는 2년 전 관련법 개정이 의원들에 의해 제지됐기 때문이다.

13일 경기도 수원시 연무동에 위치한 경기지방경찰청 112신고센터에서 경찰 직원들이 신고전화를 받고 있다. | 정지윤 기자

13일 경기도 수원시 연무동에 위치한 경기지방경찰청 112신고센터에서 경찰 직원들이 신고전화를 받고 있다. | 정지윤 기자

2010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경찰청에 “112 운영에 있어서 허위신고, 일반상담전화 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며 특히 “긴급전화와 비긴급전화로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이 지적사항은 행안위 소속인 김태원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이 국정감사 보고서로 작성한 ‘112 신고전화 실태분석 및 개선방안’에 자세히 나와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112신고센터 접수내역 중 41~46%는 긴급성이 떨어지는 민원성 전화였다. 보고서는 112 시스템의 효율성을 위해 112 신고전화와 별도로 비긴급 상황을 전담하는 경찰전화의 필요성을 주문했다. 김태원 의원 측은 “112센터의 업무가 과중하다는 문제점이 있어서 국정감사를 통해 지적했다”며 보고서 작성 경위를 설명했다.

경찰, 자체 위치추적 권한 없어
경찰은 국회에 보낸 답변서를 통해 112 신고를 긴급성 정도에 따라 3단계로 분류하고 있으며, 출동이 필요하지 않은 일반 상담전화는 상담 내용에 맞게 경찰민원안내센터(1566-0112), 정부민원안내종합콜센터(110), 시·군별 생활민원 콜센터(120) 등으로 연결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비긴급전화를 따로 운영하라는 국회의 요구에 대해 경찰청은 “24시간 별도 운영 중인 경찰민원안내센터에 대한 대국민 홍보를 강화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2007년부터 운영 중인 경찰민원안내센터는 김태원 의원의 국정감사 보고서가 요구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보고서는 대국민 홍보가 잘 되어 있는 일본의 비긴급 경찰전화의 사례를 소개했다. 일본은 이미 1990년에 긴급 신고전화(110)와 별도의 비긴급 민원전화(#9110)를 설치했다. 또한 대국민 홍보 차원에서 매년 9월 11일을 ‘경찰상담의 날’로 지정해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일본의 비긴급 민원전화 이용건수는 1999년 약 34만건에서 2008년에는 약 138만여건으로 늘어나 긴급 신고전화의 부담을 상당부분 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국의 경찰민원안내센터는 이용건수에 대한 통계조차 경찰청과 통계청에서 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 대국민 홍보방안도 제시되지 않고 있다.

또한 김태원 의원의 보고서는 스마트폰의 보급률이 앞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스마트폰을 이용한 신고자 위치추적 시스템을 보강할 것을 주문했다. 경찰청도 지난해 6월, 스마트폰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한 ‘112 긴급신고’ 애플리케이션을 배포한 바 있다. 이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112에 신고전화를 하면 자동으로 신고자의 인적사항과 위치정보가 112신고센터에 전달된다. 하지만 이 애플리케이션은 서울, 경기, 강원 등 일부 지역에서만 작동되는 데다, 미성년자만 사용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경찰 스스로 긴급상황에서의 위치추적 권한이 없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현행법 상으로는 긴급상황에서 휴대전화 위치추적 권한을 가진 곳은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뿐이다. 경찰은 당사자와 가족들의 동의를 받아 통신사나 일선 소방서를 통해 피해자의 위치를 추적해야 한다. 일선 경찰서에서 이런 절차적 과정을 거치는 데 대략 수십 분이 걸린다.

이미 2008년부터 긴급상황에서 경찰 자체적인 위치추적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2008년 변재일·최인기 민주당 의원, 신상진 한나라당 의원은 각각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위치정보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경찰에도 소방방재청, 해양경찰청과 같은 수준의 위치추적 권한을 부여하고, 오·남용을 막기 위해 사후에 법원의 승인을 받도록 한 것이다. 각각의 개정안은 2009년 2월, 2010년 4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에서 대안으로 통합되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0년 4월 29일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법사위원들은 이 개정안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검찰 출신 의원, 위치정보법 개정 소극적
여당 위원들은 주로 절차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이한성 위원(한나라당)은 유괴나 납치로 인해 피해자를 긴급히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 경찰이 위치추적을 하는 문제에 대해 “그것부터가 수사의 첫 단계이며, 통상적으로 검찰에 신청을 하고 법원의 허가를 받는 일반적 수사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식 위원(한나라당)은 경찰이 위치추적을 한 뒤 검찰을 거치지 않고 바로 법원에 사후승인을 받는 부분을 지적했다. 박민식 의원은 “헌법 13조에 따르면 경찰이 검사에게 영장을 신청하고 검사가 법원에 영장을 청구하게 돼 있다”며, “이 부분을 다른 조항에 맞춰서 바꾸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병국 위원(한나라당)도 “경찰관서는 직접 법원에 승인받고 거래하는 곳이 아니다. 긴급구조고 간에 법원에서 영장을 받으려면 검찰을 통해 하라고 헌법에 나와 있다”고 말했다.

박영선 위원(민주당)은 검찰의 정보 오·남용을 우려했다. 박영선 위원은 회의에서 “검찰에 경찰 지휘권이 있기 때문에 경찰이 갖고 있는 위치정보를 검찰이 다 보게 된다. 목적 이외로 사용될 소지가 상당히 많다”며 2009년 하반기 경찰, 검찰, 국정원 등 수사기관의 전화조회 건수가 1570만 건을 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결국 법사위 전체회의는 위치정보법 개정안을 법안심사소위로 돌린 채 막을 내렸다. 이후 2년 가까이 이 개정안은 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5월이 지나 18대 국회가 종료되면 이 개정안도 자동으로 폐기된다.

일각에선 위치정보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은 것을 ‘검경갈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개정안에 반대한 3명의 여당 의원이 모두 검찰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한성 의원은 창원지검 검사장을 지냈고, 박민식 의원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수석검사 출신이다. 최병국 의원도 대검 중수부장 경력이 있다. 박민식 의원 측은 “당시 여당 의원들은 헌법에 맞게 조항을 바꿔서 통과시키려는 입장이었고, 박 의원은 직후 다른 상임위로 옮겼기 때문에 법안 계류에 여당 의원들이 책임이 있는 것처럼 보는 것은 맞지 않다. 게다가 2년 전은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슈이던 때도 아닌데 검경갈등으로 위치정보법 개정에 반대했다는 건 언론이 너무 나간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검찰과 경찰은 가해자 오모씨(42)의 여죄를 밝혀내기 위해 공조수사를 하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은 10일 경찰로부터 사건기록을 넘겨받고 검사 3명, 수사관 4명으로 구성된 전담팀을 꾸렸다. 경찰도 관할서인 수원중부경찰서 강력계 3개 팀과 경기청 광역수사대를 동원해 오씨의 여죄를 수사하고 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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