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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빠진 동반성장위원회 앞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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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위원장 조기 사퇴… 정권말기 아무도 후임 안맡으려 해 난감

바람 잘 날 없는 1년 4개월이었다. 지난 3월 29일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위원장직을 조기 사퇴했다. 2년 임기를 8개월 남겨둔 상태였다. 지난 1년 4개월 동안 정운찬 위원장과 동반성장위원회의 모습은 재계의 힘과 정부의 방관이라는 벽에 부딪혀 번번이 힘에 부친 모습이었다.

3월 29일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서울 팔래스 호텔에서 동반성장위원장 사퇴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3월 29일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서울 팔래스 호텔에서 동반성장위원장 사퇴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통령 직속기구화 주장 ‘부정적’
정운찬 전 위원장의 조기 사퇴와 동반성장위원회 위기는 지난해 말부터 제기돼 왔다. 결국 정 전 위원장이 조기 사퇴를 하면서 동반성장위원회의 미래는 더 안갯속이 됐다. 총선 이후쯤 후임 위원장이 인선될 것이라는 전망이지만, 과연 누가 그 자리에 올 것인지에 대한 윤곽은 아직 잡히지 않는다. 정 전 위원장은 서울대 총장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냈던 터라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이 큰 편이었다. 워낙 선임자가 강한 캐릭터이다보니 정 전 위원장만큼 중량감을 가진 후임자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정 전 위원장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동반성장위에 정부가 힘을 실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무보수 명예직이고, 게다가 정권 말기인 현재 적임자를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적임자의 요건도 까다롭다. 동반성장위 내부 관계자는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은 시장과 기업을 이해하되 시장만능주의자여서는 안 된다. 대기업 사외이사 등을 해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면 안 된다. 현 정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며 대·중소기업 간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파워도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을 감안하면 어지간한 사람이 와서는 못한다”고 전했다.

후임자 물색이 까다롭다보니 아예 동반성장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자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해 8월 민주통합당 강창일 의원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안은 동반성장위가 민간자율 합의기구이다보니 동반성장 추진대책들이 법적 구속력이 없어 기업들이 이를 지키지 않아도 법적으로 제재할 수 없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동반성장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자는 주장에 대해서 선뜻 동의하는 측은 없다. 이는 중소기업 측도 마찬가지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동반성장위에서 내놓은 대책들을 강제로 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강제성을 두기보다는 우선 기업문화가 바뀌어야 하는데 이게 구조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 산하에 있더라도 대기업의 횡포나 불공정거래를 규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그 예다. 이 관계자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대기업에 피해를 본 중소업체들을 불러 간담회를 한다고 해도 다들 참석들을 안 한다. 거기서 누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대기업에 다 알려지기 때문”이라며 “기구의 법적인 근거보다는 동반성장을 하겠다는 정부나 청와대의 의지가 중요한데, 지금 정부의 추진 의지가 약하고 진정성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대기업 불신 여전해
동반성장위 공익위원들도 대통령 직속기구화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했다. 현재 위원장 대행을 맡고 있는 곽수근 서울대 교수는 “정부 기구로 두면 추진력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현실은 그렇지 못한 일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직속기구가 되면 정부의 시장개입이 되어 통상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곽 교수는 “자영업자와 같은 소상공인 문제는 어느 정도 정부가 관여하는 게 좋지만 대기업-중소기업 문제는 양자간의 계약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아 정부가 관여하는 형태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당사자가 만나 자율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장이라는 데 의의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익위원인 이장우 경북대 교수도 “시장논리도 있고 정부논리도 있다. 이 사이를 채워줄 제3의 힘이 필요한데 그게 동반성장위가 할 일”이라며 “강제성을 부여하면 순간적으로 통쾌할 수 있지만 기업과 시장의 신뢰자본을 쌓아갈 기회를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사회적 신뢰를 쌓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1년 4개월 간 동반성장위 활동이 있었지만 중소기업 측은 대기업에 대해 여전히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한 관계자는 “동반성장위원회를 통해 얼마간의 실질적 성과도 있었지만 시기적으로 대기업이 호황이다보니 괜히 문제를 만들 필요가 없어서 협조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호황이 아니었다면 대기업이 그나마 협조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실제 상호신뢰보다는 적대감이 강하다보니 동반성장위가 마련하는 대기업-중소기업 간 협상테이블에서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관계자들은 얼마간의 부침은 있겠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동반성장이 시대적 과제인 만큼 동반성장위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직 1년 4개월밖에 안 된 기구인데 초과이익공유제 논란 등의 난관으로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떠난 정운찬 전 위원장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무엇보다 대기업의 전향적인 자세가 공통적으로 요구됐다. 동반성장위 관계자는 “동반성장은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기업이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재계에서 동반성장위가 이를 강요해서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계속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기업은 ISO 26000처럼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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