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서울 ‘맞춤형 저격수’ 격돌 흥미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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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는 4·11 총선의 최대 격전지인 서울에 간판급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각 당 후보자들은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유권자들 입장에서는 흥미진진한 게임이다. 특히 여야는 일부 지역에 상대 후보에 따라 대립구도를 형성하는 ‘맞춤형 저격수’를 내세웠다. 더욱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다.

서울 48개 지역구 중에서 친박(박근혜)계 좌장(격)과 야당의 대권주자가 겨루는 ‘정치 1번지’ 종로, 친이(이명박)계와 친노(노무현)계의 실세가 맞붙는 은평을, 현대가와 현대 최고경영자(CEO)출신이 대결하는 동작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찬·반론자가 나선 강남을, 여당 사무총장과 기자 출신의 정치신인이 대결하는 영등포을이 최고의 관심지역이다.

종로
6선 친박좌장 vs 4선 야당 대권주자
서울 한복판인 ‘정치 1번지’ 종로에서 새누리당 친박계의 좌장격인 홍사덕 후보와 민주통합당 대선주자인 정세균 후보가 한판 붙는다. 종로는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청와대가 위치해 있으며, 역대 대통령 3명(윤보선·노무현·이명박)을 배출할 정도로 정치적으로 상징성이 있는 지역이다. 하지만 지난 1987년 개헌 이후 여섯 번의 총선에서 민주·진보 후보가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한 보수후보 우세지역이다. 민주·진보진영에서는 유일하게 고 노무현 전 대통령만 1996년 이 지역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강윤중 기자

강윤중 기자

새누리당은 6선의 홍사덕 후보를 종로에 전략공천했다. 대구 서구가 지역구인 홍 후보는 새누리당의 부름을 받고 선거판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내리 3선을 한 박진 의원을 명예선대위원장으로 위촉하는 등 박진 의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홍사덕 후보는 한쪽으로는 이번 선거는 미래를 준비하는 선거라며 ‘박근혜 마케팅’을 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청와대가 있는 이 지역에서 MB(이명박) 심판론 차단에 주력하고 있다. 홍 후보는 여의도에 입성해 국회의장을 노리고 있다.

이에 비해 정세균 후보는 일찌감치 손학규 전 대표로부터 이 지역을 물려받아 표밭갈이를 해왔다. 정 후보는 3년 전에 지역구인 전북 진안·무주·장수·임실 불출마를 선언했다.

정세균 후보는 “겉으로 내색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유권자들에게는 정권심판론 정서가 이미 퍼져 있다”며 “유권자들의 정권심판 정서는 지난 지방선거 때처럼 선거 당일에 표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세균 후보가 이 지역에서 승리한다면 여세를 몰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에 도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국 총선의 풍향계 역할을 하고 있는 종로는 이번 선거에서도 여야의 두 후보가 초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홍사덕 후보와 정세균 후보는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다. 빌라촌이 밀집돼 있는 삼청동·평창동 등에는 전통적으로 보수층이 많고, 서민층 주거지인 창신동과 숭인동은 진보층의 유권자들이 많은 곳이다.

동작을
현대가의 아들 vs 현대 CEO 출신
서울 동작을에서는 현대와 인연이 깊은 두 후보가 양보 없는 일전을 벌이고 있다. 새누리당 정몽준 후보는 현대가(家)의 아들로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다. 민주통합당 이계안 후보는 현대중공업에서 말단 신입사원으로 시작해 현대자동차 사장과 현대카드·현대캐피탈 회장을 지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정몽준 후보는 이 지역을 사수하기 위해 가용 자원을 총동원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장을 지낸 정 후보는 화려한 인맥을 동원, 인기스타들의 지원도 받고 있다. 탤런트 이서진씨가 정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했으며, 농구스타였던 허재 KCC 감독도 정 후보를 동행하며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반면 이계안 후보는 이 지역 구석구석을 누비며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호소하고 있다. 지난 17대 선거에서 이 지역에서 당선한 이 후보는 18대 총선에선 불출마하고 다시 돌아왔다. 이 후보는 자신을 ‘머슴’, 정몽준 후보를 ‘도련님’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대와 관계있는 두 사람의 대결로 이 지역에서는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논쟁이 활발하다. 재벌개혁론은 이계안 후보가 먼저 들고 나왔다. 이에 대해 정몽준 후보 측은 “대기업의 문제점을 바로잡는 것은 필요하지만 현대자동차 사장, 현대캐피탈 회장을 지낸 이 후보가 (재벌개혁을 말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며 “자신이 사장, 회장을 할 때는 뭐하다가 이제 와서 갑자기 재벌개혁을 주장하는지 묻고 싶다”고 밝혔다. 이계안 후보 측은 “이계안 후보가 최고경영자였다고는 하나 기업의 오너가 아니었기에 주주총회의 결의 범주 안에서만 회사를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며 “정몽준 후보 측이 회사 관리자에게 재벌개혁을 당시에 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이 지역에서는 진보신당 부대표인 김종철 후보가 출마해 야권의 표가 분산될 우려도 있다.

은평을
친이계 실세 vs ‘노무현의 입’
서울 은평을에서는 친이계 실세인 이재오 후보와 ‘노무현 대통령의 입’ 역할을 한 청와대 대변인 출신 천호선 후보가 금배지를 놓고 한판 붙는다.

박민규 기자

박민규 기자

5선에 도전하는 새누리당 이재오 후보는 지난 재·보궐선거에서 했던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 후보는 하루 종일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지역 구석구석을 누르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 2010년 7월 28일 은평을 재·보궐선거에 출마, 당시 한나라당(현재 새누리당)의 지원을 사양한 채 ‘나홀로 선거운동’을 해 민주당 장상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이지만 가끔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할 뿐 언론들과의 인터뷰도 사양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그의 일정이나 동선도 정확하지 않다. 최소한의 보좌진만이 그의 동선을 멀리서 따라다니며 지원한다.

그가 ‘조용한 선거’ 콘셉트를 다시 꺼내든 것은 이명박 정부의 실세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MB(이명박)정권 심판론 구도에 말려들지 않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특히 그는 43년째 이곳에서 살며 평상시에도 주민들과 스킨십을 강화해왔기 때문에 인지도를 더 끌어올릴 필요가 없다는 계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천호선 대변인 측은 이재오 후보가 언론 등을 통해 맞장토론에 응하지 않기 때문에 난감해 하고 있다.

야권 단일후보인 통합진보당 천호선 후보는 지난 재·보궐선거 이후 이재오 후보의 맞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는 야권 후보단일화 경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를 물리친 여세를 몰아 ‘거목 이재오 후보’마저 쓰러뜨리겠다는 각오다. 천 후보도 직접 발품을 팔면서 주민들과 일대 일 접촉을 꾸준히 하고 있다. 특히 그는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젊은층 유권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천호선 후보는 당선되면 이명박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와 내곡동 사저 문제 등을 다룰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특위를 구성하겠다고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천 후보는 또한 국립보건원 부지에 서울시립대를 유치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강남을
FTA 선봉장 vs FTA 반대론자
서울 강남을에서는 자유무역협정(FTA) 전사들 간의 전쟁이 주목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 김종훈 후보는 자타가 공인하는 FTA 전도사다. 김 후보는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한·미 FTA 체결을 이끌어낸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출신이다.

김영민 기자

김영민 기자

이에 비해 민주통합당 정동영 후보는 지역구인 전주 덕진에서 올라와 한·미 FTA와 4대강 사업 등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심판하겠다면서 여당의 텃밭에 뛰어들었다. 과거에 강남은 새누리당이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곳이었지만 이번에는 해볼 만하다는 정서가 민주통합당 안팎에서 확산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늦게 공천을 받고 뛰어든 김종훈 후보는 대치·도곡동 등 중산층이 밀집돼 있는 지역과 노인층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김종훈 후보 측은 후보 사무실을 24시간 개방하고, 주로 도보로 유세를 하고 있다. 김종훈 후보 측은 말없는 다수의 지역 구민들이 투표장에서는 새누리당 후보를 찍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후보는 이 지역에 한·미 FTA 발효에 따라 설립해야 하는 해외일자리매칭센터를 유치하겠다고 공약했다.

반면 정동영 후보는 일원·수서동 등 서민층이 많은 동네를 집중 공략하고 있다. 강남을은 지역별로 부유층과 서민층이 함께 살고 있는 지역이다. 특히 판자촌이 위치해 있는 구룡마을은 야권 성향이 강한 곳이다. 정동영 후보는 이 지역 진보적 지식인들인 ‘강남좌파’와 ‘2030’(20·30대)의 높은 투표율을 기대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각종 토론회에서 FTA 관련,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김종훈 후보는 “정동영 후보는 노무현 정부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의장을 맡으며 찬성하다가 집권당이 바뀌고 당내 입지가 어려워지면서 투쟁적으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동영 후보는 “김종훈 후보의 생체시계는 한국인의 것인지는 모르지만 FTA 협상과정에서 미국의 이익을 대변했다”고 강조했다. 정 후보 측은 이번 선거를 신자유주의 국가운영체제에 대한 신임이냐, 심판이냐의 대결로 보고 있다.

영등포을
여당의 사무총장 vs 기자출신 정치 신인
여당의 사무총장인 권영세 후보에 MBC 앵커 출신인 정치신인 신경민 후보가 도전장을 냈다. 이 지역은 권 후보의 텃밭으로 간주됐으나, 민주통합당에서 서울 서부권 공략의 요충지로 신 후보를 전략공천하면서 단숨에 격전지 반열에 올랐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여권의 실세인 권영세 후보는 지난 2002년 재·보궐선거 이후 내리 3선을 할 만큼 이 지역에 튼튼한 조직을 갖고 있다. 하지만 권 후보는 이번 총선에서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새누리당 사무총장으로서 19대 총선 공천을 진두진휘하느라 정작 지역구 관리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권 후보는 하루 24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지역주민과의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다. 권영세 후보 측은 “이번에 당선되면 권영세 후보가 추진했던 큰 사업들을 마무리지을 수 있다”며 “상대 후보가 정권심판론을 주장하고 있지만 지역주민들 사이에서는 먹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대변인인 신경민 후보는 인지도 면에서는 권영세 후보에게 뒤지지 않는다. 특히 신 후보는 통합진보당 정호진 후보가 사퇴하고 신 후보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야권 단일후보가 됐다. 신 후보는 정권심판론과 민생 챙기기라는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선거운동에 임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신 후보를 언론개혁의 적임자로 공천했다. 이에 따라 신 후보는 여의도에 입성하면 언론개혁에 앞장설 계획이다.

신경민 후보는 “현재 방송 3사에서 초유의 파업을 하고 있는 것은 후배들이 좋은 환경에서 올바른 언론인의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이라며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 MB정부 언론정책 관련 인사들을 대상으로 청문회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 지역의 여론조사 결과는 초박빙이다. 중앙일보·한국갤럽·엠브레인이 3월 24~25일 이 지역 유권자 600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권 후보가 35.5%, 신 후보가 32.4%로 오차범위(±4.0%) 내에서 접전을 펼치고 있다. 영등포을은 보수층이 밀집돼 있는 여의도와 서민층이 많이 사는 대림·신길동으로 표가 엇갈리는 곳이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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