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후쿠시마 들에도 봄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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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시인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했다.
이상화는 김소월, 한용운 등과 함께 식민지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새로운 시를 모색했던 시인으로 꼽힌다. 이상화의 작품은 3월 16일부터 서울 평화박물관에서 열릴 한 사진전의 제목이기도 하다. 사진전이 끝나면 동명의 사진집도 출판될 계획이다.

지난해 11월 미나미소마시 인근의 산간지역.

지난해 11월 미나미소마시 인근의 산간지역.

사진전의 주인공은 정주하 백제예술대학 사진과 교수(54)다. 정 교수는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 말~2월 초, 두 차례에 걸쳐 후쿠시마 핵발전소 인근을 다녀왔다. 같이 사진전을 준비한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과 교수(53), 서경식 도쿄경제대 현대법학부 교수(61)와 함께했다.

정 교수가 핵발전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 5월부터 2개월간 ‘불안, 불-안 시리즈’라는 제목의 개인전을 연 적이 있다. 당시 정 교수는 울진, 월성, 고리 등 핵발전소가 위치한 곳의 해수욕장과 마을의 일상을 담았다.

바다에 몸을 담그고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사람들 뒤에 슬그머니 핵발전소의 모습이 보인다. 많은 한국인들이 핵발전소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마음 한편에 불안함을 가지고, ‘원자력’이라는 불(火) 안에 살고 있다.

정 교수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기 1년 전인 2010년에도 일본을 찾았다. 목적지는 후쿠이 현 오이 군에 위치한 다카하마 핵발전소 근방이었다. 그는 “핵에너지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며 “일본은 4월이면 자국 내에 위치한 54개의 핵발전소를 모두 멈추는데, 우리는 반대로 핵발전소를 늘리고 있다. 핵에너지가 정말 인간적인 에너지인지, 값싼 에너지인지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사건 이후 징후에 관심”
한홍구, 서경식 두 사람의 권유 이전에 정 교수를 후쿠시마로 불러들인 것은 바로 오는 3월 26~27 양일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릴 예정인 핵안보정상회담이다. 정 교수는 “항상 핵문제에 관심이 있었고, 핵안보정상회담이 올 3월에 열릴 것이라는 것도 지난해 5월에 알았다. 그리고 나서 후쿠시마에 꼭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홍구 교수와 함께 후쿠시마로 갈 계획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미나미소마 시 부근 과수원에 감이 열려 있다.

지난해 11월 미나미소마 시 부근 과수원에 감이 열려 있다.

정 교수는 “나는 후쿠시마 사고 자체보다 그 사건이 드러내는 징후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관심사는 보도사진처럼 핵발전소 인근 지역 사람들이 대피하는 모습, 쓰나미가 휩쓸고 간 자리를 보여주는 데 있지 않다. 후쿠시마 사고가 인류에게 던져준 “운명적, 역사적 지시”가 정 교수의 관심사다. 그는 사진전 제목처럼 ‘봄’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후쿠시마 지역의 아름다운 가을 풍경과 겨울 모습을 통해 무언가 기다리고 있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는 봄은 오는가’도 마찬가지다. 식민지 조선의 저항시인이 쓴 대표작이지만 시 내용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는 식이다. 정 교수가 사진전과 사진집을 통해 선보일 작품의 상당수도 얼핏 보면 평범한 일본의 전원 풍경을 담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방사능에 오염된 감 수확 포기
지난해 11월 정 교수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현장 인근에 있는 미나미소마이 시의 한 과수원 지대를 방문해 주렁주렁 감이 열린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정 교수는 “내가 살고 있는 전북 완주군처럼 이 일대가 유명한 곶감 산지라고 해서 들렀다. 말 그대로 흐드러지게 감이 열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감을 따지 않았다. 정 교수는 “동네 사람들이 방사능에 오염된 감을 어떻게 만지냐고 하더라”고 말했다.

올해 2월 같은 과수원의 감들이 나무에 그대로 달려 있다.

올해 2월 같은 과수원의 감들이 나무에 그대로 달려 있다.

2개월 뒤인 올해 1월, 정 교수는 다시 그 과수원 마을을 찾았다. 그때 그 감이 여전히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감을 따려면 자연적으로 떨어지길 기다려선 안 되고 사람이 직접 따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따질 못하니까 저렇게 남아 있다. 홍시가 되다 되다 물처럼 감 아래쪽이 불룩한 상태로 그대로 얼어 있다.”

과수원 마을이 속한 미나미소마 시 인근에서 정 교수는 주민 몇 명이 낫을 들고 들판을 오가는 장면을 포착했다. 정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은 자신들의 터전에 남아 있는 방사능 물질을 제거하러 온 자원봉사자들이다.

지난해 11월 미나미소마 시 주민들이 방사능 제거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나미소마 시 주민들이 방사능 제거활동을 하고 있다.

“상당수의 주민들이 후쿠시마를 떠났지만, 여전히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전과 같은 일상을 살고 있다. 특별한 장비도 없는 주민 몇 명의 행동으로 이전과 같은 모습을 되찾을 순 없다. 하지만 나는 이 행동 자체가 반성이라고 본다.”

후쿠시마 현청 소재지인 후쿠시마 시에도 역시 일상이 돌아가고 있다. 정 교수는 가을이 되어 떨어진 낙엽을 주워담는 한 할머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일본 사회 소수자에겐 관심 적어”
“자기 집 앞의 낙엽을 쓸어담는 모습은 2011년 이전에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할머니가 투명한 봉투에 낙엽을 담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핵발전소 사고로 방출된 방사성 물질이 붙어 있는 낙엽이 사람들이 사는 공간에 떨어지면서 지역민들 사이에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그렇기에 일부러 내용물이 보이도록 투명 봉투에 담는 것이다. 이 할머니의 빗질에도 반성이 담겨 있다.”

지난해 11월 후쿠시마 시의 한 노인이 투명한 봉지에 낙엽을 쓸어담고 있다.

지난해 11월 후쿠시마 시의 한 노인이 투명한 봉지에 낙엽을 쓸어담고 있다.

인터뷰 내내 정 교수는 ‘반성’을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반성은 정부와 원자력 옹호세력만을 향한 것은 아니다. 그는 “반성이 나쁜 뜻만은 아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성찰과 그 반성을 통해 현실을 되돌리겠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번 작업을 통해 소수자 문제에 대한 일본 사회의 무관심을 느꼈다고 했다. 일본에 도착한 정 교수는 도쿄의 한 대형서점에서 후쿠시마 사고와 관련된 사진집과 책들을 살펴봤다.

“도쿄에 가면 대형서점에 후쿠시마 사고와 관련한 사진집과 책이 수도 없이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내용은 딱 두 가지다. 핵발전소 폭발로 희생당한 사람들의 모습, 또는 폭발 이후 현장을 열심히 복구하는 모습을 담은 것이다. 재일 조선인을 비롯한 외국인, 소수자들의 모습을 담은 건 없었다.”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서 60㎞ 떨어진 고리야마 시에는 재일 조선인들의 역사가 담긴 다카타마 금광이 있다.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서 60㎞ 떨어진 고리야마 시에는 재일 조선인들의 역사가 담긴 다카타마 금광이 있다.

정 교수가 얼핏 보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고리야마 시의 다카타마 금광에 간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곳은 일본 사회에서 소수자이자 경계인으로 살아온 서경식 교수가 지난해 6월 일본 NHK와 함께 찾은 곳이기도 하다.

1976년 폐광된 다카타마 금광은 한때 일본 3대 금광으로 불리던 곳으로, 일제 강점기 시절 수많은 조선인들이 강제노역을 하다가 죽어간 곳이다.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들의 후손들이 재일 조선인이란 이름으로 아직도 후쿠시마 현 곳곳에 살고 있다. 고리야마 시에는 조선인 학교도 있다.

예전과 다른 후쿠시마의 봄
“한국인 아내와 함께 이곳을 운영하는 일본인 보존회 회장 하라다씨는 자신의 평생 소원이 조선인 희생자 위령비를 세우는 것이라고 했다. 하라다씨가 ‘일본은 이런 역사문제를 덮어버리려 한다’고 말해줬다. 후쿠시마 사고에서도 일본인 피해자만 강조됐을 뿐, 일본인보다 취약한 상황에 놓인 재일 조선인은 아예 없는 것처럼 다뤄졌다. 우리도 이런 사고가 일어나면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할지, 나보다 더 약한 사람들도 기억해줄지 반성해봐야 할 지점이다.”

올해 2월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를 많이 받은 곳 중 하나인 센다이 시 외곽지역의 모습.

올해 2월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를 많이 받은 곳 중 하나인 센다이 시 외곽지역의 모습.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핵발전소를 완전히 폐쇄하는 데 약 40년이 걸린다고 설명한다. 현대과학으로 정확히 규명하기도 어렵고,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인근 주민들의 피해는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

어쨌든 3월이 되면 후쿠시마에도 봄은 온다. 꽃이 피고 생명이 다시 태어날 것이다. 하지만 그 생명은 2011년 3월 11일 이전에 태어난 생명과 같을 순 없다.

<글·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사진·정주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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