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미네르바 박대성의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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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상대로 1억 손배소 청구… ‘가짜 미네르바’ 주장한 쪽과는 법정싸움

“박대성씨, 이번 소송에 대해 한 말씀해주실 수 없을까요.”
“….”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박씨의 침묵은 25초 동안 계속됐다. 박씨는 아무런 말없이 전화를 끊었다. 문자메시지를 보내봤지만 역시 답은 없었다. 2월 20일 서울중앙지법. 기자들 앞에 선 박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을 피고로 낸 1억원 손해배상 청구소송 취지는 그의 법률 대리인 우종환 변호사가 설명했다. 옆에 선 박씨는 묵묵부답이었다.

2월 20일, 서울 중앙지법에서 박대성씨(왼쪽)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1억원 손해배상 청구를 낸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2월 20일, 서울 중앙지법에서 박대성씨(왼쪽)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1억원 손해배상 청구를 낸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네르바 사건. 지난 2009년 <주간경향>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선정한 “가장 황당한 그해의 시국사건”이다. 그해 1월, 박대성씨는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했다”는 죄명으로 긴급체포되었다. 포털 다음 아고라에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글을 올린 게 죄라는 것이다. 그해 4월 박씨는 무죄로 풀려났고, 이듬해 12월에는 박씨 구속의 근거가 되었던 전기통신법 47조 1항이 위헌 판결을 받았다.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아직도 계속되는 박씨 ‘고통’
하지만 박씨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현재 박씨는 그를 ‘가짜 미네르바’라고 주장했던 누리꾼 3인과 소송을 벌이고 있다. 아직 1심 판결도 나지 않았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병합된 소송건수는 모두 15건이다. “솔직히, 고소한 걸 후회한다. 저렇게 괴로워할 줄 알았으면, 나만 고소했을 것이다.” 누리꾼과 박씨의 소송에 얽혀 있는 김승민씨의 말이다. 박찬종 변호사의 보좌역을 맡고 있는 그는 박씨가 감옥에 들어간 뒤, 온라인에서 박씨를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미네르바 조작설’을 주장하던 누리꾼은 그를 ‘조작의 핵심인물’로 지목했다. 김씨는 “박씨가 처음에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고 말했다. “고소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까지 온라인에서 계속 괴롭혔을 것”이라는 것이 당시 박씨의 말이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미네르바 조작설’이 잦아들기는 했지만 박씨에 대한 ‘의혹’은 잠복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무죄 판결에 이은 헌재의 위헌 판결. 박씨를 기소한 검찰로서는 치욕적인 일이다. 일반적으로는 경력에 오점으로 남는 사안이다. 하지만 당시 박씨 사건을 맡았던 검찰 라인은 오히려 승승장구했다. 사건을 지휘한 김수남 당시 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법무부 기획조정실장, 청주지검장을 거쳐 현재 서울 남부지검장을 맡고 있다. 김수남의 후임으로 3차장을 맡았던 최재경 검사 역시 법무기조실장,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거쳐 대검 중앙수사부장을 맡고 있다. 

수사실무를 맡았던 김주선 마조부장은 현재 대전지검 천안지청장, 김 부장의 후임인 이두식 당시 마조부장은 현재 대검찰청 연구관으로 일하고 있다.

‘가짜 미네르바’ 주장 누리꾼에 대한 명예훼손 재판이 진행되면서 박씨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었다. 지난해 12월 20일 진행 중인 명예훼손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박씨는 책상에 엎드려 흐느끼면서 “내 무죄를 입증해주시기 바란다”고 재판장에게 호소했다. 김승민씨는 “온라인에 글을 올리는 것이 죄가 안 된다고 생각했던 박씨가 실제로 구속되고 수감된 경험에서 온 트라우마가 아닌가 싶다”며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지 모르겠지만, 박씨는 현재 자신이 계속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는 것처럼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가 겪고 있는 현재 ‘심리적 상태’는 기자가 입수한 ‘심리검사결과서’에서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최근 생활에서 후회나 자책감을 경험하고 있으며, 반복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무기력감, 수치심, 사회적 위축과 같은 다양한 고통스런 감정이 야기되고 있음”, “대인관계에서 경직되어 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장소나 시간 속에 위치하게 되면 자신의 weakness(약점)에 좀 더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있음. persecution(피해망상)과 관련된 연상은 현재 당면하고 있는 불쾌한 사건들이 재경험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음. 이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가능한 한 떨어져 혼자 있는 편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음.”

이런 가정을 해볼 수 있다. 만약 대한민국의 사법당국이 그를 잡아 가두지 않았다면, 최소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했다면 거꾸로 ‘권력의 미네르바 조작 음모’라는 주장이 퍼질 수 있었을까. 당시 아고라에서 ‘노둣돌’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던 김충배씨는 “박씨가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이 자업자득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온라인 공간에서 미네르바의 캐릭터가 갖고 있던 힘이나 카리스마는 과장된 것이며, 어쨌든 상황에 처한 자연인 박대성 개인으로선 한없이 약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며 “미네르바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박대성에 투영해 맞냐 틀리냐를 따지겠다는 전제부터 잘못된 것이며, 결국 원인은 국가권력이 박대성을 가두었기 때문에 논란이 부풀려졌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박대성씨의 손해배상 청구는 어떻게 될까.

박씨 사건 검사들 “여전히 승승장구”
민변의 한 변호사는 개인적인 의견을 전제로 “사실 무죄를 받았다고 구금기간 동안의 피해를 국가가 배상한 전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시 재판을 시작하면서 현재도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인 박씨가 또다른 고통을 받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씨 재판 담당변호사인 우종환 법무법인 한우리 변호사는 “국가행위의 위법추정을 입증해야 하며 당시 사법부의 기소나 구금행위가 고의에 의한 위법성이 있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상당히 어려운 재판인 것은 사실”이라며 “분명한 것은 피의사실이 사전에 유출되었다든가, 결국 정권의 이해나 정치검찰의 기소로 한 사람이 희생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전향적인 선례를 만들어내자는 것이 소 제기의 취지”라고 말했다.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사실 누군가는 미네르바 사건으로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는 박대성씨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며 “미네르바 박대성씨 사건은 정치검찰의 폐해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기 때문에 기존의 법리나 판례로 접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기존의 수사기관이나 공소기관이 수사권, 검찰권, 사법권이 어떻게 쓰여야 할지에 대한 방향을 다시 잡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라며 “원고인 박씨가 청구한 가액을 전액 인용하면서 교훈으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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