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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이명박정부 게이트’가 복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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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외교, 4대강 등 이권 딸린 프로젝트 후폭풍 예상

올 하반기 정국을 흔들 대형 경제 게이트가 터질까.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해를 맞아 정치권과 경제계가 뒤숭숭하다. 통상 권력 말기에는 해당 정권이 주도했던 주요 사업들이 ‘게이트’라는 이름으로 되돌아오게 마련이지만 이번 정권은 특별히 벌인 대형 프로젝트들이 많았던 만큼 후폭풍이 만만찮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CNK의혹, ‘실세’ 박영준 전 차관 연루
하반기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는 유럽 경제가 아닌 ‘이명박정부 리스크’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애초에 ‘경제대통령’을 모토로 내세우며 경제계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던 만큼 곳곳에 뇌관이 숨어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4대강, 원전수주, 자원외교 등 현 정부가 추진했던 주요 사업들에 대부분 거대한 이권이 딸려 있었다”며 “측근들이 여기저기서 분탕질을 쳤을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당국 관계자도 “역대 어느 정권에 비해 금융권 낙하산도 심했다”며 “4대 금융지주 회장을 지인으로 채우고 감사나 이사를 독점하는 등 정경유착이 심했던 만큼 현 정부의 힘이 빠지는 하반기부터는 부작용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월 26일 검찰 수사관들이 서울 종로구 옥인동에 위치한 씨앤케이 본사 압수수색에 나섰다. | 김영민 기자

1월 26일 검찰 수사관들이 서울 종로구 옥인동에 위치한 씨앤케이 본사 압수수색에 나섰다. | 김영민 기자

카메룬 다이아몬드 개발업체인 씨앤케이(CNK)인터내셔널은 정초부터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1월 26일 감사원은 씨앤케이 주가조작 의혹에 연루된 김은석 외교통상부 에너지자원 대사의 해임과 검찰 수사를 요청했다. 감사원은 감사 결과 카메룬 다이아몬드 추정 매장량이 과장된 것을 알고도 잘못된 외교부 보도자료를 내 씨앤케이 주가 급등을 가져온 것으로 결론내렸다.

검찰은 이날 씨앤케이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또 오덕균 대표의 자택, 조중표 전 국무총리실장 등의 자택도 전격 압수수색했다.

감사원은 이날 ‘윗선’의 개입 의혹을 은근슬쩍 가렸지만 검찰이 정조준하는 것은 ‘몸통’이다. 현 정권 실세인 ‘왕차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직접 연루됐다. 박 전 차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의 최측근이었다. 한마디로 권력형 비리, 즉 ‘다이아 게이트’로 번질 수 있다는 얘기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자료만 수십 상자 분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조만간 관련자를 소환할 것으로 알려졌다.

씨앤케이 의혹이 불거진 것은 지난해 8월이다. 당시 한나라당 소속이던 정태근 의원이 예산결산위원회 질의를 통해 본격 제기했다. 정 의원은 감사청구까지 했지만 배영식 의원을 제외한 다른 한나라당 의원들이 반대해 무산됐다. 그보다 훨씬 앞서 청와대 민정수석실도 알았고, 금융당국도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조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게 5개월 만에 재점화됐다. 명백한 권력누수 현상이다.

씨앤케이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1월 18일 금융당국은 씨앤케이 관련자를 불공정거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감사원도 부랴부랴 감사 결과를 냈다. 정태근 의원은 “지난해 3월부터 조사에 들어간 금융당국이 10개월이 지나서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며 “조그마한 코스닥 벤처회사의 주가조작 혐의를 조사하면서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린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정 의원은 “(씨앤케이 의혹을) 조직적으로 축소 은폐하려 한 데는 상당히 센 힘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 정부는 유독 자원개발사업에 전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뛰었고, 이상득 의원과 박영준 전 차관 등이 외교와 협상을 주도했다. 박 전 차관은 ‘미스터 아프리카’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성과는 많지 않다. 그보다는 씨앤케이처럼 미심쩍은 사례만 많이 남겼다. 지난해 청와대와 지식경제부는 보도자료를 내며 “세계 5번째로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유전을 개발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고 밝혔다. 현 정권의 또다른 실세였던 곽승준 청와대 미래기획위원장이 협상을 주도했다. 실제로는 한국 기업에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점개발 권리가 아니라는 얘기다.

자원개발 사업 특혜 논란 뒤따라
2008년 추진했던 이라크 쿠르드 유전 개발 사업도 불투명하다. 2조원대의 사회간접자본(SOC) 개발권을 따냈다고 홍보했지만 불투명한 상태다. 원유도 발견되지 않았다. 투자손실만 4400억원이 났다.

한 자원개발 관계자는 “자원개발은 전문가들이 수십년 공을 들여 뛰어도 될까 말까 한 일인데 정권 실세들이 나서면서 엉망이 됐다”며 “박영준 전 차관이나 이상득 의원이 무슨 자원개발을 한다고 돌아다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자원개발 사업에는 특혜 논란이 뒤따르고 이권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09년 말 정부가 수주했다고 홍보한 UAE 원전 수주 사업은 20조원이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다. 이면계약 논란은 차치하고 정부 주장대로 계획대로 건설이 진행될 경우 2017년부터 속속 원전이 건설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20조원 사업이니까 원전 고로 등 핵심설비가 70%(14조원)에 이른다 치더라도 6조원의 건설비용이 나온다”며 “단순히 인력공급 업체를 만들어 건설인력을 독점 공급만 할 수 있어도 죽을 때까지 먹고사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논리로 보자면 20조원이 투입된 4대강 사업도 상당액이 사업을 주도한 실세들의 뒷주머니로 흘러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4대강 사업 주력지가 낙동강이었고, 이 지역은 현 정권 실세들과 가까운 인사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다.

해외건설 사업도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나 국민주택 사업은 무산 위기에 몰렸다. 11조원을 투입해 주택 20만채를 짓겠다던 이 사업은 가나 측 파트너와 분쟁이 생겨 법정 소송이 벌어지면서 전면 중단된 상태다. 가나 국민주택 사업의 사업자는 STX그룹이다. STX그룹 강덕수 회장은 대구·경북(TK) 출신이다. 박영준 전 차관이 이 주택사업 추진을 위해 가나를 방문했다고 정부는 홍보한 바 있다. 하지만 STX측은 이 사업을 현지대사관이 연결시켜주었을 뿐 박 전 차관이 주선한 것은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 지난해 현지 기공식에는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까지 참석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사업은 이후 한 삽도 뜨지 못한 채 중단됐다.

금융권에서도 뇌관은 수두룩하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12월 이명박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전종화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지난해 9월 상장폐지된 코스닥기업인 씨모텍의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에서다. 씨모텍은 연간 1억 달러 이상을 수출하는 발광다이오드(LED) 부품 업체였다. 하지만 나무이쿼티가 시모텍의 최대주주가 되면서 부실기업으로 전락했다. 나무이쿼티는 기업사냥꾼들이 차입금으로 설립한 비상장기업이다. 전씨는 이 회사의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나무이쿼티는 저축은행 차입금 등으로 씨모텍을 인수하고 유상증자를 통해 280억원을 횡령했다. 금융당국은 씨모텍의 부사장이었던 전씨가 유상증자 당시 부정거래에 가담한 혐의가 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의 수사 결과에 따라 다시 정치권과 경제계를 달굴 가능성이 크다.
외환은행 대주주인 론스타 의혹은 야권이 단단히 벼르고 있는 사안이다. 금융당국이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하자 야당은 국회국정조사와 청문회를 추진하기로 했다. 야당이 4월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에는 폭발력이 만만찮을 전망이다. 민주통합당 박영선 최고위원은 1월 26일 저녁 여의도 금융위원회 앞에서 열린 외환은행 노조의 촛불집회에 참석, “외환은행을 MB 친구인 하나금융 김승유 회장에게 넘긴다면 또다른 게이트의 시작”이라고 규정했다. 김진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도 “정부가 의혹을 해소하지 않고 외환은행의 하나금융 자회사 편입을 승인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밝혔다.

야당, 론스타 외환은행 매각 의혹 초점
야당이 론스타 의혹을 주목하는 이유도 핵심은 청와대다. 론스타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우호적이었던 부시 전 대통령 가문이 깊게 연루된 미국 사모펀드다.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사들이기로 한 하나금융의 김승유 회장은 이 대통령의 오랜 지인이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그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이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 결과와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자회사 인수 승인 심사 결과 발표를 막판까지 미룬 이면에는 이런 정치적 부담이 작용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해외 자본의 국내 은행 인수에는 이런저런 정치적 딜이 뒤에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그 문제를 파기 시작하면 김대중 정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며 불편한 감정을 내비쳤다.

4대 금융지주는 하반기로 갈수록 지배구조 리스크가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 정부 이후 4대 금융지주 회장이 현 정부와 가까운 인물들로 물갈이된 후유증이다.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기 훨씬 전부터 지근거리에서 경제와 금융을 자문해왔다.

하나금융의 김종렬 사장이 최근 사의를 표명하자 ‘내부 권력투쟁설’이 제기됐다. 김승유 회장 이후 후계구도를 둘러싼 갈등에서 김 사장이 밀린 것 아니냐는 관측이었다. 올 3월 임기만료인 김승유 회장은 내년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거취가 불투명한 상태다. 논란이 확산되자 김승유 회장이 직접 나서 “사실이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답할 수 없다. 내부에 사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여운을 남겼다.

금융권에서는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과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교체 1순위에 올라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주요 인사들이 조기 퇴진을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박병률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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