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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용산 막을 대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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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효성 낮은 보완책, 시민사회 ‘강제퇴거금지법’ 주장

용산참사는 무분별한 재개발을 허용하는 재개발제도의 문제점이 낳은 참극이다. 3년 동안 이런저런 보완책이 나왔다. 그러나 재개발지역 상인들과 전문가들은 실효성이 떨어지는 대책들이라고 평가한다.

참사 직후 정부가 가장 먼저 내놓은 것은 2009년 2월 발표한 ‘용산 화재사고 후속 제도개선방안’이다. 정부는 조합원에게 분양하고 남은 물량을 상가세입자에게 우선 분양하는 방안(상가세입자 우선 분양), 영업손실보상비를 3개월치에서 4개월치로 늘리는 방안(영업손실보상비 상향 조정)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내용을 법제화한 결과물이 2009년 5월 국회에서 통과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정법’) 일부 개정안이다. 사업 절차에서 세입자 의견 반영, 조합-세입자 간 분쟁 해소, 세입자 보상 현실화 및 재정착 등 세 가지 방향에 초점을 맞추어 법안, 시행령, 시행규칙에 관련 내용 10개 항목이 포함됐다.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관계자와 용산참사 유족들이 지난해 12월 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구속된 철거민 석방과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관계자와 용산참사 유족들이 지난해 12월 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구속된 철거민 석방과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권리금, 여전히 법적 보호대상 제외
그러나 법조항 및 이 법안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보면 곳곳에 구멍이 있다. 먼저 상가세입자 우선 분양을 규정한 도정법 시행령 41조의 경우, 은행 대출이나 융자를 안고 있는 중소자영업자들은 분양권을 받더라도 입주에 필요한 비용을 치를 여력이 없다. 영업손실보상비를 1개월치 더 늘리도록 한 시행규칙도 현실성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토지보상법에서 규정하는 영업손실보상 기준 자체가 명확하지 않다. 방식도 문제다. 통상 감정평가사들이 3년간 평균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감정평가는 요식적인 행위일 뿐 사실상 조합이 결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상가세입자들은 말한다. 금액이 터무니없이 낮다는 것도 문제다. 권리금과 시설투자비 등을 포함해 억대가 넘는 돈을 투자한 상인들이라도 3개월치 보상비로 손에 쥐는 돈은 수천만원에 불과했다. 용산참사 당시 사망한 양회성씨는 보증금과 시설투자비 등으로 가게에 2억원을 썼지만 보상비로 받은 돈은 5000만원이었다. 상인들 입장에서 보면, 영업손실보상비 3개월치를 4개월치로 바꾸는 것은 ‘대책’이라고 하기에 민망한 수준이다. 게다가 가게를 인수할 때 이전 상인에게 관행적으로 내는 권리금은 법적 보호대상이 아니다. 장사를 시작한 이후에 재개발과 맞닥뜨린 상인들은 이를 회복할 방법이 없다.

오히려 개악된 부분도 있다. 도정법 48조가 대표적이다. 법안을 보면, 세입자를 둔 조합원(건물소유주)의 재산에 대한 감정평가를 할 때 세입자 보상비를 빼고 손실보상을 하도록 했다. 종전에는 조합이 세입자에게 손실보상을 하면 이를 조합 사업비에서 공제하도록 했다. 종전의 조합-세입자 간 분쟁을 없앤다는 취지다. 문제는 세입자 보상비를 빼고 소유주(조합원) 재산에 대한 감정평가를 하도록 함으로써 세입자에 대한 보상비가 소유주의 부담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소유주가 세입자 보상비 부담을 덜기 위해 사업시행인가 전 세입자와의 재계약을 거부하고 세입자를 강제로 내쫓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어느 정도 진일보한 개선안은 용산참사 이후 2년 10개월이나 경과한 지난해 12월 30일에 나왔다. 이날 국회를 통과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과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 그것들이다. 핵심은 뉴타운·재개발사업에 일몰제를 도입한 것이다. 정비구역 지정 예정일로부터 3년 이내에 정비구역을 지정하지 않는 경우, 정비구역 지정 후 2년 이내에 추진위원회 승인을 신청하지 않는 경우, 추진위 구성 후 2년 이내 조합설립 인가 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 조합설립 인가일로부터 3년 이내 사업시행 인가를 신청하지 않는 경우에 정비구역 지정이 해제되도록 했다. 주민동의 요건도 강화했다. 정비예정구역이나 추진위가 구성되지 않은 정비구역의 경우 토지 등 소유자 30% 이상이 해제를 요청할 경우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 해제할 수 있도록 했고, 진행 중인 기존 정비사업의 경우에는 토지 등 소유자 10~25%가 요청할 경우 주민 과반수 이상 동의로 추진위와 조합 해산을 가능하게 하는 2년간의 한시규정을 도입했다. 백준 대표(주식회사 J&K 도시정비)는 “아직 법안 고시는 되지 않았지만 절차를 엄격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박원순 시장 대책 관심 쏠려
이외에도 몇 가지 제도적 보완책이 나오긴 했다. 서울시는 2009년 관할 구청이 정비업체 선정과 재개발조합추진위 설립을 관리하는 공공관리자제도를 도입하고 재개발·재건축 정보 공시 웹사이트 ‘클린업시스템’을 만들었지만 근본적인 대책으로는 미흡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원호 용산참사 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개선 위원회 사무국장은 “세입자 재정착 대책이 담겨 있지 않다. 세입자 분쟁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시공사 선정 등에서의 비리를 차단하는 차원에 머물렀다”고 말했다. 정부는 2010년 6월 30일부터 동절기 강제철거를 금지하는 도시개발법 시행령 개정안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도시개발법상 진행되는 도시개발구역 내 대규모 공공개발에만 적용된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재개발 갈등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도정법상 소규모 주택 재개발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용산참사의 직접적 원인이자 재개발사업의 가장 첨예한 문제 중 하나인 강제철거에 대한 대안은 여전히 미비하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에서는 강제퇴거금지법을 마련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용산참사 이후 시민사회단체는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위원회’(제정위원회)를 꾸려 법안을 준비해왔다. 법안의 뼈대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강제퇴거 예방과 재정착 권리 보장 책임 명시 ▲모욕·폭행·협박 등의 방법을 통한 퇴거 종용과 퇴거 과정에서 폭력행위 금지 ▲야간과 겨울철 퇴거 금지 등이다. 여기에 더해 실효성 있는 처벌조항을 마련하는 내용까지 들어가 있다. 제정위원회는 용산참사 3주기 추모기간 중 정동영 민주통합당 의원 대표발의로 입법안을 제출하고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월에 발표하기로 한 뉴타운·재개발 대책에도 눈길이 쏠린다. 시민사회 출신인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과정에서 뉴타운·재개발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표명해왔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의 대책이 나올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11월 14일 발족한 ‘희망서울 정책자문위원회’ 도시·주택분과 자문위원인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아직 확정된 건 없다. 이미 진행된 사업들이 많아 어느 정도 수준에서 제어할 것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원호 사무국장은 “현실적으로 일괄적 해법을 마련하기는 어렵더라도 서울시가 그간 추진해온 정책에 대해 사과하고, 해법이 온전하지는 않더라도 하나씩 풀어나가겠다는 선언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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