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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능욱 ‘40년 바둑 한’ 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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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서 조훈현 꺾고 우승 한풀이… 만년 준우승 딛고 첫 축배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뭔가 간절히 바라던 일이 이뤄졌을 때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소리다. 목숨과 맞바꿀 만한 것이니,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이런 비장한 얘기를 바둑 한 판 이기고 툭 내던진 사람이 있다. 더욱이 그는 이기고 지는 일이 일상사인 프로기사다.

서능욱 9단. 바둑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름이 귀에 익은 한국의 간판급 프로기사다. 그는 14세 때 프로의 문턱을 넘은 후 40년 동안 반상의 승부를 벌였다. 그 사이 1683번을 싸워 988번을 이기고 690번을 졌다. 바둑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무승부도 5번이나 기록했다. 하지만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당대 최고수 조훈현에 번번이 무릎

‘손오공’ 서능욱 9단이 입단 40년 만에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사진은 12월 27일 벌어진 제2기 대주배 결승전에서 서 9단이 생애 첫 우승을 향해 침착하게 착점하고 있는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손오공’ 서능욱 9단이 입단 40년 만에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사진은 12월 27일 벌어진 제2기 대주배 결승전에서 서 9단이 생애 첫 우승을 향해 침착하게 착점하고 있는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는 “이제는 승부사로서의 길을 가기 어렵지 않은가”라며 50줄에 들어서 술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최근 한 판의 바둑을 이기고 눈시울을 붉혔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이제야 준우승의 한을 풀었기 때문이다.

58년 개띠인 서능욱 9단은 어린 시절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다. 까까머리 중학생으로 프로가 됐다. ‘손오공’이란 별호도 그때 붙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수영 사범이 “큰 재주는 아직 몰라도 잔재주는 정말 많다”는 의미에서 지어준 별명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그는 입단 후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승부에만 온 마음을 쏟아부을 수 없었던 가난 탓이었다.

‘서능욱’이란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입단하고 나서 5~6년이 지난 후다. 1978년 왕위전 본선 멤버가 되면서 발동을 건 그의 상승세는 이듬해 제4기 최강자전 결승, 그 다음해 제1기 전일왕위전 결승으로 이어졌다. 비록 두 차례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그가 곧 챔피언에 등극할 것을 의심한 사람은 없었다.

당시는 ‘바둑황제’ 조훈현이 바둑계 전체를 호령하는 가운데 ‘야전사령관’ 서봉수가 고군분투하던 시절로, 이들 투톱에 서능욱·장수영·강훈·백성호·김수장 등이 끊임없이 도전하는 형국이었다. 이들 ‘도전 5강’ 중 선봉장이 서능욱 9단이었다.

그러나 그의 손에는 좀처럼 우승 트로피가 쥐어지지 않았다. 1983년 대왕전의 도전자가 됐지만 또다시 조훈현의 이름만 높여줬다. 그래도 대왕전과는 인연이 깊은지, 이후 3연속 도전권을 잡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대왕’의 자리는 여전히 조훈현이 지켰다. 4연속 도전에 4연속 패배. 정말 서럽고 분했을 터이다.

그래도 서능욱 9단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1987년에는 최고위전과 KBS바둑왕전에서, 1989년에는 KBS바둑왕전에서, 1990년에는 MBC제왕전과 KBS바둑왕전에서, 그 이듬해에는 패왕전에서 우승에 도전했다. 딱 한 번만이라도 최후에 웃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모든 결승 무대에서 그는 눈물을 흘려야 했다. ‘천적’ 조훈현 앞에서….

그는 조훈현과 결승에서 12번 만나 12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1992년에는 최고위전에서 조훈현의 제자 이창호에게 도전장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스승을 잡는 제자’ 이창호 앞에서 그는 또다시 작아져야 했다. 사제 2대에 당한 13번의 패배. 이후 ‘서능욱’의 이름은 한동안 타이틀 무대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19년이 흘렀다. 그 사이 열댓 살 여드름 많던 소년 이창호가 30대 중반을 넘어서고, 늘 자신의 앞길을 막고 나서던 조훈현 역시 ‘바둑황제’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마음 속 깊이 품은 복수의 칼에도 녹이 슬었을 세월.

그러다 지난해 ‘제2기 대주배 시니어 최강자전’을 마주했다. 지난해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본선에 진출하는 등 고목에 꽃이 핀 듯한 활약을 보여준 서능욱 9단은 대주배에서 결승땅을 밟았다. 준결승전에서 자신을 ‘소서(小徐)’로 만든 ‘대서(大徐)’ 서봉수를 셧아웃시키고 오른 무대. 19년 만에 다시 찾아온 우승 한풀이의 기회이기도 했다. 더욱이 상대가 조훈현이었다.

“우승을 위해 영혼이라도 팔고 싶었다”

대주배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서능욱 9단이 시상식에서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주배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서능욱 9단이 시상식에서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능욱은 녹이 잔뜩 슨 복수의 칼을 다시 벼렸다. 그리고 2011년이 저물어 가던 12월 27일, 서능욱은 마침내 조훈현의 심장에 준우승의 아픔을 질러박았다. 그동안의 한을 토해 내려는 듯 조훈현의 울트라급 대마를 몰살시켰다.
그러고 한 말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이다.

그는 계속 준우승을 할 때의 심정을 “그때는 정말 죽고 싶었다. 우승을 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아야 한다면 팔았을 것이다. 하루는 지고 집에 가는 길에 죽고 싶어 차도에 뛰어들다가 택시기사에게 혼난 적도 있다”고 들려줬다.

서능욱의 우승에 바둑팬들도 신이 났다. 그에게는 광팬이 적지 않다. 누구와도 격의없이 잘 어울리는 넉넉한 성품 덕이다. 거침없이 시원한 속기에다 지독하게 치고받는 싸움바둑도 인기 비결이다. 특히 그의 ‘초속기’는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염주를 들고 대국을 한 것도 그 중 하나.

염주를 돌리면서 급한 마음을 가라앉히면 좀 더 나은 성적을 거두리라고 생각한 부인(현인숙씨)의 권유를 따른 것. 그러나 그는 대왕전에서 염주를 너무 빨리 돌리다 끈이 끊어져 염주알을 바둑판에 쏟는가 하면 염주는 왼손으로 돌리며 오른손으로 계속 초속기 바둑을 두곤 했다.

서능욱 9단은 50줄에 들어서기 전에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우승을 위해서는 나름대로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때문에 주변에는 그가 술을 못 마시는 줄 아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거의 매일 마신다. “사람마다 평생 마실 주량이 있다는데, 여태껏 안 마셨으니 그것까지 마실 요량이다”라며 웃음짓기도 한다.

서능욱 9단의 팬이라면, “승부를 포기(?)하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는 그가 이번 우승으로 다시 승리욕을 불태우기 전에 서둘러 술자리를 가져야 할 듯하다.

<엄민용 스포츠경향 기자 margeul@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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