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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후계자는 북한을 어디로 이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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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김정일 통치의 막을 내리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 북한체제는 후계자 김정은을 중심으로 안정을 되찾고 있지만, 조문정국 이후 김정은 체제의 안착여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한반도가 또다시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2월 17일 오전 8시30분 과로로 열차에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9월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노농적위대 열병식 모습. 김 위원장과 김정은(왼쪽)이 열병식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2월 17일 오전 8시30분 과로로 열차에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9월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노농적위대 열병식 모습. 김 위원장과 김정은(왼쪽)이 열병식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항상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식사 후에 한 움큼의 약을 입에 털어넣었다. 김 위원장은 약을 먹을 때마다 “나는 평생 이 약을 먹어야 하나”라는 말을 중얼거리곤 했다. 김 위원장의 곁에는 여러 종류의 약이 정제돼 있는 전용 약통이 따라다녔다. 그는 아버지인 김일성 주석과 같이 심장병을 비롯해 당뇨병, 만성신부전 등 합병증을 앓고 있었다. 그는 소원대로 더 이상 약을 먹을 필요가 없게 됐다. 김정일 위원장이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 중증 급성 심근경색과 심장쇼크 합병으로 사망했다. 이로써 김일성 주석 사후 김정일 시대를 연 지 13년 만에, 1974년 후계자로 공식화된 지 37년 만에 김 위원장의 철권통치가 막을 내렸다. 그의 급사(急死)는 남북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메가톤급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한반도가 불확실성 시대로 접어들었다. 한반도 정세의 한 축을 형성해온 북한 최고 실권자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향후 정세가 어디로 향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 체제는 후계자 김정은을 중심으로 안정을 되찾고 있지만, 조문정국 이후 김정은 체제의 안착 여부에 대해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김정일 급사로 ‘후계작업’ 미완성
특히 한반도 정세를 좌우하는 주요 열강과 남북한의 정치적 지배구조가 일거에 교체기를 맞는 내년의 ‘정치적 빅뱅’을 코앞에 두고 김 위원장의 사망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재정비 시간이 오래 갈 수 있다. 한국은 4월과 12월에 총선·대선이 있으며, 미국과 러시아는 각각 11월과 3월에 대선이 있다. 중국과 일본도 권력 재편기에 있다. 현재 한국을 비롯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 열강은 북한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취할지, ‘포스트 김정일 체제’를 숨 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김정은 체제의 안착 여부에 대해서는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김정은 체제가 불확실성을 넘어 불안해질 수 있다는 근거는 김정은이 20대의 젊은 나이에 북한의 지도자에 오른 점과 충분한 후계수업을 받지 못한 점이다. 실제로 김정일은 1974년 후계자로 지목된 이후 20여년간 후계자 지위에서 권력을 공고히 다졌으며, 52세에 김일성의 사망으로 자연스럽게 북한 최고권력자로 바통터치했다.

하지만 29세(북한 주장. 실제로는 28세로 추정)의 김정은은 지난해 9월에야 비로소 정식으로 후계자에 지명됐다. 또한 김 위원장의 급사로 후계작업을 완료하지 못했다. 현재 정식 직책이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인 김정은이 최소한 북한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당 조직비서 또는 국방위 부위원장에는 올랐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실제로 김정은으로의 후계세습은 김일성-김정일 권력이양에 비하면 상당히 취약하다. 비록 당·정·군을 김정은 측근들이 차지하고 있다 해도 아직도 상당수 구세력이 권력의 핵심부에 존재하며, 그 중 일부는 김정은의 능력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문정국 이후에 북한에 한바탕 피바람이 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은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인치(人治)로 북한을 경영했다. 어려서부터 권력의 속성을 몸소 체험한 김 위원장은 특유의 카리스마와 용인술로 정적을 제거하고 파워엘리트들로부터 충성을 맹세받았고, 북한 주민들을 통제해왔다. 채찍과 사탕을 적당히 사용하면서 절대권력을 행사한 것이다.

북한 조선중앙TV가 12월 20일 금수산기념궁전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신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TV가 12월 20일 금수산기념궁전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신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북한은 지난 1990년대 이후 경제난 심화 등으로 당대회가 열리지 않는 등 보편적인 사회주의 국가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국가의 모습을 보여왔다.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리더십이 입증되지 않은 김정은이 북한이라는 시스템이 붕괴된 국가를 통치하기는 무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은 김 위원장 사망에 따른 애도의 물결 때문에 나타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북한 정국에 불확실성이 증대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류길재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앞으로 북한이 개혁·개방, 대외관계 개선 등 주요 현안을 추진할 때 정책 결정과정에서 김정은의 배후에서 불안정한 상태가 발생할 수 있다”며 “김정은 배후의 정치세력들이 주요 정책 결정사항을 놓고 단합된 모습을 보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은의 북한’ 전문가 전망 엇갈려
북한은 앞으로 후계자 김정은을 중심으로 일정한 과도기를 거치며 위기 수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김정은의 후견인이자 고모인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 고모부 장성택 당 행정부장 등 우호세력을 중심으로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할 수도 있다.

반면 김정은 체제가 공고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많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에는 몇 가지가 있다. 김정은이 지난해 9월 공식 후계자가 된 이후 핵심 권력기관인 군대와 정보기관을 모두 장악했다는 점이다. 김정일 사망 발표 직전에도 김정은은 전군에 ‘김정은 대장 명령 1호’를 하달, 훈련을 중지하고 즉각 소속부대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김 위원장은 1년 전 당대표자회의를 통해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세우면서 군정보기관을 장악케 하고, 중간급 이하의 당과 군의 인사권도 행사토록 했다. 특히 김정일은 장성택의 힘이 너무 세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안전장치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의 최측근인 리영호(인민군 총참모장)를 군에, 최룡해(당 비서)를 당에 배치시킨 것이 단적인 예다.

특히 김정일 장의위원회 명단을 보면 김정은이 제일 먼저 나온다. 김정은이 장의위원장인 셈이다. 사회주의체제에서는 최고지도자의 사망시 장의위원장을 맡은 인사가 권력을 승계해왔다. 소련의 스탈린 사망시 흐루시초프가 장의위원장을 맡았으며, 김정일도 김일성 사망 때 장의위원장을 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객관적으로 김정은 권력의 공고화 문제는 김정은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권력자의 존재 여부와 깊은 관계가 있다”며 “그런데 지금 북한에서는 김정은과 경쟁하여 그를 대체할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다만 김정은이 생전에 김정일이 역점을 뒀던 경제 살리기와 대외관계 개선에 실패해 주민들의 생활이 지금보다 더 궁핍해지면 김정은의 교체 움직임이 나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권력투쟁 성격보다는 북한을 이끌어갈 지도자의 자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근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김정은 정권 출범 초기에는 차분하게 별문제 없이 안정적으로 갈 가능성이 크지만 아버지가 없는 상황에서 자기실력으로 가시적인 업적을 실현해야 할 상황”이라며 “짧은 시간 안에 당 장악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시간을 질질 끌고 대외적인 문제나 강성대국 건설 등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못내게 되면 일정한 갈등이 생길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표지인물]젊은 후계자는 북한을 어디로 이끌까

김정은 후계체제가 불안정하긴 하지만 ‘김정일의 부재’가 곧바로 북한의 체제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동국가들에서 일어난 ‘재스민 혁명’ 처럼 아래로부터의 혁명 가능성은 북한에서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북한은 김일성·김정일 유일지배체제를 중심으로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등의 공안기관을 앞세워 주민들을 철저히 통제하고 그물망 같은 감시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한 북한 전문가는 “일부 보수진영에서 북한에서 주민들의 봉기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북한 주민들은 민주화의 경험이 없는 데다 총칼을 가진 권력에 대항할 힘도 없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북한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도 북한의 급작스런 붕괴를 원치 않는다. 오승렬 한국외국어대 중국학부 교수는 “중국은 미국이 북한을 직접 공격하는 등 특수한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북한의 내정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전통적인 혈맹인 북한과 중국은 김정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핵무기 통제권 여부 최대의 관심사
국제전문가들에게는 과연 김정은이 핵무기에 대한 통제권을 확고히 갖고 있을까 하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다. 그동안 김정일 위원장이 북한의 핵정책과 관련한 최종 결정권을 행사해왔다. 김 위원장이 핵과 미사일 등 주요 정책 결정을 하는 최고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의 수장으로 있었고, 그의 최측근들로 위원회가 구성돼 있었다. 김 위원장 사망과 동시에 그가 가졌던 핵통제권은 후계자인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게 이양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북한의 권력 축이 국방위에서 당중앙군사위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각에서는 2008년 8월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부터 핵통제권 같은 주요 정책 결정 권한을 김정은에게 넘겨줬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 경우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 등 김정은 핵심 측근그룹이 김정은의 핵 관련 정책 결정을 보좌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어린 후계자’ 김정은의 국정운영 및 군부 장악 능력이 여전히 검증되지 않은 만큼 북한의 핵통제권이 불확실한 상황으로 보고 있다. 한국, 미국 등 주변국은 이런 상황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가 중동 등 아랍국가들로 반입되는 것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상정하고 있다. 한·미 정보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30~40㎏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어, 5~8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북한은 이미 1~2개의 핵무기를 개발, 핵실험까지 마친 상태다. 현재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통제력 상실에 대비한 대책을 마련해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급변 사태에 대비한 ‘개념계획 5029’도 이런 대비책 중 하나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북한과 미국 간에 북핵 협상과 관련해 중대 결단을 해야 할 부분이 있다”며 “김정일 위원장 사망과 당분간 이어질 일종의 후계 준비 기간에 미국이나 한국이 상황관리를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착상태 빠진 남북관계 중대기로에
이와 관련,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과 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사망 당시의 한반도 정세가 묘한 닮은 꼴이어서 눈길을 끈다. 김일성 주석의 사망 사실이 발표된 것은 1994년 7월 9일이다. 당시 북한과 미국은 전날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3단계 북·미 고위급 회담을 진행했다. 그러나 김 주석의 사망 소식이 긴급 타전되면서 북측은 미국측에 회담 연기를 요청했고, 회담은 결국 3개월이 지나서야 재개됐다. 김 위원장 역시 북핵 해결을 위한 6자(남북한 및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회담을 위한 북·미접촉이 이뤄지고 있던 도중 사망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12월 19일 청와대에서 비상국무회의를 주재,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에 따른 국가안보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이 12월 19일 청와대에서 비상국무회의를 주재,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에 따른 국가안보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은 핵무기를 체제유지의 보루로 여기고 있는 만큼 미국과 협상에 나선다면 위협과 대화를 반복하며 ‘벼랑끝 전술’을 이어갈 공산이 크다. 북한의 핵전략은 핵을 단계적으로 포기하는 대신에 ‘식량과 에너지 확보→경제회복과 경제발전→북·미수교 및 미국의 경제지원→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 등의 목표를 갖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을 계기로 남북관계도 중대 기로을 맞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 조건으로 천안함·연평도 사건의 사과를 일관되게 유지해왔다. 하지만 당시의 최고책임자가 사망함으로써 두 사건에 대한 사과문제도 풀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됐다. 이와 관련,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앞으로의 남북관계를 유연하게 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에는 남북대화보다는 당장 체제를 안정시킬 시간이 필요하다. 당분간은 남북간의 대화기류가 올스톱될 수밖에 없다. 현재 북한의 상황이 여의치 않고, 북한 내부의 움직임에 따라 앞으로의 상황도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내년 1월에 남북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단서가 나올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이 김 위원장의 애도기간(12월 29일까지)이 끝나고 1월 1일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남북관계 등 대외정책 기조를 발표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1월 8일 김정은의 생일을 전후해서 북한의 대남정책이 드러날 수도 있다. 이 경우 남한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의 연초 신년사와 외교·안보부처의 업무보고 등에서 정부의 대북정책 흐름이 나올 수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특히 1월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김정은 체제 안착 문제가 한·중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될 전망이다.

김정은은 김정일 위원장 사망과 동시에 ‘김정일 유훈통치’를 시작했다. 김일성 주석 사후 김 위원장의 유훈통치에 이어 두 번째다. 김정은은 당분간 김 위원장 생전에 추진했던 정책 실현에 총력을 다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일 위원장은 북한을 강성대국으로 만들겠다고 한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하지만 그가 약속한 강성대국 원년을 불과 14일 앞두고 돌연 사망했다. 그가 숨진 장소도 현지지도 와중에 타고 있던 야전열차 내부였다고 한다. 과연 북한을 3대째 지도하고 있는 김정은이 아버지가 못 이룬 꿈인 강성대국을 완성하고 롱런할 수 있을까.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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