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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사망, 51시간 동안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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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체제’ 공식화를 위한 준비 시간… “권력투쟁 일어날 시기 아니다”

51시간 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소식이 외부에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은 사망 후 51시간 만이었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22시간 후 소식이 전해졌던 것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난다. 김 위원장 사망 후 51시간 동안 북한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궁금증이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장례식 준비와 ‘김정은 체제’ 공식화를 위한 준비 시간”이라고 분석했다.

12월 19일 정오에 북한 조선중앙TV 아나운서가 검은 상복을 입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7일 8시30분 과로로 열차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김 위원장 사망이 51시간 만에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이다. /연합뉴스

12월 19일 정오에 북한 조선중앙TV 아나운서가 검은 상복을 입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7일 8시30분 과로로 열차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김 위원장 사망이 51시간 만에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이다. /연합뉴스

12월 17일 오후 북한의 지방 도시를 방문했던 중국 소식통의 휴대전화가 불통이 됐다. 평양으로 통하는 일반회선 전화는 하루 종일 연결되지 않았다. 평양과 지방 도시를 연결하던 열차 운행은 중단됐고, 지방정부·군 고위간부들이 차량으로 평양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12월 22일 아사히신문이 중국 소식통을 인용한 12월 17일 북한의 모습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유출되지 않도록 통제가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이상 동향 없는 건 체제 안정화 의미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은 사망 후 51시간 만이었다. 12월 19일 정오 조선중앙TV와 조선중앙방송은 ‘특별방송’을 통해 김 위원장이 지난 17일 오전 8시30분 현지지도를 하다가 갑자기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51시간의 공백 동안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은 ‘부검’을 했다는 사실 뿐이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 동지의 질병과 서거원인에 대한 의학적 결론서’에서 “(12월)18일에 진행된 병리해부검사에서는 질병의 진단이 완전히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사인은 중증급성심근경색과 심장성 쇼크 합병이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때도 부검을 했다. 경남대 김근식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최고지도자가 죽으면 사망 원인을 투명하게 하기 위해 부검을 한다”고 설명했다. 부검은 간략하게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북한은 발 빠르게 232명의 ‘장의위원’ 명단도 발표했다. 1번은 후계자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고, 2번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었다. 북한의 권력 서열을 보여주는 리스트이기도 하다. 232명이라는 구체적인 장의위원을 발표한 것은 장례식 준비가 잘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경남대 이수훈 교수(정치사회학)는 “장의위원이 232명이다. 200명도 아니고, 232명이라는 구체적인 숫자가 제시된 것은 51시간 동안 장례식 준비를 철저하게 했음을 보여준다”면서 “232명에 들어간 이들은 북한의 권력층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북한은 김 위원장의 시신을 공개했고, 김정은 부위원장이 조문객을 받는 모습을 공개했다. 김 위원장의 장례식을 통해 김정은 부위원장의 시대로 넘어갔음을 보여준 것이다. 북한 지도부가 장례식 준비와 부검 등을 하면서 51시간을 사용했지만, 가장 중요했던 것은 김정은 체제 안정화를 위한 준비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지난해 9월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오르면서 후계자라는 사실을 대내외에 알렸다.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은 역설적이게도 1년 동안 김정은 체제가 안정화 됐다는 평가를 받는 계기가 됐다. 김 위원장 사망이라는 큰 사건이 일어났지만, 북한 체제 내에서 이상 동향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년 동안 김정은 체제가 자리 잡지 못한 상태였다면 51시간 안에 체제를 안정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12월 20일 오후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유리관에 싸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공개됐다. /연합뉴스

12월 20일 오후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유리관에 싸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공개됐다. /연합뉴스

세종연구소 백학순 수석연구위원은 “김 위원장 사망 이후 곧바로 위대한 영도자로 김정은을 표현했다. 김정은이 약했다면 그런 식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51시간 동안 김정은 체제를 공고화한 것이 아니라, 실세들 사이에서 김정은을 지도자로 합의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런 합의가 가능한 것은 1년 동안 그런 준비를 쭉 해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내부에서 권력 투쟁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는 질문에 백 수석연구위원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권력투쟁이 일어날 시기가 아니다”면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는데도 경제가 엉망이라면 그때서나 권력투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근식 교수도 “권력이 집중화된 나라에서 51시간 동안 쿠데타나 권력 저항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체제 정비가 어느 정도 된 것”이라며 “51시간 동안 김정은 체제가 성공적으로 준비됐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권력이라는 것은 초기에 단합을 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사망 시점·장소 발표와 달라’ 의혹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 김정은 부위원장이 차기 지도자로 인정받았다는 정황도 나왔다. 12월 19일 김 위원장 사망 소식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직전 김 부위원장은 군에 ‘김정은 대장 명령 1호’를 보냈다. 훈련을 중지하고 즉각 소속 부대로 복귀하라는 지시였다. 이 명령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명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 중앙군사위는 2010년 9월 44년 만에 열린 당대표자회의에서 당 규약 개정을 통해 상설 최고군사기관으로 격상됐다. 김정은 체제의 권력 핵심기관이 당 중앙군사위가 될 것임을 보여준다. 김 위원장 사망 사실이 북한 내부의 핵심 인물들에게 전달됐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12월 23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사망했던 12월 17일 저녁 때까지 30여 명의 당 정치국원과 중국 주재 대사 등에게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은 22시간 만에 알려졌다. 51시간과 22시간의 차이는 어떻게 봐야 할까. 전문가들은 체제 안정성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이수훈 교수는 “김정은 체제가 김정일 체제보다는 취약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은 체제에 대해 측근들이 논의를 해야 할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51시간보다 더 많은 공백 시간이 있었다는 설도 일부에서는 제기되고 있다. 김 위원장 사망 시점과 장소가 북한 공식 발표와 다르다는 주장이 외신에서 흘러 나왔다. 12월 22일 일본 아사히TV가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평양에서 약 40km 떨어진 별장 집무실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됐다”고 전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도 김 위원장이 12월 16일 밤 평양 관저에서 사망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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