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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권력 ‘김정일 시대’ 저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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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3일 오후 화물을 실은 트럭이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서 조·중우의교를 통해 북한 신의주 쪽으로 줄지어 들어가고 있다. /정지윤 기자

2011년 12월 23일 오후 화물을 실은 트럭이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서 조·중우의교를 통해 북한 신의주 쪽으로 줄지어 들어가고 있다. /정지윤 기자

2011년 12월 22일 평양 시민들이 눈을 맞으며 김정일 위원장을 추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011년 12월 22일 평양 시민들이 눈을 맞으며 김정일 위원장을 추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이날 오전 8시 30분 특별열차 안에서 심근경색과 심장쇼크가 일어나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17년 동안 절대권력을 행사해온 김정일의 시대는 그의 급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막을 내렸다. 김 위원장이 통치하던 시기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강도 높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군부를 국가 통치의 중심에 두는 ‘선군정치’로 이 어려움을 돌파하려 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대외적으로는 화해와 대결 사이를 오고 갔다. 김 위원장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유고라는 비상상황에서도 북·미 기본합의를 이뤄내고 2000년에는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 직전까지 갔지만, 핵을 포기하지 않은 대가는 미국의 경제제재로 이어져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북한 인민들의 민생고 해결에 실패하고 북·미관계에서도 확실한 진전을 이뤄내지 못했지만, 남북 교류·협력에서는 괄목할 성과를 남겼다.

김 위원장은 2000년과 2007년 각기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했다. 남북 교류사의 획기적 성과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도 그의 업적이다. 그러나 2010년 11월에는 연평도 포격사건을 일으켜 한반도를 군사적 긴장상태로 몰아넣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1년 8월 24일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후 회담장을 떠나면서 차에 앉아 손을 흔들고 있다. 블룸버그/연합뉴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1년 8월 24일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후 회담장을 떠나면서 차에 앉아 손을 흔들고 있다. 블룸버그/연합뉴스

2011년 12월 22일 판문점의 공동경비구역 북한군 병사가 남쪽 자유의 집의 동향을 살펴보며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김기남 기자

2011년 12월 22일 판문점의 공동경비구역 북한군 병사가 남쪽 자유의 집의 동향을 살펴보며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김기남 기자

2011년 12월 22일 평양시 외곽에 설치된 김정일 위원장의 대형 모자이크 벽화 앞에서 북한 어린이들이 머리를 숙이고 있다. AP/연합뉴스

2011년 12월 22일 평양시 외곽에 설치된 김정일 위원장의 대형 모자이크 벽화 앞에서 북한 어린이들이 머리를 숙이고 있다. AP/연합뉴스

2011년 12월 21일 김일성광장에서 평양시민 수천명이 추모행렬을 이루고 있다. AP/조선중앙통신

2011년 12월 21일 김일성광장에서 평양시민 수천명이 추모행렬을 이루고 있다. AP/조선중앙통신

2011년 12월 19일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 직원들이 조기를 게양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11년 12월 19일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 직원들이 조기를 게양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글·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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