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11년 인물

골리앗에 맞선 이 시대 다윗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주간경향>이 주목한 보통 인물들 그 후 이야기

처음에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홍대 청소노조, 반값 등록금 대학생, 삼성 첫 노조…. 다들 ‘이길 수 없다’ ‘질 게 뻔하다’고 말했다. 상대는 대학재단, 정부, 재벌이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설마 이길 수 있겠어?’라는 의구심은 ‘이길 수 있다’는 확신으로 번졌다. 아직 이기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확신만으로도 이미 절반의 승리였다. 2011년의 끝에서 올 한 해 우리 사회의 권력과 맞서 치열한 싸움을 벌인 다윗들을 만났다.

홍대 청소 노동자 노문희
“먼저 인사하는 학생들이 많아졌어요”

“이제는 우리가 보이기 시작했대요.”
지난 12월 13일 홍대에서 만난 청소 노동자 노문희씨는 지난 겨울의 고단한 싸움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노씨는 <주간경향> 914호의 표지인물이었다.

홍대 청소 노동자 노문희씨. /김석구 기자

홍대 청소 노동자 노문희씨. /김석구 기자

“우리를 비롯해 모든 건물에 청소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홍대 투쟁이 있기 전만 해도 사람들 눈에 우리는 잘 안 보이는 존재였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싸우고 또 성과를 내니까 청소노동자들이 사람들 눈에 보이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먼저 청소노동자들에게 다가가서 수고한다고 인사도 하고 음료수도 건넨다고 하더라고요.” 노문희씨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홍대 청소노조의 복직투쟁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처우가 세상에 알려졌다는 점이 가장 뿌듯했다.

2010년 12월 31일. 170명에 달하는 홍대 청소·경비 노조원들은 해고 통보를 받았다. 집단해고된 이들은 2011년 1월 3일부터 학교 본관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한겨울 내내 지속됐던 이들의 농성은 2월 20일이 돼서야 끝이 났다. 고용승계와 임금인상 약속을 받아낸 값진 승리였다. 그는 “투쟁할 때 외적으로는 고생했지만 내적으로 마음은 아주 따뜻했어요”라며 “그때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고 사랑을 주셔서 너무 고마웠죠”라고 말했다.

학생들도 달라졌다. 당시 일부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 시끄럽다, 집회하지 말라”고 발언해 논란을 빚었다. 노씨는 “투쟁 이전에는 학생들이 우리를 봐도 본척만척했는데 지금은 ‘어머니 수고하신다’고 먼저 인사를 하는 학생들도 많아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일은 고되다. 건물 하나를 두 명의 청소노동자가 맡아서 하다보니 불편한 다리로 종종걸음을 쳐도 하루가 빠듯하다. 휴게 공간도 열악하다. 두 평 남짓한 휴게실은 두 사람이 앉아 있기도 힘들다. 그래도 노씨는 “쉬는 시간도 있고 마음은 옛날보다 많이 편해졌다”고 웃으며 말했다. 당시 비정규직의 문제점을 피부로 느꼈던 노씨는 “비정규직은 내 선에서 끝나고 후대에 물려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의장 박자은
“대학생 관련 공약 1순위는 반값 등록금”

“반값 등록금 집회가 많이 열렸던 청계천에 가면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머리 많이 자랐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박자은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의장 . / 김창길 기자

박자은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의장 . / 김창길 기자

박자은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의장의 머리는 제법 길어 있었다. 반값 등록금을 촉구하며 삭발식을 한 게 지난 5월 2일. 그는 짧은 스포츠 머리로 <주간경향>931호 표지인물로 등장했다. 12월 14일로 박자은 의장은 실질적으로 임기를 마쳤다. 공식 임기는 2월까지이지만 방학이 시작된 만큼 실질적인 임기는 끝난 셈이다. 며칠 쉬면서 보고 싶었던 연극을 보러다닐 생각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극단에 들어가 연극배우가 되는 것이 그의 오랜 꿈이다. 그는 “극단에서 안 받아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돼요.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라며 웃었다. 그는 개인적인 질문에는 때로는 머뭇거리고 수줍어하며 대답을 이어갔지만 반값 등록금에 대한 물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확신에 찬 음성은 때때로 격앙되기도 했다.

“아직 반값 등록금이 정책적으로 실현된 단계가 아니라서 아쉬운 점이 많아요.” 2011년 반값 등록금 운동은 아쉬움도 많았지만 순간순간이 감동이었다. 반값 등록금 운동에 시민들의 호응이 이렇게 클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시민들로부터 ‘장하다’ ‘힘내라’는 응원문자도 많이 받았다. 무엇보다 반값 등록금을 절실하게 외치며 물대포를 맞았던 동료학생들을 잊지 못한다. 9월 29일은 물대포가 나왔던 날이다. 추운 아스팔트 바닥에 물을 맞고 누워 있으면서도 대학생들이 스크럼을 짜고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라’ ‘대학생은 살고 싶다’는 구호를 외쳤다. 그는 “종로 일대를 쩌렁쩌렁 울리는 학생들의 목소리와 살아 있는 눈빛을 보면서 ‘반값 등록금이 되겠구나’ ‘되게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라고 말했다. 당시 힘에 부쳐 벌벌 떨고 있던 자신의 손을 잡아주던 학생들을 떠올리면서 박자은 의장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묻어났다. 집회 현장에서, 비싼 등록금에 힘겨워하는 대학생들의 증언대회에서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반값 등록금 이슈가 1학기에 비해 잊혀진 것 같다는 질문을 하자 그는 내년 선거국면이 또 한번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자은 의장은 “대학생들과 관련된 공약 1순위는 여전히 반값 등록금이다”라며 “이때 대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어 실제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 때문인지 내년 총선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자주 받는다. 그러나 아직 나이도 안될 뿐더러 고민을 해본 적도 없다. ‘정치를 하겠다, 안 하겠다’는 질문은 스무세 살의 대학생에게는 아직 현실감 없는 질문으로 보였다. 그는 “정치를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반값 등록금 운동을 통해 대학생들의 눈물겨운 현실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삼성노조 부위원장 조장희
“노조를 포기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어요. 가끔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굉장히 견고해졌어요.”

조장희 삼성노조 부위원장. /김창길 기자

조장희 삼성노조 부위원장. /김창길 기자

조장희 삼성노조 부위원장은 2011년을 돌이키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7월 18일 무노조 삼성에서도 삼성 에버랜드 현장 노동자 4명이 주축이 된 삼성노조가 탄생했다. 그러나 이 ‘초미니 노조’가 가는 길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출범과 동시에 조장희 삼성노조 부위원장이 해고되고 김영태 노조 회계감사도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회사의 정보를 유출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삼성 측의 대응은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었다. 노조원들은 노조를 준비하면서 회사 측의 대응에 대비한 매뉴얼을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로 겪다보니 체감도가 달랐다. 노조가 설립되고 3개월 동안 회사의 미행과 감시가 계속됐다. 삼성노조와 함께 해고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박종태씨는 사진을 보여줬다. 카메라를 든 한 사람이 숨어 있는 사진이었다. 박씨는 “우리가 집회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몰래 카메라로 우리를 찍고 있던데 저한테 걸렸죠. 이 정도예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힘든 것은 함께 근무하던 동료들이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 박원우 삼성노조 위원장은 “사원들이 노조원들과 같이 어울리면 ‘왜 같이 밥을 먹냐’ ‘왜 어울려 다니냐’는 식으로 회사 측에서 사원들을 압박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사원들이 회사의 눈치를 보고 위축되어 노조에 거리를 두도록 하려는 회사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미행이나 감시를 한 적도 회사 생활에서 압박이나 눈치를 준 적도 없다”고 말했다.

김영태 회계감사는 “회사에서 사원들로 하여금 노조를 감시하게 만들기도 해요. 자기 진급이나 이런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역할을 하는 사원들도 있고요. 그래서 부담스러워할까봐 친한 사람과도 일부러 연락을 안 하기도 하죠”라고 말했다. 그런 만큼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김영태 회계감사는 “급하게 간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요. 사원들에게 ‘믿을 만한 노조’라는 신뢰를 줄 수 있도록 천천히 가다보면 저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좋은 결실이 있을 것이라고 봐요”라고 말했다. 박원우 위원장도 “다소 시간이 걸릴지라도 사원들에게서 충분히 좋은 반응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만큼 지금 주어진 숙제는 ‘노조는 안 된다’ ‘노조는 불법이다’라는 삼성 내부에 ‘세뇌된 정서’를 해소하는 일이다. 조장희 부위원장은 “저희 힘만이 아니라 정세나 상황이 변화하면 이러한 정서는 분명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 봐요”라고 말했다. 지난 1년 힘들었던 만큼 각오도 단단하다. 조장희 부위원장은 “해고, 징계, 고소, 고발 등의 불이익을 많이 받았지만 여기에 위축되어 노조를 포기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며 “우리 4명은 서로 말이 필요 없어요. 서로 말 안 해도 끝까지 갈 것이라는 걸 알고 있고,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서로 알고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지난해 <주간경향>이 뽑은 올해의 인물 김종익씨
“사찰피해자인 나를 도덕적으로 흠집내기”

12월 7일 마포아트홀에서 열린 ‘THE 위대한 검찰’콘서트에 참석한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 /연합뉴스

12월 7일 마포아트홀에서 열린 ‘THE 위대한 검찰’콘서트에 참석한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 /연합뉴스

지난해 <주간경향>이 뽑은 올해의 인물은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였다. 김씨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을 폭로했다. 그를 통해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국가권력의 사유화가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날카롭게 드러냈다. 2010년 <주간경향>이 김종익씨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이유다.

1년이 지난 12월 13일. 김종익씨는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5월 검찰은 김씨를 횡령 혐의로 기소했다. 12월 13일은 검찰의 기소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날이다. 법원은 검찰의 공소를 대부분 기각했다. 공소기각이란 형사소송에서 형식적 요건에 흠결이 있을 때 법원이 실체적 심리를 하지 않고 소송을 끝내는 것을 말한다. 김종익씨에 대한 검찰의 ‘보복수사’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주간경향>은 김종익씨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최근 법원 판결에 대한 소회와 근황을 물었다.

검찰이 기소한 부분이 법원에서 대부분 기각됐다. 심경은?
“그 일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검찰의 기소는 별도의 독립된 사건이 아니라 민간인 사찰이라는 사건과 연결된 것이 아닌가. 사찰 피해자인 나를 도덕적으로 흠집내면 마치 민간인 불법사찰이라는 권력의 치부가 가려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집요하게 도덕성을 공격했다. 심지어 내가 경조금을 보낸 사람들에게 가서 ‘경조금을 얼마 받았느냐’는 것까지 다 조사하는 상황이 됐다. 사회생활 30년 동안 쌓아왔던 사회적 관계, 인간관계는 모두 깨져버렸다. 권력이 한 개인을 이렇게 악의를 가지고 흠집을 내려고 시도했을 때 그 개인의 삶이 얼마나 무참히 깨져나가는지를 알게 됐다.”

올 한 해도 힘들었을 것 같다.
“극단적인 생각도 했다. 검찰은 제가 일했던 회사의 후배들을 불러다 계속 조사를 했다. 당시 그 회사가 3000명 정도를 정리해고하는 시기였다. 직원 입장에서는 검찰에 불려간다는 것만 해도 굉장히 두려웠던 시기였다. 검찰 조사대상이 된 것만 해도 공포에 질리는 것이다. 검찰 조사에 다녀온 후배들 중에는 ‘선배님 때문에 저희 인생도 망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검찰 조사가 언제 어떻게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없고, 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삶이 피폐해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이 고리를 끊어줘야겠구나’라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다. 그런 마음으로 주변정리를 하다보니 후배 2명이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정혜신 선생(정신과 전문의)에게 데리고 갔다. 정혜신 선생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불법사찰과 관련한 사과가 없었나.
“정부에서는 한 마디 사과도 없다.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힘이 들고 망가진 부분이 많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는 몰염치하고 몰상식한 권력이 어디에 있나. 이는 국민을 위한 것이 전혀 아니다. 공식적으로 전 국민한테 민간인 사찰에 대해 사과하고 당사자인 저에게는 원상회복이나 손해배상에 대한 말이 있어야 한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그 국민을 향해서 그렇게 불법적으로 쓰는 권력을 이해할 수 없다.”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어떻게 되고 있나.
“3월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는데 아직 1심도 끝나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김무성·조전혁 의원 등이 색깔론으로 나를 공격한 데 대해서는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송사를 많이 하는 것이 싫지만 주변에서 마음에 내키지 않더라도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책무라고 해서 고발을 했다. 하지만 아직 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주축이 돼 열린 ‘THE 위대한 검찰’ 콘서트에서 검찰 피해자로 증언하기도 했다. 이와 연장선상에서 내년 계획이 있다면.
“지난 콘서트에서 많은 분들이 알아보고 응원과 격려를 해주셔서 참 고마웠다. 내년에 총선과 대선이 있으니까 개혁적인 민주정부가 들어서는 것에 기여할 수 있다면 콘서트에서 증언한 것처럼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겠다. 하지만 현실정치에 참여할 생각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관련기사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