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국회바로세우기 의원들 약속 지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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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21명 의원, 일단 사과는 하지만 총선 불출마는 “글쎄요”

“우리는 2011년도 예산안 등의 강행처리에 동참함으로써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폭력으로 얼룩지게 만든 책임이 우리 자신에게도 있음을 깊이 반성합니다.(중략) 앞으로 우리는 의원직을 걸고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에 동참하지 않을 것임을 말씀드리며, ‘이를 지키지 못할 때에는 19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임을 국민 앞에 약속드립니다.”

지난해 12월 16일 한나라당 ‘국회 바로세우기’를 다짐하는 국회의원 일동(국회바로세우기모임) 명의로 낸 ‘자성과 결의’라는 제목의 성명서다. 한나라당이 지난해 예산안을 강행처리한 데 대한 국민들의 비난여론이 거세지자 21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앞으로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에 동참할 경우 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한 것이다. 21명의 의원들은 황우여·남경필(이상 4선)·이한구·권영세·정병국(이상 3선)·임해규·진영(이상 재선)·구상찬·권영진·김선동·김성식·김성태·김세연·김장수·성윤환·윤석용·정태근·주광덕·현기환·홍정욱·황영철 의원 등이다.

한나라당 국회바로세우기모임 의원들이 2010년 12월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조찬 모임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한나라당 국회바로세우기모임 의원들이 2010년 12월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조찬 모임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 동참땐 불출마”
그로부터 1여년가 지난 11월 22일 한나라당은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 의원들의 강력저지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직권 상정, 표결에 부쳐 재적의원 295명 중 170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151명, 반대 7명, 기권 12명으로 비준안을 통과시켰다. 비준안 통과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은 본회의장 발언대에서 최루탄을 터뜨리고 의장석을 향해 최루가루를 뿌리는 등 본회의장은 한때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본회의장 4층 유리창이 깨지기도 했다.

‘국회바로세우기모임’ 소속 의원들은 한·미 FTA 비준안 강행처리 과정에서 서로 다른 길을 선택했다. 황우여 원내대표를 비롯해 남경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 이한구·권영세·구상찬·김선동·김세연·김장수·주광덕 의원 등 9명은 찬성표를 던졌고, 임해규·김성식·김성태·신성범·성윤환·정태근·현기환 의원 등 7명은 기권했으며, 황영철 의원은 반대표를 행사했다. 정병국·진영·권영진·홍정욱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한나라당에 의한 한·미 FTA 비준안이 강행처리됨에 따라 내년 총선과 관련, 이들의 거취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당 등 야당과 한·미 FTA 저지범국민운동본부는 이들에 대해 “약속을 지키라”며 불출마 압박을 하고 있다. 국회바로세우기모임 의원들 사무실에는 연일 항의전화가 쇄도하고 있으며, 의원들 홈페이지에는 “정치쇼를 한 것에 대해 총선에서 심판하겠다”는 등 비난의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국민에게 약속했으니까 원인 제공을 누가 했느냐에 상관없이 의원들은 국민들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며 “우리 정치인들은 정치를 말로 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말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 비준안 처리과정에서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이 없었으므로 불출마 전제조건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이 11월 13일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의 여야 합의 처리를 요구하면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 김문석 기자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이 11월 13일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의 여야 합의 처리를 요구하면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 김문석 기자

국회바로세우기모임 의원들은 현재(11월 25일)까지 비준안 강행처리에 대해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국회직을 사임했지만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은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있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해 “여야 합의가 어려운 상황에서 국회법이 허용하는 길조차 가지 않으면 여당으로서 국민 앞에 도리를 다했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우리는 국회 폭력을 금하는 조치를 철저히 취했다”고 해명했다.

남경필 의원은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직을 사임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최고위원직은 내놓지 않았다. 남 의원은 “비준안을 합의처리 또는 최소한 폭력이 난무하지 않는 모습으로 처리하고 싶었는데 결국 외통위는 건너뛰는 결과가 나왔다”며 “거기에 대해서 책임을 느낀다”며 사임 이유를 설명했다. 총선 불출마와 관련해서는 ”당내에서 많은 말씀이 나오는데 더 성찰하겠다“고 말했다.

국회바로세우기모임에 대부분 가입돼 있는 한나라당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도 이 문제에 대해 “불출마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당분간 이 문제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자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본21의 간사인 김세연 의원은 “지금 거기에 대해 스스로 평가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합의처리를 주장하면서 단식에 돌입했던 정태근 의원은 “우선 더 많은 반성의 시간을 갖겠다”며 “(총선 불출마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주변에서) 내가 총선에 불출마한다고 얘기하는 것은 지어낸 얘기”라고 일축했다. 정 의원은 열흘간의 단식을 중단했다. 

김성식 의원은 네티즌들의 항의에 대해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국회가 결국 바로서지 못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무력감에 기권했지만 어찌 책임을 면할 수 있겠느냐”며 책임을 인정했으나 불출마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불출마 사안 아니다” 언급 자제
오히려 일부 의원들은 자신을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나섰다. 김성태 의원은 한 라디오에 출연, “물리력을 동원한 것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즉 이번 비준안 처리는 강행처리가 아니라 국회법에 따른 정당한 표결처리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국회바로세우기모임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 한나라당이 단독 표결 과정에서 여야간에 몸싸움 등 폭력행위는 전혀 없었다”며 “김선동 의원의 최루탄 살포는 여야의 협상 흐름과는 전혀 다른 돌발적 행위였다”고 말했다.

한편 황영철 의원은 표결에 참석한 한나라당 의원들 중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황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소신을 지킨다는 것이 참 외롭다”며 “여야를 떠나 당론과 다른 의원의 소신투표가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정치문화가 자리잡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현재 한나라당에서 원내 대변인을 맡고 있는 황 의원은 지역구가 강원 홍천·횡성으로 한·미 FTA로 가장 피해가 많을 것으로 우려되는 지역이다. 황영철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2008년 총선 때 지역토론회에서 황영철 의원은 ‘한·미 FTA 표결시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반대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라며 “황 의원은 정부가 마련한 농업분야의 대책도 미흡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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