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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격 높이기 예산’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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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부처 ‘국외업무여비’ 크게 늘어 내년엔 1484억원 책정

“이명박 정부는 이미지만 관리하려고 한다. 정권 말기까지 국제회의 예산이 증가하고 있다. 국제회의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필요성이 떨어지거나 결과물이 별 볼일 없는 국제회의가 너무 많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에 참여했던 민주당 관계자의 말이다. 한 민주당 당직자는 “2012년 정부예산은 ‘국격 높이기 예산’”이라는 말까지 했다. 국제회의 관련 예산이 증가하는 것은 정권 말기의 이명박 정부가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5월 방송통신장관회의에 참석한 각국 대표단이 서울 삼성동 코엑스 ‘월드 IT 쇼(WIS)’ 행사장에서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정지윤 기자

지난 5월 방송통신장관회의에 참석한 각국 대표단이 서울 삼성동 코엑스 ‘월드 IT 쇼(WIS)’ 행사장에서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정지윤 기자

2012년 정부 예산안에서 정부부처의 ‘국외업무여비’는 1484억300만원이다. 국외업무여비란 공무원 여비규정에 의한 공무원의 국외 출장여비 중 업무수행 관련 여비를 말한다. 조사나 확인, 점검 등 특정업무에 필요한 여비와 함께 외교활동과 국제회의 및 국제행사 참석 등이 국외업무여비에 포함된다. 국가사업을 민간인에게 위촉할 때의 여비와 외빈 초청에 필요한 숙식비 및 항공료 등도 국외업무여비다.

국제행사 개최 경비도 심의 사안
이명박 정부의 국외업무여비는 2008년부터 2009년까지 급격히 증가했다. 2008년 국외업무여비는 971억1700만원이었는데, 2007년에 비해 23.2%나 증가한 것이다. 2009년에는 1216억9300만원으로 2008년에 비해 25.3%나 증가했다. 2010년 이후에는 완만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2012년 국외업무여비 중 25개 정부부처가 계획 중인 50개 주요 국제회의(1억원 이상이 필요한 회의 기준) 예산은 545억9400만원이다. 국외업무여비 중 37% 정도가 국제회의 예산인 셈이다.

그동안 예산안 심의에서 국외업무여비는 별 논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2010년 ‘G20 정상회의’, 2011년 ‘부산 세계개발원조 총회’, 2012년 ‘핵안보 정상회의’ 등 세계적 규모의 국제행사가 개최되면서 국제행사 개최 경비도 예산 심의에서 중요한 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회 예결위 소속 박기춘 민주당 의원 측은 “2012년 핵안보 정상회의가 있어서 국제행사비가 늘어난 것으로 안다”면서 “계수조정소위(예산 심사의 최종단계)에서 문제가 되는 국제회의 예산은 규모를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11월 17일 국회는 여야 의원 12명이 참여하는 계수조정소위원회를 구성했다.

민주당은 문제점이 발견된 국제회의 예산은 계수조정소위를 통해 예산을 조정할 계획이다. 야권이 문제가 있다고 평가하는 국제회의로는 보건복지부의 ‘보건장관회의 부대행사’,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장관회의’, 환경부의 ‘세계 환경언론인 포럼’,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관련 국제회의 등이다.

‘보건장관회의 부대행사’와 ‘방송통신장관회의’는 개최할 필요가 있느냐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민주당 예결위 관계자는 “‘한중일협력체계구축’ 국제회의는 한·중·일이 돌아가면서 여는 보건장관회의 부대행사”라며 “개최국(2012년 개최국은 일본)이 여는 부대행사인데, 별도로 매년 한국에서 전문가 포럼을 추가로 개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2012년 8회를 맞이하는 방송통신장관회의의 사업목적은 정보통신 분야의 미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한국의 ICT(정보통신 기술) 발전상을 소개하는 자리가 됐다. 예전에는 선진국 장관들이 참여했지만, 지금은 개발도상국의 장관들만 참여하고 있어 장관회의 개최 필요성에 대해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실 여비 증액도 논란
환경부의 ‘세계 환경언론인 포럼’과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관련 국제회의는 예산 씀씀이가 너무 크다는 지적을 받았다. 환경부는 포럼 개최를 위한 홍보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명목으로 회의장 임차료 등으로 이틀 동안 1억5000만원의 예산을 잡아 비판을 받았다. 보건복지부가 내년에 개최하는 ‘2012 RI(Rehabilitation International, 세계재활협회) 세계대회’ ‘아태장애포럼 총회’ ‘아시아태평양 장애인 대회’ 등 장애인 관련 국제회의 예산은 총 7억2600만원이다. 장애인 관련 행사들로 행사기간(10월 말), 장소(인천 송도)가 겹치고, 참가대상 역시 장애인단체로 유사하기 때문에 행사를 통합지원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정치]‘국격 높이기 예산’ 너무 많다

이런 지적에 대해 부처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해온 행사이고, 예산이 터무니없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방송통신위원회 재정팀 관계자는 “방송통신장관회의는 적정 규모로 감액되고 있기 때문에, 낭비 요인이 없다”면서 “행사 목적도 한국의 정보통신산업을 알리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선진국의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개발도상국 중심으로 행사가 펼쳐질 수밖에 없는데, 이를 낭비라고 보기 어렵다”고 대답했다.

국외업무여비 문제가 불거지면서 대통령실 여비 증액도 논란이 됐다. 2012년 대통령실 기본경비 중 여비가 2011년 7억9119만원에 비해 2억6000만원 증가한 10억5823만원이다. 국내여비는 1억6747만원, 국외업무여비는 9959만원이 늘어났다. 국내여비가 늘어났다는 것은 대통령실 공무원의 출장이 많아졌다는 뜻이고, 국외여비 중 숙박비가 늘어난 것은 대통령실 공무원이 해외에 체류하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의미다. 대통령실 공무원들의 출장이 늘어나고 해외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것에 대해 의심의 목소리가 나온다. 2012년이 대선이 열리는 해이기 때문이다.

국회 운영위원회 소속 안규백 민주당 의원은 “정권 마지막해인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공무원의 출장이 배로 늘어나고, 해외 체류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해외 출장의 경우 재외국민 투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대통령실 업무 여비를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업무 여비가 늘어난 이유에 대해 “핵안보 정상회의 등 국제행사 사전 협의를 위해 증액된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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