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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환대, 14조원 무기 구매로 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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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말기 대규모 구매 이례적… 성급한 계약 시기·‘게이트’ 가능성 논란

미국은 이명박 대통령 환대 후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13년 만에 미국을 국빈방문한 후 한국이 미국에게 갚아야 할 빚이 무엇인지를 놓고 뒷말이 나오고 있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외교가 속담처럼 미국의 환대 속에 담긴 의미를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원하는 것은 한·미 FTA 처리, 미국산 쇠고기 등 통상압력 확대, 미국 무기 수입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정권 말기에 이뤄지는 13조원 이상의 미국 무기 구매사업 계약은 ‘게이트’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는 말까지 나온다.

10월 13일(현지시간)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을 마친 뒤 상원의장을 겸하는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뒤편 왼쪽), 존 베이너 하원의장과 함께 박수를 치고 있다. 한국 대통령의 미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은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이후 13년 만이며, 역대 5번째다. / 연합뉴스

10월 13일(현지시간)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을 마친 뒤 상원의장을 겸하는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뒤편 왼쪽), 존 베이너 하원의장과 함께 박수를 치고 있다. 한국 대통령의 미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은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이후 13년 만이며, 역대 5번째다. / 연합뉴스

10월 11일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국빈방문을 위해 출국했다. 미국은 이 대통령을 ‘극진하게’ 대접했다. 이 대통령은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상·하원 합동연설을 한 한국 대통령이 됐다. 이 대통령의 방미 둘째 날 미 의회는 한·미 FTA를 신속하게 비준했다. 한국 대통령으론 처음으로 펜타곤(국방부)을 방문해 미 합참의장 전용 상황실에서 보고를 받기까지 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13시간 동안 이 대통령과 디트로이트를 동행방문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대통령이 미국으로부터 환대를 받은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런 환대 뒤에는 한국이 미국에 갚아야 할 빚이 있다는 분석이 많다.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민주당 송민순 의원은 “한·미 동맹관계에서 이 대통령의 국빈방문에는 한국과 미국 사이에 주고받는 것이 있을 것”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빈방문이라는 틀에 매달리기 싫어했다. 국빈방문을 하려면 미국 쪽에 매달려야 하는 부분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방산업체 불경기로 수입 압박’
이 대통령의 방미 기간 중 불거진 미국 무기 구매설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인 내년에 13조원 이상의 미국 무기 구매 계약을 맺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미국의 전체 해외 무기 수출액 461억 달러(50조원·2011 회계연도 기준)의 30%에 근접하는 규모다. 한국이 미국 방산업체의 최고 고객인 셈이다.

광운대 방위사업연구소 박영욱 교수는 “미국도 불경기이기 때문에 실업률이 높아지고 있다. 방산업체가 다른 산업분야보다 나쁘지는 않지만, 방산업체도 불경기에 대한 불안감을 많이 느낀다”면서 “미국이 동맹국에 무기 수입에 대한 압박을 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가 1000만불 이상 대형 무기를 구매하는 것 중 80%가 미국 무기다. 미국은 한국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안규백 민주당 의원실의 ‘2012년 (무기)기종결정 내역’을 보면 장거리공대지유도탄, 저격용소총, 차기전투기 스텔스 등을 포함해 총 13조3719억원 규모의 무기 기종이 내년에 결정된다. 정권 말기에 13조원이 넘는 대규모 무기 구매 사업을 벌인다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정권 말기에 대규모 무기 계약을 하게 되면 차기 정부가 뒷감당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오바마의 환대, 14조원 무기 구매로 갚는다?

내년에 13조원 이상의 무기 구매 계약을 모두 맺어도, 정부가 지출해야 할 내년 무기 구매 예산은 4100여억원에 불과하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한 국방전문가는 “국방예산은 보통 5개년 계획으로 짜인다. 4000억원이라고 하면 많은 편은 아니다. 충분히 지출할 수 있는 금액”이라며 “초기에는 무기 구매 예산이 작다. 하지만 기간이 지날수록 무기 구매 예산은 커지는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이명박 정부는 국방예산 증가분을 계속 줄여왔다. 그것을 정권 말기에 한꺼번에 터는 것이다. 이 정권이 생색만 내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만드는 게 너무 얄밉다”고 지적했다.

국방력 강화를 위한 차세대 무기사업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됐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계속 미뤄왔다. 올해 기종결정이 예상됐던 2조4000여억원 규모의 KF-16 전투기 성능개량도 2012년으로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의 사례로 보면 무기 구매 계약서를 작성하는 데 보통 2~3년이 필요하다. 이렇게 급하게 모든 것을 결정하는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국방부 제출한 최저예산보다 가격 비싸
민주당 관계자는 “대규모 무기 구매 사업으로 꼽히는 것이 F-15K(일명 슬램이글)다. 60대가 총 2번에 나눠 들어왔다. 1차 구매계약서를 작성할 때까지 25개월이 걸렸고, 2차 사업 때는 14개월이 걸렸다”면서 “사후 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계약서를 쓰기 전에 CSP(동시조달수리부속, Concurrent Spare Part), 기술 이전 등 다양한 내용을 협상해야 한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도 최저가라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의 한 전문위원은 “대형 공격헬기 아파치의 경우 방위사업청은 대당 단가를 400억원 이하로 보고 있지만, 최근 대만은 아파치를 900억원 이상을 주고 사왔다”면서 “국방부가 책정한 예산보다 배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고고도무인정찰기나 차세대 전투기 사업도 예산이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비판에 대해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사업규모 전체가 13조원 이상이지만, 모든 것을 내년에 결정하는 게 아니다. 내년에 결정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면서 “이것은 원래 계획이 되어 있던 사업이다. 기종을 결정할 때 여러 업체들이 경쟁을 하게 할 것이다. 미국 무기만 구매하는 게 아니다. 계약서를 쓰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아니다. 우리는 준비를 해왔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 비리 발생 가능성이다. 무기 로비스트들은 납품권을 따내면 총사업비의 1~3%까지 커미션을 챙기는 것으로 알려진다. 13조원 규모의 무기 거래라면 커미션만 해도 수천억원이다. 무기 구매를 두고 로비가 얼마나 치열하게 진행될지 예상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비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안규백 민주당 의원은 “이전 정부부터 지금까지 기종결정은 매해마다 특별한 대형사업을 제외하고는 1조원이 넘어가지 않았다”면서 “이명박 정부도 2008년 이후 지금까지 1조원 이상의 기종결정을 한 적이 없으나, 정권 말에 14조원의 기종결정을 했다. 이는 누가 봐도 과거 대형 무기 도입에서 발생한 비리와 이면계약을 연상하게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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