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진숙 농성 300일 전에 끝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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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새 노조 지도부 구성… 노사 협상 재개 전망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지도부가 새롭게 구성되면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14일 열린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지회장 선거에서 사측과의 대등한 관계를 내세운 ‘민주후보’가 당선됐다. 차해도 신임 지회장(56)은 노사분규가 극심하던 2003년에 금속노조 마산지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진정리해고공동투쟁위원회(정투위) 공동대표인 강성파다. 차 지회장은 2003년에는 영도조선소 크레인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주장하며 농성하던 김주익씨가 사망한 뒤 사측과의 투쟁에 앞장선 바도 있다.

위쪽 _ 지난 11일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금속노조 박상철 위원장이 서울의 한 호텔에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와 관련해 1시간가량 비공개 회담을 했다. 사진의 건물은 애초 회담 장소로 알려진 서울 용산구의 한진중공업 본사다. /연합뉴스

위쪽 _ 지난 11일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금속노조 박상철 위원장이 서울의 한 호텔에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와 관련해 1시간가량 비공개 회담을 했다. 사진의 건물은 애초 회담 장소로 알려진 서울 용산구의 한진중공업 본사다. /연합뉴스

조남호 회장 청문회 후 여론 전환
차 지회장은 정리해고 문제의 조속한 해결과 한진중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장기 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51)과의 교감을 내세워 과반수 득표(54.5%)를 했다. 회사와의 상생을 내건 온건파 후보와 지난 6월 조합원 동의절차 없이 회사 측과 파업 철회, 조합원 희망퇴직을 합의한 채길용 전 지회장은 낙선했다.

차 지회장은 당선 직후 <주간경향>과의 통화에서 “이번 선거 결과는 사측과 대등한 민주적 노사관계가 필요하다는 현장 조합원들의 판단에 의한 것”이라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권고안을 토대로 해고자들이 요구하는 세부사항을 같이 논의해 현장을 정상화하겠다”고 말했다.

투표 전까지 선거 결과는 쉽사리 예측되지 않았다. 사측은 해고자들이 산별노조(금속노조) 조합원으로서의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소 내에서 이뤄진 조합원 총회 등의 참석을 불허했다. 해고자들에겐 선거 유인물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해고되지 않은 조합원들이 ‘민주후보’를 지지할지 여부도 미지수였다. 올해 초 사측에서 실시한 ‘회사 정상화를 위한 기본교육’에 조합원의 80% 이상이 참석했다. 6월 노사 합의로 파업이 철회됐을 때에도 큰 충돌 없이 현장작업이 재개됐다. 한진중 해고자 전기원씨는 선거 전인 12일 통화에서 “우리는 당연히 차 후보를 지지하지만 차 후보의 당선 여부를 확신할 순 없다. 2차투표까지 진행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사측 정리해고의 부당함이 계속해서 밝혀지면서 조합원들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지난 8월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60)은 국회 청문회 자리에서 “지루할 정도로 느리고 어눌하게 답하라” 등의 내용이 적힌 ‘커닝페이퍼’를 들고 왔다가 들통나기도 했다. 10월 7일 국회 환노위 국정감사에서는 한진중공업이 지난 3년간 방위사업청으로부터 1200억원이 넘는 규모의 수주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8월 조 회장의 “지난 3년간 수주실적이 없어 정리해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증언이 위증이 된 셈이다. 한진중공업은 13일 방위사업청으로부터 1890억원 규모의 해군 차기상륙함을 추가로 수주했다.

신임 집행부 새 협상안 꺼낼 수도

지난 14일 한진중공업 노조 지회장 선거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내세운 차해도 후보(가운데)가 과반수 득표로 당선됐다. /연합뉴스

지난 14일 한진중공업 노조 지회장 선거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내세운 차해도 후보(가운데)가 과반수 득표로 당선됐다. /연합뉴스

조 회장을 궁지로 몰아넣은 국회 환노위에서 정리해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터져나왔다. 7일 국회 환노위는 조 회장과 3시간가량 비공개 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환노위 여야 의원들은 조 회장에게 해고자 94명을 1년 이내로 재고용하고, 1인당 2000만원 이내의 생계비를 지급할 것을 권고했다. 조 회장은 김 지도위원이 크레인에서 내려오는 조건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조 회장의 환노위 권고안 수락 이후 노사 협의는 급물살을 타는 것처럼 보였다. 11일 조 회장과 박상철 금속노조 위원장은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나 1시간가량 협상을 했다. 이 자리에서 양측은 정리해고 문제를 이른 시일 내에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조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국회 권고안을 협상 기준으로 삼아 정리해고 문제를 매듭짓자는 뜻을 밝혔다.

금속노조 측은 11일 조 회장과의 회담 이후 부산에 내려가 실무협상을 진행했다. 사측 참가자는 이재용 한진중공업 대표이사와 원광영 상무였다. 협상 진행은 신통치 못했다. 금속노조 측에 따르면, 이 대표는 금속노조 측에 전화를 걸어 “김진숙 지도위원이 먼저 크레인에서 내려와야 합의가 가능하다. 한진중공업 노조 지회 선거 이후 신임 집행부와 대화하겠다”고 말했다. 이로써 조 회장과 금속노조의 전격적인 대화로 극적인 타결 양상을 보였던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의 해결은 잠시 미뤄지게 됐다.

신임 노조 집행부가 들어선 만큼, 노사 양측의 협상도 재개될 전망이다. 하지만 차 지회장 측에서 정투위의 입장대로 환노위 권고안 이상의 협상안을 들고나올 가능성도 있다. 김인수 정투위 부대표는 “1년 이내 복직시키겠다는 환노위 권고안은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일단은 사측과 만나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진행시키겠다”고 말했다. 김병철 정투위 선전홍보 담당도 CBS와의 인터뷰에서 복직 시기와 방법(일괄복직, 순차복직) 등의 문제가 많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한편 차 지회장의 당선 소식을 들은 김진숙 지도위원은 트위터에 “282일 만에 가장 기쁩니다. 조합원들이 쫓겨난 지 4개월 만에 크레인을 찾아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다음달 1일이면 김 지도위원의 크레인 농성이 300일째가 된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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