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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사법개혁’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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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재판 강화·법조 일원화 추진·판사 인사제도 개선 힘 쏟을듯

#1 서초동 대법원 3층에는 직원용 ‘매화식당’과 바로 옆에 ‘난초식당’이 있다. ‘난초식당’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만든 대법원장 전용 식당이다. 전임 최종영 대법원장은 외부 행사를 제외하고는 구내 식당 점심을 배달시켜 집무실에서 혼자 먹었다. 이 전 대법원장이 2005년 취임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 사법부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얘기를 듣겠다며 이 식당을 만들었다. 일부에서 최 전 대법원장의 별명을 ‘최 주사’라고 말하기도 하던 무렵이었다. 법조계에서는 최 전 대법원장과 이 전 대법원장이 서로 극단적인 면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일부에서는 최 전 대법원장은 사법개혁과 무관하다고 알고 있다.

9월 27일 양승태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9월 27일 양승태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2 양승태 대법원장은 지난 9월 6일 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용훈 대법원장도 종전에 내려오던 법원의 그 사법부 독립을 수호하고 법원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고자 하는 그런 방향에서 종전의 대법원장부터 죽 내려오던 그런 방향을 이탈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저는 근본적으로 사법부에 급격한 변화가 있고, 그런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거니와 그것이 사법부의 속성과 맞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실 이용훈 시절 시행한 정책 상당수가 (밖에서 보기에는 그렇게 달라 보이는) 최종영 대법원장이 하던 것”이라고 했다.

사법개혁에 특별히 새로운 과제는 없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대법원 관계자들은 “사법개혁이 1990년대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오던 것이고, 큰 틀을 벗어난 적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김영삼 정부 시절 사법제도발전위원회와 세계화추진위원회, 김대중 정부 사법개혁위원회, 노무현 정부 사법개혁추진위원회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이명박 정부 시절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까지 거의 같은 주제를 다뤄오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9월 27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이용훈 대법원장이 하신 법정변론 중심주의도 내가 (1994년) 사법정책실장 때부터 연구해오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양승태 대법원장의 개혁은 일단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구상하던 것을 실행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대법원장이 추진한 과제는 모두 대법관 회의를 거친 것인데, 이 대법원장 취임 7개월 전에 대법관에 임명돼 5년5개월을 함께 보낸 사람이 양 대법원장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개혁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으며, 대부분 동의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시대적으로 주어지고, 또 본인 스스로도 구상하고 있는 과제는 크게 세 가지 정도다. 구체적으로 1심 재판 강화, 법조 일원화 추진, 판사 인사제도 개선이다. 언뜻 국민과 상관도 없어 보이고 판사들의 인사 문제로만 보인다. 하지만 대법원 관계자는 “이용훈 대법원이 재판의 형식을 조서 재판에서 변론 재판으로 바꾸고 민원서비스를 제대로 갖추는 등 하드웨어를 만들어왔다면, 양승태 대법원은 국민이 실제로 부닥치는 재판의 내용과 변호사 서비스 같은 소프트웨어를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문제들은 서로 모두가 하나로 이어져 있는 것”이라고 했다.

올해 초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만난 양승태 대법원장과 이용훈 전 대법원장(왼쪽).

올해 초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만난 양승태 대법원장과 이용훈 전 대법원장(왼쪽).

이용훈 전 대법원장 추진과제 실행 집중
‘1심 재판 강화’는 국민의 고통과 비용을 줄이겠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 양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재판은 충실하고 완벽한 심리절차를 거쳐 한 번으로 결론내는 것이 원칙이다. 끊임없이 상소를 거듭하며 3단계의 절차를 다 거치는 재판 현실로 인한 인적· 물적인 낭비는 막대하다”고 했다. 이 문제는 대법관 증원 문제와도 직결된다. 현재 대법원장을 제외한 대법관 12명이 한 해 3만2000건을 처리한다. 이렇다 보니 국회에서 대법관 증원의 압박이 심해지지만, 대법원으로서는 “그렇게 되면 국민 모두가 3심을 당연히 여기게 되고 낭비는 더욱 심해진다”는 입장이다.

승진구조 타파, 판사 정년퇴직 유도
‘법조 일원화’는 지금 사법연수원 출신을 판사로 바로 임용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식으로 변호사와 검사를 거친 사람 가운데 판사를 뽑는 방법을 말한다.
이는 국회와 대법원이 합의해 추진하고 있으며 2014년부터 점차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대법원으로서는 여기에서 경력이 풍부하고 인품이 훌륭한 법관을 뽑아야만 하급심이 강화된다고 보고 있다. 결국 좋은 법조 경력자를 뽑으면 1심이 강화되고, 1심이 강화되면 대법원 사건이 줄고, 대법원은 주요한 사건에 전력을 기울여 좋은 판례를 남겨 하급심의 기준을 잡아줄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인사제도 개선도 대법원장이 행사하는 인사권을 5개 고등법원으로 분산시키고 승진구조를 타파해, 가능한 한 정년까지 근무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 부분 역시 경력있는 변호사들이 판사가 되는 법조일원화 시행과 동시에, 늦게 임관한 이들이 정년까지 일하도록 해주어야 하는 기반과 연결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런 구조가 확립되면 미국이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판사 출신 변호사는 거의 사라지게 되고, 전관 논란 때문에 빚어지는 법원의 부담과 국민의 억울함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8월 19일 양승태 지명자가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을 찾았을 때 두 사람은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용훈 전 원장은 “임기 초반에 너무 외부에 부각될 필요가 없다. 이유없이 공격을 당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관계자도 “이용훈 대법원장이 다른 대법원장과 개혁추진 내용이 크게 다른 것도 아닌데, 독특한 스타일 때문에 손해를 봤다”고 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9월 27일 한 석간신문에 ‘대법원이 전면 개혁을 할 것’이란 취지로 기사가 나오자, 공보관실에 이례적으로 수습을 지시했다. 양 대법원장이 조용한 가운데 내실 있는 개혁을 추진할 것이란 관측이 그래서 나온다.

<이범준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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