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고용노동부는 삼성노동부인가?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직업성 암’ 연구용역을 삼성계열 산학협력단에 맡겨

이번 국감을 통해 고용노동부와 노동부 산하기관이 삼성전자를 관리감독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비호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직업성 암 인정범위’에 대한 노동부의 연구용역을 삼성계열인 성균관대 산학협력단에 준 것이다. 이 용역의 책임연구자는 삼성전자 부설연구소 부소장이다. 삼성반도체에서 발생한 산재에 대한 연구용역을 삼성전자 부설연구소 부소장에게 맡긴 모양새가 됐다.

9월 8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등 14개 단체는 근로복지공단 청주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부는 반도체 관리감독 자료를 공개하고 전체 반도체산업 노동자들을 위한 근본적인 안전대책을 마련하라”고 주장했다. / 연합뉴스

9월 8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등 14개 단체는 근로복지공단 청주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부는 반도체 관리감독 자료를 공개하고 전체 반도체산업 노동자들을 위한 근본적인 안전대책을 마련하라”고 주장했다. / 연합뉴스

지난 6월 삼성반도체 백혈병 산재 피해자가 처음으로 산재 인정 판결을 받았는데, 근로복지공단이 삼성반도체 산재 소송 핵심인사들과 만난 후 항소를 했다는 것도 이번 국감을 통해 밝혀졌다. 근로복지공단이 기업의 편에 서서 법원에서 산재 인정을 받은 피해자를 상대로 항소를 제기한 것이다. 기업의 활동을 감시해야 할 노동부가 오히려 기업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는 이유다.

2010년 11월 성균관대 산학협력단은 ‘직업성 암 등 업무상 질병에 대한 인정기준 합리화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노동부에 제출했다. 지난해 4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된 연구용역이다. 책임연구자는 성균관의대 산업의학교실 김수근 교수이고, 5명의 의대 교수가 공동연구자로 참여했다. 책임연구자인 김수근 교수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4월 만든 산업보건 분야 민간연구소인 ‘삼성전자 건강연구소’의 부소장이다. 김 교수는 지난해 7월 삼성전자 건강연구소 부소장에 선임된 것으로 알려졌다.

책임연구자가 삼성 부설연구소 부소장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삼성전자가 백혈병 산재 피해자들과 직업성 암 인정기준을 놓고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면서 “사회적 논란의 핵심 당사자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기준을 마련하는 연구 컨소시엄을 사실상 삼성연구팀에게 맡긴 것은 ‘삼성노동부’를 자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활동가 공유정옥씨도 “노동부가 직업성 암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준을 완화하려는 노력은 좋다”면서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해를 받을 수 있는 행보를 한 것은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이런 논란에 대해 노동부 문기섭 산재예방보상정책관은 “연구용역은 공고를 내고 응찰을 받고 심사를 하는 절차가 있다. 연구용역이 결정된 시점과 김수근 교수가 삼성전자 (건강)연구소로 간 시점은 차이가 있다”면서 “연구용역이 먼저 결정된 후에 김 교수가 연구소로 간 것으로 알고 있다. 연구용역을 취소하면 위약금이 생기는 상황이었다. 연구용역 중간 중간 보고를 받고 내용을 서로 상의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이 용역보고서는 148페이지 분량으로 직업성 암에 대한 인정기준 완화 필요성을 담고 있다. 이 용역보고서가 나온 후 노동부는 상반기에 노사가 직업성 암 인정범위 확대를 논의하고, 하반기에 법 개정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 약속은 공염불에 그쳤다. 지난해 12월 노동부는 각계 전문가 9명이 참여한 ‘직업성 암 TF팀’을 꾸렸다. 하지만 인사 추천 과정부터 노사정 의견이 격렬하게 대립했다. 올해 7월에야 전문가 구성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 노사 간에 이해관계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직업성 암 인정 확대 작업이 그리 쉽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9월 20일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이 과천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9월 20일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이 과천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 국감에서 노동부 산하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의 행보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6월 23일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산재 피해자가 처음으로 산재 인정을 받았다. 7월 초 근로복지공단이 항소를 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 측과 대책회의를 가졌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를 지적한 정동영 최고위원은 “근로복지공단이 힘없는 노동자를 상대로 사실상 삼성법무팀의 역할을 수행했다”면서 “그럴바에야 삼성복지공단으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비판했다. 근로복지공단 신영철 이사장은 “사실관계가 다르다”면서 “당시 경기지역본부 부장과 소송 담당자가 삼성을 방문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자리에서 삼성 측에 ‘항소심에서는 보조참가자에서 빠져달라’고 요청했다. 이것이 어떻게 대책회의인가”라고 해명했다.

노동부는 직업성 암 발생 원인 분석 노력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에서 발생한 백혈병 산재를 규명하기 위한 노력은 거의 전무하다. 공유정옥씨는 “2009년 노동부가 삼성전자를 포함한 반도체 회사 3곳에 자체적으로 위험성 평가 자문을 받도록 요구했다. 쉽게 말하면 3개 회사에 ‘너희 회사에 문제가 있으니 너희들이 직접 알아봐라’라는 것밖에 안된다. 이후 2년 동안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면서 “올해 8월 노동부가 삼성 반도체 보건대책을 내놓은 것이 있다. 독성물질을 교체하라는 것이다. 노동부는 모니터링을 계속 하겠다고 발표했다. 노동부는 삼성전자의 안전팀이 아니다. 관리감독을 해야지, 왜 모니터링만 하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근로복지공단 행보도 논란
노동부는 백혈병 발생 관련 자료 공개에도 인색하다. 2007년 근로복지공단이 의뢰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역학조사와, 2008년 국내 반도체 산업 종사자 20만명을 대상으로 림프조혈계 암 발병 위험에 대해 ‘건강실태 역학조사’를 벌였다. 두 조사는 백혈병과 작업 환경이 무관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는 결과 공개를 요구했다. 노동부는 ‘기업의 영업비밀’에 해당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시민사회단체의 항의에 노동부는 반도체 회사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 리스트를 제공하기로 했지만, 나중에 이 약속도 어겼던 것으로 밝혀졌다. 공유정옥씨는 “그때 노동부는 ‘당초 주려고 했는데, 국제분쟁의 소지가 있어 못준다’고 했다”고 토로했다.

반올림, 참여연대, 환경정의 등 시민사회단체는 9월 8일 노동부에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와 보건관리대책 관련 공개질의서’를 고용노동부에 보냈다. 9월 15일까지 답변을 요구했지만, 9월 23일 현재까지 별다른 대답이 없는 상태다.

고용노동부와 삼성전자의 밀월 논란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일부 시민사회단체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데, 노동부와 절대 그런 관계가 아니다”면서 “연구용역도 정당한 절차를 거쳐 선정이 된 것이고, 이번 근로복지공단 항소에 소송보조로 참가할 뿐이다. 논란거리가 안된다”고 해명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