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회사가 직원 등에 칼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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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보도’ 무죄 판결 후 중징계 받은 PD수첩 조능희 PD 인터뷰

엄기영 전 MBC 사장이 앵커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표현을 빌리자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겼다.

방송사 간판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그러자 정부 부처 장관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프로그램을 제작한 PD들을 상대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PD들은 3년 3개월 동안 이어진 법정소송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언론의 본령인 공익을 위한 비판기능에 충실했다고 판결한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협상의 진실을 알리는 보도로 기소된 MBC ‘PD수첩’ 제작진(가운데 조능희 PD·오른쪽 송일준 PD)이 지난 9월 2일 대법원에서 무죄 원심 확정 판결을 받은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산 쇠고기 협상의 진실을 알리는 보도로 기소된 MBC ‘PD수첩’ 제작진(가운데 조능희 PD·오른쪽 송일준 PD)이 지난 9월 2일 대법원에서 무죄 원심 확정 판결을 받은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일반적인 언론사라면 그동안 고생했다며 PD들의 등이라도 두드려줄 일이다. 그런데 방송사는 법정에서 살아 돌아온 PD들에게 오히려 중징계를 내렸다.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게 이유였다.

2008년 4월 29일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광우병 편)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 과정의 문제점을 고발해 강력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MBC 「PD수첩」 PD들 이야기다. 방송 당시 책임PD를 맡고 있던 조능희 PD는 9월 21일 <주간경향>과 만나 “적진에 끌려가 고난을 겪고 겨우 강을 건너 살아 돌아온 사람들의 등에 칼을 꽂은 행위”라고 비판했다.

“유죄 판결에도 징계한 사례 없어”
조능희, 김보슬, 송일준, 이춘근, 정호식 등 MBC 「PD수첩」 광우병 편 제작 PD들은 지난 9월 2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MBC는 19일 인사위원회를 열고 이튿날인 20일 개별적으로 징계를 통보했다. 조능희·김보슬 PD는 정직 3개월, 송일준·이춘근 PD는 감봉 6개월, 정호식 PD(전 시사교양국장)는 감봉 3개월을 받았다.

“프로그램을 못하는 건 PD들에게는 큰 충격이에요. 기자에게서 펜을 빼앗은 것에 비견할 수 있죠.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PD의 존재 이유인데 그걸 정지시킨 거예요.”

조 PD는 광우병 편 보도로 「PD수첩」에서 하차한 후 올해 3월부터 <불만제로>를 만들어 왔다. 그는 <불만제로>가 「PD수첩」만큼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 이후 한 달도 되지 않아 또다시 제작 중인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됐다.

“지금 총 5주 동안 촬영하는 에피소드에서 2주 분량만 소화했어요. 이걸 갑자기 중단하게 됐으니까 어제 팀원들과 회의를 했죠. 지금 작가도 한 명이 빠져나가서 여유가 없는 상황인데 이런 일이 생겨서 어제 하루 종일 우울했어요. 그래도 다른 PD들한테는 3개월 동안 휴가받은 거라고 큰소리를 치기도 했죠(웃음).”

MBC는 2009년 김재철 사장이 부임한 이후 권력 비판 기능이 크게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PD수첩」에 대한 사내 탄압도 지속됐다. 지난 3월에는 이우환·한학수 등 「PD수첩」 PD들을 비제작부서로 발령을 내는 일도 있었다. 경영진이 「PD수첩」을 MBC 내 ‘공공의 적’으로 몰아가는 상황이었으니 일정 수위의 징계를 예상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MBC에서 이런 일로 징계받은 일이 없어요. 뉴스나 시사프로그램 보도 때문에 정정보도나 반론보도를 한 경우야 많이 있었죠. 심지어 보도 내용 때문에 형사소송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징계는 안 했어요. 왜냐하면 권력을 비판할 때는 정보 부족으로 인한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대전제가 있기 때문이에요.”

MBC노조 출신 선배들에 대한 서운함
조 PD는 이번 징계가 잘못된 선례로 남을 것을 우려했다. 이번 징계는 언론이 제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한 사건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조능희 PD는 21일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MBC 사측의 징계에 대해 “적진에서 살아돌아온 사람의 등에 칼을 꽂은 행위”라고 말했다. / 정원식 기자

조능희 PD는 21일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MBC 사측의 징계에 대해 “적진에서 살아돌아온 사람의 등에 칼을 꽂은 행위”라고 말했다. / 정원식 기자

“MBC가 이런 일로 PD들을 징계한다면, MBC에서는 인사위원회가 날마다 열려야 합니다. 숫자 하나, 단어 하나 잘못된 것도 다 문제 삼아야 하니까요. PD나 기자들에게 ‘정부 정책을 비판할 때는 100% 자신이 없으면 최소한 정직 먹을 각오를 하라’고 말한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물론 프로그램은 완벽해야 합니다. 하지만 상대는 권력입니다. 권력은 정보를 안 줘요. 내부 고발자가 없는 한 권력을 비판하는 탐사보도는 우리가 확보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정보 조각들을 겨우겨우 맞춰가면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시간도 촉박하죠. 광우병편을 방송하던 날, 방송 1분 전까지도 테이프가 안 넘어왔어요. 방송은 그날 꼭 해야 했어요.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가 눈앞에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그의 말에는 징계를 결정한 MBC ‘선배들’에 대한 서운함이 묻어 있었다.
“인사위에 나온 분들은 제가 24년간 MBC에 다니면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에요. 제가 1987년에 입사했는데 수습 기간이 끝난 직후에 MBC에 노조가 생겼어요. 제게 징계를 내린 사람들도 그때 노조원이었죠. 김재철 사장도 노조원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배신감을 느꼈어요. 19일 인사위에 출석해서 ‘선배’라고 불렀습니다. ‘선배, 당신들이 만든 노조에 가입해서 공정방송과 사내 민주화를 위해 지금까지 싸웠다. 이러지 마시라’고 했죠.”

결국 무죄 확정으로 끝난 법정공방 과정에서 그는 추호도 유죄가 나올 것이라고 의심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적지않은 상처를 입었다. 상처를 낸 건 검찰과 언론이다.

“검사들에 대해서는 말할 가치도 없어요. 검사가 아닙니다. 일신의 안녕을 위해 권력을 이용하는 자들일 뿐이에요. ‘조중동’ 보수언론의 해악은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당해보지 않으면 그 해악을 몰라요. 「PD수첩」 보도에 대한 공격은 물론이고, 2009년 1월 20일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린 판사의 얼굴을 공개하고 판사 개인을 일제히 공격한 게 그들이에요. 조폭적인 행태입니다.”

검찰 수사를 받는 동안 그는 휴대전화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변호사들과 통화할 때는 반드시 다른 사람의 휴대폰을 사용하거나 공중전화로 했다.

“수사를 시작했을 때 어느 검사가 제게 휴대전화를 쓰지 말라고 조언을 했어요. ‘이제부터 같이 듣는다고 생각하라’고 하더군요. 충격이었죠. 명색이 PD인데 대포폰을 쓸 수도 없잖아요. 5분이면 될 이야기도 변호사와 직접 만나서 얘기했어요.”

조능희 PD는 입사 24년 만에 석 달 동안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한가한’ 시간을 갖게 됐다. 그러나 그는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정리를 해야죠. 기록으로 남길 겁니다. 권력기관의 치부는 이미 드러났지만 MBC 내부에서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했는지는 따로 기록해야 합니다. 검찰을 상대하는 것 못지않게 내부에서 싸우는 과정이 힘들었어요. 지금은 그때 있었던 사람들이 현직을 떠났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조금은 자유로워요.”

그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당부했다. 검찰에 관한 이야기다. 2009년 4월 29일 검찰에서 48시간 동안 조사를 받고 나왔을 때, 그리고 지난 2일 법정에서 나왔을 때 기자들에게 당부한 것과 같은 내용이다. “「PD수첩」 제작진을 수사하고 기소한 전현준·박길배·김경수·송경호 검사와 수사팀을 지휘한 정병두 검사, 천성관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의 이름을 기억해주세요. 반드시 역사에 기록해야 합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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