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유럽 재정위기, 문제는 정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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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해결 둘러싼 각국의 손익계산서… 해체 부작용 알기에 대타협 가능성 높아

유럽은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그리스가 1년여 만에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몰리면서 세계의 눈이 다시 유럽으로 쏠리고 있다. 위기의 시작은 2009년 11월이었다. 그리스가 실제 재정적자가 발표치의 2배라고 실토하면서 가려져 있던 국가부채 문제가 터져나왔다. 2년이 흘렀다. 유럽 채무위기는 암처럼 급속히 확산됐다. 유럽연합(EU)과 유럽중앙은행(ECB),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 노력이 허사가 됐다. 지금은 스페인, 이탈리아까지 거론된다. PIIGS국가에 돈을 빌려준 프랑스 주요 은행의 신용등급이 강등되면서 프랑스도 내몰린 상태다.

9월 13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정부의 재정개혁안에 반대하는 택시 운전사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신화통신

9월 13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정부의 재정개혁안에 반대하는 택시 운전사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신화통신

유럽 채무는 정말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일까.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아니오”라고 답한다. 유럽 재정위기 불안의 근원은 해당국들의 과도한 국가채무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에 비하면 문제가 어렵지는 않다. 파생상품 손실이 어디까지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던 2년 전과 달리 각국의 부채규모는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공개돼 있다. 부족한 유동성만 제때 공급되면 해결될 수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이선엽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각국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유럽 재정위기를 조기 해결할 기회를 놓쳤다”며 “유럽은 통합됐지만 믿고 따를 정치적 리더가 없다는 것이 유럽 재정위기의 근본 원인”이라고 말했다.

국가 간 경제 격차 통합 때부터 논란
지난 7월 유로존 정상회담에서 재원을 확충하기로 의견을 모았던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각국이 일정액을 분담해야 해 17개 회원국이 각기 자국 내에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 재정위기에 빠진 스페인은 9월 의회에서 즉각 승인을 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의회는 지난 14일 표결에 부쳐 부결시켰다. 독일은 9월 29일 하원 표결에 부친다. 그러나 통과가 만만찮은 실정이다. 회원국 내 가장 많은 분담금을 내야 하는 특성상 반대가 심하다.

유로본드도 상황은 비슷하다. 17개국이 공동 보증을 서 발행하는 유로화 표시 국채로 회원국에 저금리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이 상대적으로 탄탄한 독일과 프랑스 등은 되레 조달금리가 높아져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다.

유럽은 통합 때부터 논란이 많았다. 국가간 격차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1999년 통합 당시 경제요건을 채 갖추지 못했던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을 참여시켰다. 2001년에는 그리스를 받아들였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1999년 유로화 출범 당시 6개국에서 시작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위기를 겪지 않았을 것”이라며 “미 달러에 대항하는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유럽 정치인들의 욕심이 화를 불렀다”고 진단했다.

분담금 부담 독일, 통화절상 억울한 그리스
이번 채무위기를 보는 시각도 나라마다 다르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독일인들은 낭비벽이 심한 남유럽 국가들이 흥청망청 소비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앞서 동독 주민을 위해 엄청난 통일비용을 치렀던 만큼 재정취약국에 대한 지원에 함부로 나섰다가는 무한지원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우려도 깔려 있다.

그리스의 생각은 다르다. 그리스 재정위기의 큰 부분은 유로존에 있다고 보고 있다. 유로화로 인해 자국의 통화가 상대적으로 평가절상되면서 좀처럼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경제위기가 오면 통상적으로 자국 환율을 떨어뜨려 수출을 늘린다. 그리스는 지금 이것이 불가능하다. 독일이야말로 유로화로 인해 자국 통화가 상대적인 평가절하를 받으면서 수출에 탄력을 받았다는 것이 그리스인들의 생각이다. 이 연구위원은 “그리스는 그런 만큼 독일 등 주요국이 일정 부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최악의 경우 유로존을 탈퇴하겠다는 협박을 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제]유럽 재정위기, 문제는 정치야!

이 같은 국민정서는 정치인들이 결단을 내리는 데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독일의 경우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기민당과 자민당은 재정취약국 지원에 부정적이다. 반면 헬무트 콜 전 총리와 야당인 사민당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미온적인 대응이 유로화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지방선거마다 판판이 깨지고 있는 메르켈 총리로서는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2013년 총선까지 유로존이라는 판을 깨지 않으면서도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도 비슷하다. 대선은 내년이다. 재선 도전에 나서는 사르코지로서는 유럽 채무문제 해결이 중요하다. 최근 주요 은행의 신용등급 강등에다 국가신용등급 조정 가능성마저 제기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독일보다 조금 더 급한 이유다.

재정취약국 긴축안 발표에 국민 분노 폭발
그리스 정부는 그리스 정부대로 코너에 몰리고 있다. 구제금융의 대가로 긴축안을 받아들이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그리스는 올 연말 재정적자를 171억 유로(국내총생산 대비 7.5%)로 낮춘다는 목표를 세우며 긴축과 증세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취업자의 4분의 1가량이 공공부문에서 근무하는 그리스의 특성상 재정긴축은 근로자 대부분의 임금 삭감과 실업 증가로 이어진다는 점이 문제다. 2007년 8.0%이던 그리스의 실업률은 올 2·4분기에는 15.0%까지 2배나 뛴 상태다. “일자리를 달라”는 시위가 일어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해 보인다.

다른 재정취약국들도 다르지 않다. 포르투갈의 실업률은 2007년 8.5%에서 올 2·4분기 12.5%로, 아일랜드는 4.9%에서 14.3%로 뛰었다. 스페인도 같은 기간 8.8%에서 21.0%까지 급등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도 고민이다. 스페인의 복지분야 지출은 정부 지출의 50.5%, 이탈리아는 55.3%다. 긴축을 하려면 복지예산 삭감이 불가피하지만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자칫 잘못 끄집어냈다가는 행정부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유럽의 복잡한 정치상황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유럽 정치인들이 대타협을 이뤄낼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독일 입장에서도 유로존에서 마르크화로 되돌아가면 경제적으로 도움될 것이 없다. 유럽 내에서 리더의 역할을 상실하는 데다 유로화로 인해 누리던 환율 평가절하 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메르켈 독일 총리가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등과의 컨퍼런스콜에서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을 것을 확신한다”고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질서가 있든 없든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상황이 비슷한 PIIGS 국가의 추가 탈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유로존 붕괴의 전조로 해석된다.

이선엽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대책이 늦게 나올수록 비용이 많이 들고, 비용이 많이 든 만큼 구제금융을 받는 나라에 고통을 더 요구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며 “하지만 경제 혼란이 극에 빠지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해본 유럽인들인 만큼 정치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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