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백만민란 1주년,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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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과 통합’ 결성으로 야5당 연합 ‘압박’

“하나의 불씨가 광야를 사르리라(一點星火 可以遼原).”
군사독재정권 시절, 재야에서 자주 언급하던 문구다. 아니, 믿음이었다. 그리고 2010년. 시작은 한 점 불씨였다. 온라인 웹자보에서 손을 치켜든 문성근씨는 “저, 나가겠습니다”라고 했다. 어디로? 그가 나간 곳은 거리였다. ‘백만송이 국민의명령’이라는 이름이다.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민란(民亂)’이라고 불렀다. 지역에 만들어진 모임은 ‘들불’이다. ‘들불’의 주체는 ‘접주’다. 접주는 모임의 취지에 동의해 지역에서 ‘동을 뜨는’ 사람들이다. 무엇을 위한 ‘민란’인가. 2012년 정권 창출이다. ‘민란’의 대상은 민주당을 비롯한 야5당이다. 야당이 하나로 모여야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목표는 100만이다. 100만의 국민이 야당들을 ‘압박’한다는 계획이다.

8월 17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가칭 ‘혁신과 통합’ 제안자 모임에서 핵심 제안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이해찬 전 총리, 김기식 전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국민의명령 문성근씨,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 연합뉴스

8월 17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가칭 ‘혁신과 통합’ 제안자 모임에서 핵심 제안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이해찬 전 총리, 김기식 전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국민의명령 문성근씨,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 연합뉴스

그리고 다시 올해 8월 27일. 배우 문성근이 거리에 나선 지 딱 1년이 되었다. “첫번째로 제안 메일을 보냈는데 거의 답이 없었다. 한 100통 메일을 보내면 한 분 정도 답이 왔었다. (지난해) 7월 중순에 3차 시안을 만들어 보냈더니 이창동 감독이 “이제 조금 말이 된다”고 회신을 주더라.” 문씨의 회고다. 8월 26일 현재까지 문씨의 제안에 화답한 사람은 16만9981명. 어림잡아 17만명이다. 무시 못 할 숫자다. 126회. 지난 8월 21일까지 문씨가 거리에서 진행한 ‘민란’의 횟수다. 거리에서 문씨는 ‘백만민란’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민주진영이 5개 정당으로 분열되어 있고 힘을 받을 수 없어서 도무지 2012년에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이건 제일 맏형인 민주당이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구도로 자기 혁신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되겠나. 우리 국민 100만이 모여 국민의 이름으로, 여론의 힘으로 야당 5개 정당에 명령을 내리는 거다. 이 100만의 바다에 빠져서, 섞여서 새로운 야권 단일정당을 만들어내자. 그래야 희망이 생긴다.”

8월 25일 저녁, ‘민란’의 1주년을 기념하는 ‘토크콘서트’가 서울 종로 YMCA 강당에서 열렸다. 행사장에는 “민란은 성공했다 통합은 됐어!”, “가자 민주진보정부 수립으로”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런데 궁금하다. 민란의 성공? 통합은 됐나? 정치공학적으로 봤을 때 촉박한 일정에 비해 야권의 통합 혹은 연대를 위한 논의는 더디기만 하다. 1차적으로 통합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진보정당들은 통합의 원칙만 확인했을 뿐, 논의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형편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협상시한으로 잡고 있는 8월 말이 다가오고 있지만 새로운 변수들만 더하는 형국이다. 게다가 8월 26일에는 돌발변수도 나왔다. 무상급식 투표에서 패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통합 ‘악재’일까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현재의 논의 수준에서는 이것 또한 통합논의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당들로서는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시장 보궐선거에서 통합보다는 각 정당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한 노력을 우선할 것이며, 야권 후보 단일화 논의가 진행되더라도 막판에야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만큼 통합논의는 지연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래도 진전이 없는 것은 아니다. 8월 17일 ‘혁신과 통합’이라는 모임이 제안됐다. 제안자는 문씨와 이해찬 시민주권 대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남윤인순 내가 꿈꾸는 나라 공동대표, 최병모 전 민변 회장 등이다. 현재의 정당질서를 재편하여 2012년 민주진보정부로의 정권교체를 목표로 하는 시민행동기구다.

토크콘서트에서도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관련한 질문이 나왔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묻고 문성근씨가 답변하는 형식이었다. “서울시장 선거는 ‘누가 되면 좋겠다’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옳으냐’의 문제다. 서울시 공동정부부터 시작해야 한다.”

남은 통합 시한은 2~4개월
통합논의의 시한은 언제로 보고 있나.
“늦어도 10월 말에는 윤곽이 잡혀야 한다. 너무 빠른 게 아니냐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선거법을 보면 4월 총선의 120일 전에 예비후보를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12월 중순에는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린다. 시간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진보정당에는 ‘끝장토론’을 제안할 것이다. DJ의 유언이 민주당이 70%를 내준다는 각오로 통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기득권을 포기하면 다른 정당들도 진정성을 인정할 것이다.”


두 달 열심히 하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된다고 생각한다. 처음 야권 단일정당을 만들자고 했을 때 대꾸도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머지 정당 쪽에서 ‘민주당을 못 믿겠다.’ ‘민주당의 당구조가 비민주적이다’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부분은 ‘혁신과 통합’이 보장할 것이다. 여기에 시민사회까지 힘을 합쳐서 민주연합정당을 만들자. 다당제를 공약으로 내고 정권교체에 성공하면 그 후에 분립해도 된다. 진보정당의 입장에서도 연합정당의 정파로 활동하는 것이 진보세력이 확장할 수 있는 방안이다.”

문씨는 자신의 생각을 “방 다섯 개가 있는 큰 집”, “다섯 가구가 사는 다세대 주택”이라고 비유했다. ‘그게 될까’라는 회의론에 대해 그의 준비된 답변은 이것이다. “이것 이외에 이길 방법이 없다. 이것 말고 더 좋은 방안이 있으면 말해 달라.” 

10월 말 목표한 대로 되지 않는다면 최후의 카드는? “회원들이 행동할 것이다. 17만 회원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정치권을 압박할 것이다. 국민의명령은 지금처럼 거리홍보를 계속할 것이다. 여기에 ‘혁신과 통합’ 중심의 정치콘서트와 타운홀 미팅이 추가된다. 지금보다 조금 더 다양한 접근일 것이다.”

그런데, 2012년의 정치일정에 그렇게 ‘올인’할 필요가 있을까. 실제로 이런 의견도 있다. 한 시민단체 중견간부의 견해다. “이명박 정부가 워낙 잘못한 게 많기 때문에 다음 정부는 그것을 수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진보가 이명박 정부가 어질러놓은 것에 대해 설거지를 굳이 맡을 필요가 있을까. 물론 총선은 진보에게 중요하다. 하지만 대선은 차라리 박근혜가 되는 게 역설적으로 정치적 부담 없이 MB정부 과오를 보다 철저하게 청산할 수도 있다.”

국민의명령 실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민희 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은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못박았다.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고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게 한다는 게 우리 마음대로 되는 문제인가. 총선이든 대선이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보수가 망가뜨린 나라를 일으켜 세우면서 진보가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경제를 책임지는 사람이 나라를 책임지게 된다. 진보는 다시 일으켜 세울 능력이 있다.”

8월 26일 서울 종로 YMCA에서 열린 ‘토크 콘서트’에서 배우 문성근씨(오른쪽)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와 함께 백만송이 국민의명령의 지난 1주년을 회고하는 대담을 나누고 있다. / 정용인 기자

8월 26일 서울 종로 YMCA에서 열린 ‘토크 콘서트’에서 배우 문성근씨(오른쪽)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와 함께 백만송이 국민의명령의 지난 1주년을 회고하는 대담을 나누고 있다. / 정용인 기자

“정파등록제가 진보에 더 유리하다”
또 궁금한 게 있다. 1997년 ‘국민승리21’로부터 한국정치의 구도는 자유주의-진보-보수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왔다. 진보정당의 입장에서 그동안의 진보정당운동의 성과를 부인하고 연합정당으로 들어가는 것이 과연 받아들여질 수 있는 선택지일까. 국민의명령 집행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김두수 사회디자인연구소 상임이사는 “역사가 직선으로만 발전한다고 보면 퇴보이지만, 때로는 돌아가는 것이 보다 멀리 내다봤을 때 발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진보정당이 독자적으로 후보를 내는 것보다 야권 단일정당 또는 야권 연합정당의 진보정파에 등록된 단일후보로 나오는 것이 진보세력이 빠르게 성장하는 보다 쉬운 길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남은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지적에 대해 김 이사는 “정치공학적인 시간표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이 정치”라며 “실패에 대한 퇴로를 염두에 두고 길을 나선다면 한 발짝도 더 나갈 수 없다”고 덧붙였다. 25일 토크쇼에 나온 영화감독 이창동(전 문화부 장관)은 “국민의명령 발기인으로 참여했지만 아직까지 이게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면서도 “1987년 이후 고착화된 분열현상에 대해 새로운 정당구도 지형을 만든 것만 하더라도 이미 충분히 성공했다고 개인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1%의 가능성도 가능성이니 배제할 수 없지만 현재 상황만 놓고 볼 때 당위를 떠나 (야권 연합정당의) 실현 가능성은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문성근씨 개인의 노력은 차치하더라도 1997년 이래 분화과정을 걸어왔던 민주세력과 진보세력이 1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통합논의가 나온 것 자체는 유의미하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민주세력이 성장할 때 진보세력도 성장했고, 위축될 때도 같이 되는 게 일시적인 우연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며 “통합논의에 나서는 정당들도 이런 현실을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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