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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치하는 맛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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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민주당 의원, 노동문제에 적극 나서는 이유

“전기 한 번 주기 어렵네.(웃음)”
정동영 민주당 의원은 인터뷰보다 크레인 위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과 전화 통화가 먼저였다. 6월 말부터 한진중공업에 요구했던 전기가 2개월 만에 크레인에 공급됐다는 소식이 나왔기 때문이다. 정 의원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김 지도위원과 직접 통화를 하면서 안부를 물었다. 두 사람은 마치 친구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기 공급 소식을 트위터에 올린 후에야 기자와 마주 앉았다.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에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정치]“요즘 정치하는 맛 느낀다”

요즘 그의 행보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여느 진보정당 의원보다 더 열정적으로 노동 문제 현장들을 뛰어다니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한진중공업 사태다. 얼마 전 열렸던 한진중공업 청문회는 정 의원의 독무대였다.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하락세를 거듭했던 정치인 정동영, 요즘 노동문제 해결사로 급부상하면서 지지도를 회복하고 있다. 정치 행보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실용적 개혁을 주장했지만, 언제부턴가 ‘담대한 진보’와 ‘보편적 복지’를 외치면서 진보의 전도사가 됐다. 그의 행보가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진정성이 있는지 궁금했다.

무상급식 관련 주민투표 파장이 거세다. 주민투표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시대의 요구가 어디에 있는지를 재확인하는 기회였다.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은 투표를 통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지난해 10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보편적 복지’가 이념으로 채택됐다. 국민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때부터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는 논쟁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번 주민투표는 보편적 복지가 시대정신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였다. 보편적 복지가 승리한 것이다.”


민주당에서 이슈가 되는 게 두 가지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파괴력이 얼마나 지속되느냐와 정동영 의원의 행보가 진심이냐다. 먼저 문재인 이사장의 파괴력은 어떻게 평가하나.
“문 이사장이 민주당과 민주진보진영에 굉장한 힘을 보태고 있는 것이다. 황지우 시인이 나에게 ‘정치라는 나무는 눈길을 먹고 산다’고 하더라. 우리 쪽에 사람들의 눈길이 없으면 얼마나 황망한가. 문 이사장이 국민의 시선을 받는 것은 우리에게도 정말 좋은 일이다.”


정 의원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변신이냐, 변화냐를 두고 말이 많은데.
“내 이름이 회자되는 것이 고맙다. 철이 든 후에 (진보적인) 생각을 바꾼 적이 한 번도 없다. (다만 상황을) 몰랐던 것이다. 2003년 한진중공업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김주익 지회장과 곽재규 조합원이 자살할 당시 나는 그들을 몰랐다. 한진중공업 청문회장에서 (장례식장 동영상을 틀면서) 내 마음 속에서 장례식을 치렀다. 2003년이면 당시 여당 의원으로 활동할 때다. 정치개혁에 골몰했던 시기다. 열린우리당 만드는 일에 집중했다. 민심 밑바닥에서는 그것이 급한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나는 정치노름을 하고 있었다. 노동자가 죽어가고 있었는데, (그것을 몰랐던 것에 대해) 속죄를 하는 것이다. 변신이나 변화가 아니다. 나는 ‘진화’하고 있다.”

과거 행보와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실용적 개혁을 외쳤는데, 지금은 ‘담대한 진보’를 주장한다. 진보 노선을 강화한 계기가 있었나.
“2009년 6월 용산참사현장인 남일당에 있었다. 문정현 신부가 ‘정동영 의원이 왔다. 늦게 왔다. 1년 반 전 정동영 의원이 잘했더라면 이분들은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문 신부의 말이 너무 아팠다. 내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그때처럼 아팠던 적이 없다. 2007년 대선 패배가 개인적인 패배를 넘어선 것이라고 느꼈다. 나 때문에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 죽었고, 남북 관계가 파탄이 났다. 민주주의도 파괴됐다. 내 어리석음에 대한 성찰과 반성의 시작이 용산참사였다.”

한진중공업 청문회에서 했던 ‘살인하지 말라. 해고는 살인이다’는 말이 화제가 됐다.
“신자유주의에 대해 비판한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나도 비판을 받아야 한다. 시대적인 요구였지만 국민의정부, 참여정부가 비정규직 문제를 만든 정권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사과한 것이다. 나는 당이 보편적 복지와 재벌개혁 양 날개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행보를 오래 전에 먼저 보여줬어야 했다. 내 반성과 성찰에 기초한 비전이 내가 가야 할 길이다. 요즘 정치하는 맛을 느끼고, 보람도 있다.”


한진중공업 문제에 ‘정치 생명을 걸겠다’고 말했다. 어떤 의미인가.
“대한민국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 부자감세 등의 정책을 펴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노선을 밟고 있다. 이젠 국가 노선을 바꿔야 할 때다. 한진중공업 문제에 모든 것이 응축되어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 문제가 모든 것을 보여준다. 한진중공업은 구조조정을 통해 2500명을 자르고, 비정규직으로 채웠다. 대한민국의 핵심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은 행복추구권을 누리지 못한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줘야 한다.”

[정치]“요즘 정치하는 맛 느낀다”


통일부 장관 시절 개성공단을 만들고 6자회담 재개의 물꼬를 텄다.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해 대선주자로 올라섰는데, 요즘은 남북 문제 대신 노동 문제에 집중하는 것 같다. 이젠 남북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인가.

“한국전쟁이 끝나는 날 태어났다. 내 스스로 암시를 거는 것이지만, 남북 문제에 대해서 여전히 관심이 많다. 내년 대선에서 민주진보정부가 탄생하면 가장 먼저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폐기한다는 선언을 해야 한다. 2000년 6·15 선언과 2007년 10·4 선언의 중간에는 2005년 9·19 공동성명이 있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미국이 북한에 대사관을 설치하는 것이다.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바꾸는 것이다. 이 일을 내가 한 것이다. 남북 관계 개선은 내 소명이다.”


민주당 강령에 ‘재벌 개혁’ 문구를 넣자고 주장했다. 기업을 적대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재벌을 적대시하지 않는다. 조남호 회장도 사랑받는 기업가로 태어나기를 바란다. 청문회에서도 내가 선박 수주에 도움이 되겠다고 말했다. 재벌과 대기업의 애국은 두 가지다. 고용을 늘리고 세금을 내는 것이다. 나는 존경받는 기업이 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반기업 정치인이 아니다.”


당 이야기를 해보자. 민주당이 야권대통합을 주장하고 있지만,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정언명령(定言命令)이다. 국민이 하라는 것 아니냐. 대통합 방법과 기술은 중요하지 않다. 내용이 중요하다.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차이가 무엇이냐. FTA 반대는 함께 기자회견을 했다. 노동과 복지 문제에도 차이가 없다. 대통합을 해야만 한다.”


올해 말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린다. 누가 당 대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민주당 전당대회가 아닌, 통합 전당대회가 되어야 한다. 민주당만의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것을 자제하도록 요청할 계획이다. 통합된 후 전당대회를 치러야 한다.”


민주당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다. 핵심 사안 중 하나가 호남 중진 ‘물갈이’다.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를 하면 된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호남에 대한 불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를 도입하면 옥석이 가려질 것이다.”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는 어떻게 하나. 전북 전주 덕진에 계속 출마할 계획인가.
“2009년 4·29 재·보궐 선거를 통해 내 지역구인 전북 전주로 돌아갔다. 그때 내가 주민들에게 했던 약속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를 바꾸지 않을 계획이다.”


내년 대선이 왜 중요한 것인가.
“2013년 체제로 출발하기 위한 주춧돌 선거다. 우선 총선을 우리가 이겨야 한다. 그래야만 정권을 바꿨을 때 국민의 힘을 받아 역주행 공화국을 정상 공화국으로 만들 수 있다. 내년 대선 결과에 따라 역동적 복지국가로 가느냐, 한반도가 평화체제로 만들어지느냐가 결정된다. 아직 민주당이 대안은 아니다. 민주당이 대안이 되려면 어떻게 가야 하느냐가 중요하다. 이젠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줄 것이다.”


대선 출마 선언으로 생각하면 되나.
“내년 대선에 대해 벌써 이야기를 하면 ‘푼수’라는 이야기를 듣는다.(웃음) 지켜보자.” 

‘한진 노동3법’

요즘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는 것이 ‘용역경비’의 폭력 문제다. 용산참사와 한진중공업 사태처럼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른 집회 현장에는 용역경비가 나타나 참가자들을 떨게 한다. 용역의 폭력으로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곳도 늘어난다. 정 의원은 한진중공업으로 대표되는 노동현안의 해결을 위해 ‘생명, 평화, 소통을 위한 한진 노동3법’을 내놓았다. 이 법안은 정리해고의 무분별한 남발을 막는 법률 개정, 노와 사를 대화의 주체로 보장하기 위한 노조법 개정안, 그리고 용역경비의 폭력을 규제하는 경비업법 개정안을 말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경비업법 개정안이다. 7월 27일 정동영 의원과 야당 의원 31명이 대표발의를 한 것으로 용역경비의 폭력사용을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 경비업법은 용역경비업자와 경비원의 폭력행위 등 직권남용행위를 방지할 수단이나 제재가 미흡했다. 이 때문에 파업이나 철거현장에서 무분별한 폭력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이 법은 경찰이 용역직원의 불법적인 폭력행사를 보고도 묵인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찰의 행정개입의무를 신설했다. 

정 의원은 “민주공화국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기본권 침해가 노동현장, 철거현장에서 빈발하고 있다. 심지어 용역직원들이 무고한 시민을 붙잡아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도 목격했다”면서 “경찰병력은 그런 장면을 보고도 수수방관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법안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경비업법 개정안은 민주당 당론으로 채택되는 성과를 냈다. 정 의원은 “한진중공업 국정조사와 함께 법안 처리를 핵심과제로 내세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동 현장에서 보고 느꼈던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인정받은 것이다.


<글·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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