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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견된 경제위기, 해법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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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경기부양책 채무 증가… 증세 통한 국가재정 건전성 확보해야

“당분간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급감한 민간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무리한 경기부양책을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과도한 정부 채무와 통화팽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길어봤자 2~3년 지속될 것이다.”

지난 9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풍경. 전문가들은 상만 있고 벌은 없는 금융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진단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지난 9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풍경. 전문가들은 상만 있고 벌은 없는 금융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진단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조원희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가 2009년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조 교수는 당시 기고문에서 현재의 세계경제 체제를 ‘카지노 자본주의’로 정의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카지노 자본주의는 금융화의 과잉이자,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않고 이미 생산된 부가가치를 빼앗아가기만 하는 시스템을 뜻한다.

경기부양책이 채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무너진 지금 시점에서 한국 경제의 해법으로 조 교수가 내세우는 것은 정부 정책의 변화다. 이미 2년 전 기고문에서 그는 이명박 정부의 공공부문 민영화, 부자 감세, 금산분리 완화, 4대강 사업 등을 ‘위험한 도박’으로 진단한 바 있다. 실물경제의 침체로 인한 장기침체 국면에서의 철저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부동산 거품, 채무 폭증 등을 불러와 한국경제를 더욱 침체시킨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역대 정부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국내 경제의 대외의존도를 높이는 방향의 정책을 썼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금융허브를 추구했던 노무현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으며, 금융 시장의 규제를 획기적으로 줄인 자본시장통합법을 통과시켰다. 자본시장통합법의 주요 내용은 기존의 증권 규제를 포지티브 시스템(법규에 제시된 것만 허용)에서 네거티브 시스템(제시된 것만 금지)으로 바꾸고 증권, 선물, 자산운용, 신탁회사 간 겸영을 허용하는 것이다. 조 교수는 기고문에서 내수 시장이 탄탄하고 저축률이 높은 독일의 사례를 거론하며 “한국과 같은 수출주도형 흑자국들은 국내에서 민간 부문의 내수를 확대하는 정책을 개발하고 운용하는 것 외엔 길이 없다”고 진단한 바 있다.
 

실물경제 회복 위해 미국 증세 필요
2년이 지난 지금 조 교수는 경제위기의 해법으로 위기의 근원인 미국에서부터 증세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화당이 절대로 증세를 할 수 없다고 버틴 결과 미 정부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커졌고, 그 결과 지금처럼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는 등 세계 경제가 경착륙한 것이다”라며 “사회보장을 줄여 빈곤층 가계가 몰락하면 위기가 심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재정긴축안은 미국의 국제적 위상의 추락을 보여준다. 조 교수는 “현재 미국의 재정적자 감축안에는 대규모 군비지출 삭감이 포함돼 있다”며 “미국이라는 나라의 위상은 경제력뿐만 아니라 군사력에서도 기인하는 만큼, 지금의 경제위기는 미국의 정치군사적 위상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조원희 교수와 달리 지금의 글로벌 경제위기를 일시적인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도 있다. 배선영 수출입은행 감사는 지난 2009년 “글로벌 더블딥(이중침체)은 오지 않을 것이며,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적자 문제도 세계경제에 심각한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 예견한 바 있다. 지난 9일 <매일경제> 칼럼에서 배 감사는 자신의 진단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썼다.

다만 배 감사는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을 새로운 변수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배 감사가 제시한 것은 핵심 국가들의 수축적 재정·통화정책이다. 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미국 정부의 부채를 대폭 탕감해 주고, 미 정부는 3차 양적완화를 통해 위기에 빠진 남유럽 국가의 부채를 대거 매입해야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지금의 경제위기가 더블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패치, 즉 경기가 상승하는 가운데 일시적으로 숨고르기에 들어간 상태라고 보고 있다. 강 교수는 지난 8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에 대해서도 “이것이 미국의 재정적자를 감축하는 기제로 작용한다면 미국 경제가 다시 정상이 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들과 달리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조 교수와 마찬가지로 사회보장을 줄이는 식의 재정적자 감축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장 교수는 경향신문 칼럼을 통해 경기 회복을 위해 재정적자를 줄여야 한다는 주류적인 견해에 반대했다. 그는 칼럼에서 미국 경제의 회복세가 급격히 둔화되는 요인은 재정적자가 아니라 “금융위기 초기에 미 정부가 실행한 경기부양책이 끝난 점”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리스, 아일랜드, 영국 등의 사례를 들어 재정지출 삭감과 경기 회복 사이의 상관관계가 적다고 밝혔다. 또한 장 교수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복지비의 삭감은 그리스와 같은 심각한 사회갈등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봤다.

복잡한 금융상품 강력히 규제해야
경제위기의 해법으로 장 교수가 또 하나 제시하는 것은 강력한 금융 규제다. 그는 현재 금융 시스템이 “상만 있고 벌은 없는 보상체계”라고 진단했다. 장 교수의 <가디언> 기고문에는 구체적인 규제 방안이 나온다. 미국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린 국제 신용평가사에 대해 장 교수는 “그들은 의뢰 기업들로부터 돈을 받는다”며, UN이 운영하는 중립적 신용평가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복잡한 금융 상품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주장한다. 기고문에서 장 교수는 의약품처럼 자신의 안전성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금융상품이 아니라면 모두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다 급진적인 전망과 해법을 내세우는 학자도 있다. 장시복 목포대 경제학과 교수(금융경제 전공)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를 세계대공황으로 규정했다. 그는 이 세계대공황이 “자본이 일으킨 엄청난 사건으로, 지금의 경제위기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적인 위기가 결합된 장기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장시복 교수는 2008년 위기 이후 금융개혁이 철저하지 못했던 점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그는 금융개혁보다 주요 국가들이 지나치게 많은 공적자금을 투여해 금융자본들을 살린 반면,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손실과 고통을 안겨준 점을 보다 직접적 원인으로 제시했다. 장 교수의 비유에 따르면 “공적자금 투여라는 심폐소생술을 하는 동안 국가부채와 재정위기라는 암이 서서히 퍼진 것”이다. 국가부채와 재정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장 교수가 내민 1차적인 해법은 부자 증세를 통한 재정건전성 확보로, 조원희 교수의 해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장 교수는 여기서 더 나아가 근본적인 고민을 제기했다. 그는 경제체제 자체의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자본주의를 어떻게 변화시켜 갈 것인지, 국가의 행위를 어떤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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