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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교동 동지’들 지금 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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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 대학원 재학, 한광옥 통일문제 연구, 한화갑 평민당 창당

지난 8월 9일 오전 10시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 있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에 검은 넥타이를 맨 낯익은 정치권 인사들이 한 사람씩 나타났다.
 

동교동계 사람들이 2009년 10월 6일 김대중 전 대통령 묘비 제막식이 열린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헌화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동교동계 사람들이 2009년 10월 6일 김대중 전 대통령 묘비 제막식이 열린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헌화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권노갑 민주당 상임고문를 비롯해 김옥두 전 의원, 한광옥 전 대통령 비서실장, 남궁진 전 문화관광부 장관 등이 눈에 들어왔다.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불과 10여일 앞둔 시점이어서 그런지 이석현·이종걸 의원 등 현역의원들의 모습도 보였다. 이날 김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를 비롯해 가족, 김 전 대통령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동지 등 110여명이 참배했다.

매주 화요일 김대중 묘역 참배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해온 이른바 동교동계 사람들은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지금까지 매주 화요일이면 이희호 여사를 모시고 김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찾아 참배해 왔다. 권노갑 상임고문 등 동교동계 사람들은 앞으로도 참배를 계속할 예정이다. 동교동계 사람들이 매주 현충원을 찾기 때문에 화요일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날이 됐다. 특히 이들은 참배가 끝나고 현충원 정문 근처 스낵바에서 1시간여 동안 모여 사적인 얘기에서부터 국정에 대한 대화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토론을 벌인다.

장성민 전 의원은 “이 모임에서는 개인적인 건강문제부터 미국발 경제위기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 다양한 얘기가 이슈가 된다”며 “이명박 정부의 실정으로 민주당이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후 약속이 없는 사람들은 점심식사를 함께 하고 헤어진다.

동교동계는 소멸되지 않고 김 전 대통령 생전보다 더 자주 만나며, 끈끈한 연대를 유지하고 있다. ‘동교동’이라는 말은 박정희 정권 때 언론에서 ‘김대중’이라는 이름 석자를 직접 쓰지 못할 때 김 전 대통령이 사는 곳을 지칭해서 ‘동교동에 사는 재야 모 인사’로 표현하면서 시작됐다. 이를 계기로 김 전 대통령을 따랐던 사람들을 동교동계라고 불렀다.

동교동계의 맏형인 권노갑 상임고문은 멈추지 않는 학구열 때문에 화제 인물이 됐다. 권 고문은 최근 82세의 나이로 한국외국어대 영문학과 대학원에 입학하게 됐다. 일반전형으로 응시해 당당히 합격한 그는 2학기부터 손자뻘 되는 학생들과 대학원 공부를 시작한다. 그는 20대부터 영어 공부를 계속해 왔다. 그는 “교도소에 있을 때는 동시통역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지만 이제는 영문학 박사가 되고 싶다”며 “일생을 마감할 때까지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내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집권 가능성과 관련, 그는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와 한나라당 후보는 51대 49의 싸움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민주당이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등 진보야당과 총선 때부터 연대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목포 출신의 권 고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서 생사고락을 함께 해왔다. 그는 김대중 의원 비서관(1963년), 김대중 평민당 총재 비서실장(1987년),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2000년) 등을 역임했다.

김옥두, 민주당 고문단장 활약
김옥두 전 의원은 현재 민주당 고문단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민주당 원로인 상임고문단 회의를 주재하고 고문단의 의견을 손학규 대표 등 당 지도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이명박 정권이 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면에서 실패했다”며 “민주당이 민심을 정확히 읽어서 수권정당이 될 수 있도록 국민들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965년 김 전 대통령이 자비를 털어 운영했던 한국내외문제연구회에 들어가면서 김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3선 의원 출신인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외곽 지지그룹인 민주연합청년동지회 중앙회장(1993년), 새정치국민회의 당무위원(1996년) 등을 지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권노갑 민주당 상임고문이 2009년 11월 26일 여의도 63빌딩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상도동·동교동계의 만찬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 우철훈 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과 권노갑 민주당 상임고문이 2009년 11월 26일 여의도 63빌딩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상도동·동교동계의 만찬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 우철훈 기자

한광옥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민주당 상임고문으로서 정치권과 계속 인연을 맺고 있다. 한 고문은 또한 자신이 설립한 통일미래연구원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통일·남북문제 등을 연구하고 있다. 민화협(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을 설립해 남북 화해·협력에 앞장섰던 한 고문은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악화된 남북문제를 보면서 누구보다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한때 폐암에 걸린 부인을 간호하기 위해 정치활동을 중단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부인은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고 최근에는 회복하고 있다. 

한 고문은 지난 1997년 대선 과정에서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을 이뤄내 김대중 후보가 승리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당시 파트너는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의 김종필 총재 핵심측근인 김용환 사무총장이었다. 한 고문은 “당시 야권연합을 이뤄내기 위해 자민련 김용환 사무총장과 1년여 동안 협상을 진행했다”며 “당시는 민주당이 보수진영인 자민련과 정책연합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 민주당은 진보진영인 민노당 등과 연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30여년 동안 정치인생을 함께 해온 한 고문은 민주당 사무총장(1992년), 민화협 상임의장(1998년), 새천년민주당 대표(2002년) 등을 지냈다.

남궁진 전 문화관광부 장관도 화요 참배에 빼놓지 않고 참석하는 고정 멤버다. 현재 민주당 상임고문인 그는 김대중평화센터 감사직도 맡고 있다. 이번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행사를 조용하게 치르기로 한 것도 그의 의사가 반영됐다. 그는 “국민들이 수해로 고통받고 있는데 큰 행사를 하는 것보다 국민과 함께 조용히 슬픔을 나누자는 측면에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설훈, 민주당 부천 원미을 위원장
그는 서예·국악 등 예술에도 조예가 깊다. 올 10월 전주에서 열리는 세계서예비엔날레에 김대중 대통령의 어록을 쓴 서예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대학 동기인 그는 이 대통령이 복지와 남북문제에서 실정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대선 무렵 한나라당 후보경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승리한 직후 만나 대통령이 되면 햇볕정책을 계승할 것, 인사에서 호남을 차별하지 말 것 등을 주문했는데, 그런 것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1985년 민추협 활동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그는 아태평화재단 이사(1993년), 대통령 정무수석(1999년), 문화관광부 장관(2001년) 등을 역임했다.

동교동계 막내인 설훈 전 의원은 민주당 부천 원미을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내년 총선을 대비해 하루 종일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서울 도봉에서 재선했던 그는 같은 동교동계인 배기선 전 의원으로부터 이 지역구를 물려받았다. 3선의 배기선 전 의원은 이 지역 의원인 한나라당 이사철 의원(재선)과 라이벌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사철 의원과의 싸움이 부담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접전이 예상되지만 자신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천지역 시민들을 만날 때마다 경제를 살리라고 이명박 대통령을 뽑아줬는데 지금은 실망이라고 말한다”며 “지역 민심을 보면 내년 총선에서 한번 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영남 출신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동교동계로 분류된다. 그는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 공범으로 군사법정에 서면서 처음으로 김 전 대통령과 만났다. 그 후 그는 김 전 대통령의 비서로 발탁됐고, 새정치국민회의 총재특보(1996년), 민추협 이사(2001년) 등을 지냈다.

국민의 정부 국정홍보비서관과 국정상황실장 출신인 장성민 전 의원도 매주 현충원을 찾는다. 장 전 의원은 요즘 서울과 전남을 오가며 살고 있다. 서울에서는 ‘세계와 동북아평화포럼’ 대표로서 북한·통일문제 등 한반도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또한 틈틈이 전남 고흥·보성군에 내려간다. 내년 총선에서 이 지역에 출사표를 던질 예정이다. 장 전 의원은 “중학교 2학년까지 다녔던 이 지역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기 위해 열심히 지역구 관리를 하고 있다”며 “지금은 지역에서 주로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외에 동교동계인 배기운 전 의원은 전남 나주시·화순군에, 최재승 전 의원은 익산에서 총선 출마 채비를 하고 있다. 여기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 전 의원의 행보도 주목된다.

동교동계 권노갑 상임고문과 함께 ‘양갑’으로 불렸던 한화갑 전 의원은 평화민주당(평민당) 대표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3월 민주당 탈당과 함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한다”며 평민당을 창당했다. 한화갑 대표는 내년 총선에서 전남 무안·신안군에 출마하기 위해 열심히 표밭갈이를 하고 있다. 특히 신안지역은 섬이 많아 인구가 비교적 많은 섬만 다녀도 20일 이상이 걸린다. 평민당은 내년 총선에서 한화갑 대표가 당선돼 원내에 진출하는 것을 1차 목표로 하고 있다. 평민당 김정현 대변인은 “광주와 전남·북에서 당선권에 드는 후보를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현재 서울·대전·경북 등 전국에서 6개 도당을 창당한 상태이고, 앞으로 지역위원장도 선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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