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한 소재,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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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88만원 세대’, 유럽의 ‘1000 유로 세대’, 일본의 ‘비참 세대’, 미국의 ‘빈털터리 세대’는 모두 20대 젊은이를 칭한다. 이웃 일본에서는 니트족, 캥거루족, 파라사이트족, 하류사회 등 나쁜 용어는 모두 젊은이를 지칭한다.

<20대 : 오늘, 한국 사회의 최전선><br>한기호 외 지음·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

<20대 : 오늘, 한국 사회의 최전선>
한기호 외 지음·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

우리나라에도 30대 초반에 인생을 땡친다는 ‘3초땡’이나 미래를 장담할 수 없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라는 신조어마저 등장했다(한기호). “새로운 담론을 제기할 수조차 없는 환경은 우리 세대의 가치관에도 예상치 못한 영향을 미친다. 이른바 ‘표백세대’다.”(장강명)

표백세대에게는 실질적으로 어떤 사상도 완전히 새롭지 않으며 사회가 부모나 교사를 통해 전달하는 지배사상에 의문을 갖거나 다른 생각에 빠지는 것은 낭비일 뿐이다. 그런 시도는 기껏 잘 돼봤자 기존 지배사상이 얼마나 심오하고 빈틈 없는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효과만 낳는다.

표백세대는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선배와 상사, 기성세대를 찢어죽일 것처럼 성토하다가도 면접시험장에서는 한없이 고분고분해지고 공손해진다. ‘음흉함’은 그들의 제2의 천성이다. 표백세대의 젊은이는 부에 대한 욕심이 크지 않더라도 자신의 능력과 야망을 증명하려면 돈을 버는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 외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의 존재가치를 주장할 방법이 없다.

<표백(漂白)><br>장강명 지음·한겨레출판 펴냄

<표백(漂白)>
장강명 지음·한겨레출판 펴냄

완성된 사회에서 표백세대의 실패는 그들 개개인의 무능력 탓으로 귀결된다. 현직 기자가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황현산 선생이 ‘우리 시대의 인문학적 성과를 한 세대의 서사기법으로 훌륭하게 칼질해낸 소설’이라고 상찬한 장편소설 <표백(漂白)>이다. 추리소설의 얼개로 연쇄 자살사건을 다뤘다.

대학 졸업을 앞둔 소설 속 ‘나’는 빼어난 미모에 카리스마까지 갖춘 세연을 비롯해 휘영, 병권 등과 어울리지만 자신이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낀다. 그러던 그해 6월 세연이 죽었다. 수심이 고작해야 50㎝ 안팎일 학교 시멘트 연못에 빠져 죽었다.

경찰은 실족사라고 간단히 결론내렸다. 세연의 피에서는 얼마간의 알코올이 검출되었다. 세연은 삼성전자에 이미 특채가 된 상태였다. 친구들은 세연의 사물함 속 USB에서 그녀가 남긴 파일을 발견한다. 자살에 대한 논리가 담겨 있었다. 이어 세연의 또 다른 친구로 역시 수려한 외모의 추윤영, 후배 병권 등도 줄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실연도 등록금도 실업도 아니었다. 이들은 인생의 시련이나 좌절이 아니라 삶의 큰 성취를 이룬 후 자살을 감행했다. “나는 20대가 스스로 자신의 과업을 찾아주길 바란다. 내게 20대는 여러 흥미로운 주제 중 하나일 뿐이다. 반면 젊은이들에겐 과업을 찾는 일이 바로 그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길이다.” 작가의 말이다.

그래서일까? 20대들은 새로운 과업을 찾고 새로운 도덕(철학)을 알아보기 위해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찾아보기 위해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열렬히 읽었다. 또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으며 청춘을 위로받았다. 그리고 임재범, 박칼린, 김태원의 어록에 눈물을 흘렸다.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에 나오는 구절들을 트위터로 나르기 시작했다. 김어준의 <건투를 빈다>, 엄기호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김남훈의 <청춘 매뉴얼 제작소> 등 어른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였다.

이렇듯 20대들은 책 속에서 스승을 찾아나선다. 20대는 위기의 한국 사회를 이끌 최전선의 투사다. 그래서 다른 세대는 20대를 위해 혹은 20대를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테마별로 꼭 읽어야 할 책 30여권을 소개하고 그 테마의 의미를 밝히는 ‘앎과삶 시리즈’를 시작했다. 두 번째 주제가 <20대 : 오늘, 한국 사회의 최전선>이다.

20대를 그린 소설, 20대를 둘러싼 사회 현실에 관한 책, 20대가 쓴 책, 20대를 응원하는 책 30여권을 소개하는 서평을 통해 왜 20대가 한국 사회의 최전선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최재천<변호사> cjc4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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