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는 어떻게 진화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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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역사’에 관하여 저자 로드니 칼라일이 관심을 갖게 된 때는 하버드대 1학년 때부터였다. 수십 년이 흐른 뒤 루처스대 역사학과에 몸담고 있을 때 그는 과학과 기술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과 함께 과학적 혁신이 가져온 사회적 영향을 탐구하는 ‘과학, 기술, 사회’란 교양과목을 개설했다. 저자의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발명·발견대사전>은 역사서의 기술방식을 따랐다. 인류가 이룩한 발명과 과학적 발견의 역사를 여섯 시기로 나누어 사회에 끼친 광범위한 영향이란 맥락에서 검토했고, 나아가 인류의 진보 자체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게 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발명·발견대사전> 로드니 P. 칼라일 지음·심장섭 옮김·책보세 펴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발명·발견대사전> 로드니 P. 칼라일 지음·심장섭 옮김·책보세 펴냄

마지막 시기는 ‘원자와 전자시대’로 1935년부터 현재까지. 1934년 사회비평가 루이스 멈포드는 ‘신기술’ 시대에는 과학이 기술을 낳고 기술은 새로운 과학적 발전을 이끄는 일이 수없이 벌어질 것이라 예측했다. 원자폭탄은 과학상의 발견이 기술적 응용을 확실하게 앞선 사례였다. 실제로 1938년엔 핵 ‘엔지니어’란 분야가 아예 없었다. 최초의 핵무기 설계자들과 원자로 제작자들은 바로 핵물리학자들이었다. ‘연구와 개발’ 혹은 줄여서 ‘R&D’라는 용어가 과학 연구는 엔지니어링에 선행하며 기술 발전을 낳을 것이라는 견해를 특징적으로 나타내게 된 사실은 당대의 이념적 추세를 반영한다.

한편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걱정이 절박해졌다. 신형 무기는 대응 무기와 방어 무기의 개발을 유발하게 마련이었다. 게다가 기술로 말미암아 독버섯처럼 생겨나는 문제들은 전쟁이나 국방과는 무관한 딜레마를 불러일으켰다. 살충제는 지구를 독물로 오염시켰다. 핵발전소에 사고가 났을 때는 참혹한 대재앙이 뒤따랐다. 세계 각국의 시민이 기술이 불러일으키는 위험에 대하여 더욱 많은 것을 깨닫게 되자, 기술적 진보와 혁신과 실험 등을 둘러싼 문제가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고 정치화되었다. “과연 발명과 발견이 인류에게 미래의 번영을 가져다 줄 것인가, 아니면 지구에 대재앙을 일으키고 인간의 자유를 앗아갈 것인가?”

18세기 산업혁명은 사회를 전복한 몇 가지 혁명 가운데 하나였다. 기계 창조물은 농장과 집으로 침입했다. 하지만 이 침입은 여전히 이름을 갖고 있지 않았다. 1802년 독일 괴팅겐대의 경제학교수 요한 베크만이 상승일로에 있는 힘에 이름을 붙였다. 고대 그리스어를 부활시킨 ’테크놀로지‘(technology). 그는 우리의 창조물들이 단지 무작위적 발명과 뛰어난 착상의 집합이 아니라는 것을 최초로 인식한 사람이었다. 

<기술의 충격> 케빈 켈리 지음·이한음 옮김·민음사 펴냄

<기술의 충격> 케빈 켈리 지음·이한음 옮김·민음사 펴냄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문화 전문지 <와이어드>에서 첫 7년 동안 편집장으로 일했던 케빈 켈리는 <기술의 충격(원제, What Technology Wants)>에서 우리 주변에서 요동치는 세계적이며 대규모로 상호 연결된 기술계(system of technology)를 ‘테크늄’(technium)이라 이름 붙였다. 테크늄은 생명의 근본 형질을 확대하며, 그럼으로써 생명의 근본적인 미덕을 확대한다. 생명의 다양성 증가, 직감 범위, 일반적인 것에서 차이나는 것으로의 장기적 이동, 자신의 새 판본을 생성하는 본질적인 (그리고 역설적인) 능력, 무한 게임의 끊임없는 펼침은 테크늄의 형질이자 테크늄이 ‘원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언젠가 우리는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가장 호혜적인 기술이 인간 창의성의 증거가 아니라 신의 증거라고 믿을지 모른다.”

새로운 기축시대에는 가장 위대한 기술작품이 우리보다는 신의 초상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것. 이렇듯 저자는 세계 최고의 테크놀로지 철학자답게 다시 한 번 시대를 앞서 나간다. “그는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인간의 삶을 넘어서 자신의 타고난 욕망과 본능에 따라 진화하는지를 보여준다”(월터 아이잭슨). 저자의 테크늄에 대한 마지막 확신은? “하지만 테크늄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테크늄은 마음의 근본 형질들을 확대하며, 그럼으로써 마음의 근본적인 미덕도 확대한다. 기술은 모든 사유의 통일을 향한 마음의 충동을 증폭하며, 모든 사람의 연결을 가속하고, 무한을 이해하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식을 세계에 퍼뜨릴 것이다.” 네그로폰테는 이 책을 두고 “입문서보다는 스릴러에 가깝다. 내가 읽어 본 테크놀로지 서적 가운데 최고다”라고 평했다. 거역할 수 없었다.

최재천<변호사> cjc4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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