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방송의 문화는 ‘입단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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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 이후 최악의 언론 자유 제한 조치 ‘소셜테이너 금지법’

지난 13일 MBC는 이사회를 열어 사규 제·개정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고정출연 제한 심의’ 규정이 이사회를 통과했다. 이 조항은 사실상 소셜테이너의 MBC 고정출연을 금지하는 것으로 시민사회의 비판과 반발이 잇따랐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MBC는 군사정권 이후 언론인의 자유를 가장 큰 폭으로 제한하려는 시도를 추진했다. ‘직원의 대외발표활동에 관한 규칙’이다.

지난 18일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가 서울 여의도 MBC 정문 앞에서 ‘삼보일퍽’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지난 18일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가 서울 여의도 MBC 정문 앞에서 ‘삼보일퍽’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 규칙 제3조를 보면 외부매체 기고, 취재, 출판, 출연, 인터뷰, 토론, 외부 토론회, 강연, 연설, 진행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외부활동이 ‘대외발표활동’으로 규정돼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대외발표활동에 대해 해당 직원은 사전에 소속 부서장과 인사업무 담당 국장에게 이를 보고하고 사전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 규칙 제8조는 “회사 정책이나 일반적 회사 상황에 대하여서는 회사의 대변인 등 공식적인 대외관계 부서에 일임하거나 사전에 협의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고정출연제한 규정, 직원 발언도 규제 가능
MBC 사측은 지난 6월 22일 이런 내용으로 사규를 개정한다고 노조에 설명했다. 6월 28일자 MBC 노보에 따르면 이날 MBC 전략기획부장은 새 규칙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신문사 기자가 MBC 직원에게 전화해 특정사안에 대한 개인 견해를 물을 경우, 먼저 신문사 기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부서장에게 사전 보고를 해 승인을 받은 뒤에야,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 

MBC 노조는 성명을 통해 “박정희 유신시대나 전두환 시대에나 가능했던 작태”라며 “언론사 경영진이 스스로 언론의 존립 근거인 양심과 사상, 표현의 자유를 막고 나선 것”이라고 비판했다.

MBC 경영진은 애초 ‘직원의 대외발표활동에 관한 규칙’을 ‘고정출연 제한 심의’ 규정과 함께 이사회에서 통과시킬 생각이었지만, 지난 7월 13일 이사회에서는 ‘고정출연 제한 심의’ 규정만 통과됐다. MBC 노조 관계자는 22일 전화통화에서 “대외발표활동 규칙은 일단 보류됐다. 기존 단체협약보다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이 규칙이 효력을 가지려면 노동자 과반수 혹은 노동조합의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어서 보류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노조 관계자는 그러나 고정출연 제한 심의규정으로도 MBC 직원들의 발언을 규제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고정출연 심의 대상을 외부 출연자로만 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내 기자, PD, 아나운서 등이 다 해당될 여지가 있다. 회사 쪽에 이 문제에 관한 유권해석을 요청했지만 분명한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여진씨의 <시선집중> 출연 무산으로 촉발된 ‘소셜테이너 금지규정’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 18일에는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가 MBC 사옥 앞에서 세 걸음을 걷고 팔뚝질을 날리는 ‘삼보일퍽’ 퍼포먼스를 했다. 퍼포먼스를 마친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는 “이른바 ‘소셜테이너 금지규정’은 MBC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는 태도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을 솎아내려는 행태”라고 말했다.

군사정권 시대에는 지식인·연예인들의 사회비판성 발언이 철저하게 봉쇄됐다. 이 시기 연예인들은 주로 복장이나 외모의 문제로 출연이 금지됐다. 

1987년 민주화 직후에도 연예인의 사회참여 발언은 자유롭지 않았다. 1987년 대선 당시 배우 박규채씨는 야당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프로그램 진행자 자리에서 하차한 이후 1년 동안 방송 출연을 하지 못했다. 박씨의 출연 금지는 1988년 11월에야 풀렸는데, 출연 금지 해제 이후 박씨는 “저는 민주투사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닙니다. 비록 연기를 해 생활하는 탤런트지만 자신의 뜻을 밝히는 정당행위가 왜 말썽이 됐어야 했는지 모를 일입니다”라고 말했다(경향신문 1988년 11월 29일자). 지난해에는 개그맨 김미화씨가 KBS에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방송사가 자체적으로 사회적 발언을 하는 이들의 고정출연을 봉쇄하는 규정을 마련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MBC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19일 정상모 방문진 이사가 이날 방문진 임시이사회에서 김재철 MBC 사장의 업무보고를 거부한 후 기자들과 만나 MBC의 파행을 비판하고 있다.

지난 19일 정상모 방문진 이사가 이날 방문진 임시이사회에서 김재철 MBC 사장의 업무보고를 거부한 후 기자들과 만나 MBC의 파행을 비판하고 있다.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야당 추천 이사들은 이 같은 상황을 “국민의 방송 MBC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고 규정했다. 고진·정상모·한상혁씨 등 세 이사는 지난 19일 오후 3시 방문진 제5차 임시이사회에서 김재철 MBC 사장의 업무보고를 받지 않고 성명서만 낭독한 후 퇴장했다. 성명서에서 이들은 현재 MBC가 처한 상황을 보며 “새삼 80년 광주에서의 기억이 되살아난다”며 문제된 규정을 즉각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정상모 이사는 이사회에서 퇴장한 후 기자들을 만나 ‘양심’에 대해 말했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것은 양심이다. 그런에 이번 MBC 사규는 양심을 억누르는 야만적인 조치다. 이런 상황에서 업무보고를 받는 게 무슨 가치가 있나.” 정 이사는 이어 “논쟁적인 사안인 경우 어떤 주장이 옳고 그른지 시민들은 궁금해 한다. 방송은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시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러자면 관점은 달라도 해당 사안에 대해 정확한 견해를 가진 사람이 출연해야 여론 형성에 도움이 될 것 아닌가”라며 야당 추천 방문진 이사들은 MBC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철회하기 전까지 업무보고를 받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3시 30분쯤 이사회를 마치고 나온 김재철 사장이 기자들과 함께 앉아 있던 정 이사에게 말을 건넸지만 정 이사는 손을 내저었다. 김 사장은 오후 4시에 방문진을 떠났다.

MBC 노조는 사규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MBC에 출연했거나, 현재 출연하고 있거나, 앞으로 출연할 가능성이 있는 외부 인사들 중 현행 규정으로 인해 불이익이 예상되는 이들을 원고인단으로 모아 8월 8일에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7월 22일 오후 2시 30분 노조 공식 트위터를 통해 소송 원고인단에 참여할 의사를 밝힌 이들의 명단을 공개했다. 이외수·공지영(소설가), 김여진·문성근(배우), 화가 임옥상, 만화가 강풀, 김조광수·고영재(영화제작자),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김규항, 언론인 홍세화, 기자 고재열, 시사평론가 김용민, 음악평론가 김작가, 제정임 세명대 교수,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 홍성태 상지대 교수, 문화평론가 변정수, 인터뷰 전문작가 지승호, 개그맨 노정열,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 등 21명이다.

<글·사진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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