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순천 선암사 - 깊은 산, 깊은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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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이 땅에 ‘답사여행’이라는 새로운 장을 열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첫 머리의 화두는 “아는 만큼 보인다”였다. 이는 조선 정조 때 유한준 선생의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를 인용한 것으로 답사여행에 있어 답사 대상에 대한 안목과 애정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말이었다.

선암사의 봄 풍경

선암사의 봄 풍경

비록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열혈 독자이기는 하지만 평소 모든 것을 비틀거나 뒤집어 보기 좋아하는 나는 이 명제에마저 넌지시 딴죽을 걸었다. “아는 만큼 보이지만, 모르는 만큼 다르게 볼 수 있다”고. 이는 여행에 있어서 ‘아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부정이라기보다는 ‘따라가기’에 대한 경계의 생각이었다. 남이 일러준 대로 갈 바에야 굳이 여행을 떠날 필요가 있겠느냐는(물론 답사여행은 또 다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감은사터에서 석탑의 조형성에 경탄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석탑 돌 틈 사이로 핀 풀 한 포기에 더욱 감동받는 이도 있다. 그런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뜬금없이 ‘나의 문화유산망각기’를 써볼까 하는 생각까지 했더랬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 ‘인생도처유상수’가 나왔다. 마치 무슨 의무처럼 책을 사서 읽는다. 읽고 망각하기 위해서. 직업적인 필요도 있지만 내가 답사기나 여행기를 읽는 이유는 여행 대상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에 앞서 다른 이의 여행을 들여다보는 즐거움 때문이다. 그는 때로 새로운 여행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고, 어떤 기행에 반동하는 즐거움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것 그대로 여행이 되기도 한다.

내친 김에 답사기를 들고 떠나는 답사여행을 권해보기로 하자. 당연히 ‘따라가는 여행’을 위해서가 아니라 ‘또 다른 여행’을 위해서. 마치 다른 생각을 가진 이와 동행하는 여행처럼. 대화하면서 한눈을 파는 무성의한 도반처럼. 어떨 때는 둘러보기 전이 아니라 둘러본 후에 읽기도 하면서. 세상 곳곳에 ‘고수들’이 존재한다는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이지만 가끔은 스스로 상수가 되어본들 또 어떠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 ‘인생도처유상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 ‘인생도처유상수’.

이번 책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꼭지는 순천 선암사 편이다. 그 내용은 차치하고 여행 대상이 주는 매력 때문이다. 저자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어지간히 선암사를 다녀왔다. 발품을 팔면서 얻은 결론은 갈수록 좋은 선암사이지만 적어도 두 번 이상은 다녀와야 한다는 것이다. 봄철이거나, 봄철이 아닌 때. 사철 좋은 선암사에서 봄철과 봄철 아닌 때로 구분하는 것은 나머지 계절이 봄철만 못하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계절도 모두 봄철만큼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은 봄철이 있어 더욱 깊어진다.

봄철은 봄철이라서 그대로 좋고, 봄철이 아닌 때는 봄철에의 그리움이 더해진다. 마침 지금은 봄철이 아니다. 다행히 봄철에 한 번 다녀온 이라면 안심이지만 혹 봄철에 다녀오지 못했거나 처음 찾는 이라도 그렇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 봄철에 대한 기억이 없다 하더라도 미리 또는 되짚어 봄철을 그려보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움은 추억에서도 오지만 미지에 대한 그리움도 있다. 선암사의 여름에는 봄의 흔적이 녹아 있다. 꼭 봄철에 다시 찾는다는 전제라면 다만 순서만 바뀌었을 뿐인 것이다.

선암사 최고의 볼거리는 꽃
선암사의 봄철이 각별한 것은 꽃 때문이다. 사시사철 꽃이 피는 선암사이지만 매화에 산수유, 영산홍에 자산홍, 동백에 벚꽃까지 흐드러지게 피고 지는 선암사의 봄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까닭에 그만큼 절절하다. 저자 역시 ‘선암사 최고의 볼거리는 꽃’이라며 그 중에서도 ‘선암사를 대표하는 꽃’으로 매화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훨씬 상수로 치는 육당 최남선의 선암사 행에 편승해 선암매의 감동을 수 높게 전한다.

육당 최남선의 ‘심춘순례’는 송광사에서 송광굴목재 너머 선암사로 넘어오는 산길이었다. 나도 두어 차례 이 산길을 넘어가며 굴목재의 아름다운 돌배나무꽃도 보고 장군봉에 흐드러지게 핀 철쭉꽃도 원없이 즐겼지만 역시 매화가 주는 감동은 따라오지 못했다. 그런데 육당은 그날 다섯 시간 이상 걸리는 산길을 넘어오느라 몹시 피곤하여 선암사에 당도하여 바로 곯아떨어졌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에 매화꽃을 보고는 이렇게 억울해했다.

이럭저럭 ‘굴묵이’ 넘어온 피곤을 잊어버리고, 무엇인지 코가 에어져나가는 듯한 향기를 맡으면서 청량한 꿈을 찾아들었다. 이튿날, 일뜨며 창을 밀치니 맑고도 진한 향기가 와짝 들이밀어 코로부터 온몸, 온 방안을 둘러싸버린다. 새빨간 꽃을 퍼다 부은 춘매(春梅)가 바로 지대(地臺) 밑에 있는 것을 몰랐었다. (…) 이러한 미인이 창전(窓前)에 대령한 줄을 모르고 아무 맛 없이 곱송그려 새우잠을 자고 났거니 하매, 아침나절에 입맛이 쩍쩍 다시어진다.

답사기를 따라 선암사 가는 길부터 시작해 승선교 건너 강선루를 오르고, 삼인당 연못가에 쉬거나 승탑밭(부도전)을 거닐다가, 일주문을 지나 만세루 등 경내를 둘러보고, 칠전선원 돌아 해천당까지, 이 오래되고 깊은 절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것이 선암사 답사여행의 정석이겠지만, 나는 이번에도 역시 그보다는 깊은 절을 감싸 안고 있는 깊은 산의 여름에 눈길을 더 돌리라고 권하고 싶다. 저자 역시 선암사의 여름을 담담하지만 안목 있게 그려낸다. 어차피 저자는 나같이 본데없는 행자와는 차원이 다르다.

여름이 깊어지면 배롱나무꽃이 피기 시작해 장장 석달 열흘을 위부터 아래까지 온몸을 붉게 물들인다. 그때가 되면 선암사 한쪽 구석에는 모감주나무의 노란 꽃, 치자나무의 하얀 꽃, 석류나무의 빨간 꽃이 부끄럼을 빛내며 우리에게 눈길을 보낸다. 봄이 나무꽃의 계절이라면 여름은 풀꽃의 세상이다. 선암사 뒤안길 돌담 밑에는 봉숭아 채송화 달리아가 돌보는 이 없이도 해마다 그 자리에서 그 모습으로 잘도 피고 진다. 그러나 절집의 꽃으로는 역시 가녀린 꽃대에 분홍빛으로 청순하게 피어나는 상사화가 제격이고, 여름이 짙어가면 삼인당 섬동산은 빨간 꽃술의 꽃무릇으로 환상적으로 뒤덮인다.

우리나라 유일한 문화재 뒷간

선암사의 뒷간. ‘깐뒤’가 아니라 ‘뒷간’이라고 읽어야 한다.

선암사의 뒷간. ‘깐뒤’가 아니라 ‘뒷간’이라고 읽어야 한다.

다만 한 가지, 그 유명한 선암사 ‘뒤 (뒷간)’만은 놓치지 말기 바란다. 하긴 사람에게 식탁 다음으로 중요한 공간이니 놓치라 마라 할 것도 없이 한 번쯤은 ‘볼일’이 생기기 십상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된 뒷간인 선암사 해우소는 그 생김새부터가 눈길을 잡아끈다. ‘정(丁)’자형으로 우아하게 들어앉은 모습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생긴 화장실’답다. 그 입구에는 으젓하게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전에 한자로 ‘대변소(大便所)’라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고, 그 아래 역시 ‘뒤 ’이라고 한글 고어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놓으니, 지금도 사람들은 ‘깐 뒤’라고 읽고 착실하게 글에 따라 뒤를 깐 뒤 볼일을 본다. 저자의 말마따나 ‘선암사 뒷간은 그냥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 볼일을 보아야’ 제맛을 알 수 있다. ‘사용자로서 그 속에 들어가 큰 거든 작은 거든 일을 볼 때 눈앞에 마주하는 뚫린 창살로 밖을 내다보며 내 몸의 배설물이 저 아래 허공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 뒷간이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 바깥 풍경이야 당연히 그토록 시원할 수 없고, 시도 때도 위도 아래도 있을 턱이 없으니, 그에 앉아 시구라도 한 자락 읊조린다면 어찌 세상에 상수가 따로 있으랴.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 ‘선암사’

글·사진 유성문<여행작가> meonb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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