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인간의 사고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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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약 4000년께, 인간은 글쓰기를 배웠다. 문자의 발명으로 인류는 과거를 기록할 수 있게 되었고, 책은 역사에서 강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책의 역사는 기독교 시대 이후 코덱스가 두루마리 책을 대체하면서 기술적 전환기를 맞이했다. 3세기 즈음 등장한 코덱스는 기독교 전파에 중대한 역할을 했다. 1450년대 가동활자를 쓴 인쇄술이 발명되면서 이번에는 코덱스가 변화했다. 가장 최근의 커다란 변화는 전자 커뮤니케이션이다. 문자 발명에서 코덱스까지 4300년이 걸렸고, 코덱스에서 가동활자까지 1150년, 가동활자에서 인터넷까지 524년, 인터넷에서 검색엔진까지 17년, 검색엔진에서 구글의 검색 순위 알고리즘까지 7년이 걸렸다. 기술 분야의 변화는 정보 경관을 변화시켰고, 속도는 계속 빨라지고 있다.

<책의 미래><br />로버트 단턴 지음·성동규·고은주·김승완 옮김·교보문고 펴냄

<책의 미래>
로버트 단턴 지음·성동규·고은주·김승완 옮김·교보문고 펴냄

이제 종이책의 시대는 끝났는가. 종이책과 전자책은 선택의 문제인가. “현재의 문제들과 씨름을 하면서 미래를 내다보려고 한다면 과거를 연구하면서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의 역사가’로서 확고한 위상을 자랑하는 하버드대 도서관장 로버트 단턴은 <책의 미래>를 과거, 현재, 미래의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과거’에서는 마이크로 필름이 가져온 종이 대학살 사건을 통해 종이책 보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스크린을 읽는 것은 종이를 읽는 것보다 아직 불편한 면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런 비싼 스크린들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 웹 라이프스타일의 개척자라고 믿고 있는 나조차도 읽을거리가 네다섯 쪽을 넘어가면, 인쇄해서 가지고 다니며 읽고 주석도 달고 싶습니다. 과학기술이 그 정도 수준의 편리함을 이뤄내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빌 게이츠)”

전자책 출판은 3단계를 거쳤다. 처음에는 전자책이 가져올 이상향에 열광했고, 다음으로 환멸의 시간을 거쳤으며, 이제는 실용주의라는 새로운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래’는? 단턴은 2009년 어느 글에서 시민권의 두 가지 자질인 읽기와 쓰기를 모두 수행할 수 있는 곳, ‘문자공화국’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인터넷 시대에도 책은 살아남아 디지털 계몽주의에 복무할 것이다. 더불어 “전자책은 구텐베르크의 위대한 발명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보완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인터넷과 스마트기기가 바꾸는 건 책 정도가 아니다. “나는 종이 매체 또는 인터넷에서조차 장문의 기사를 읽는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더 이상 <전쟁과 평화>와 같은 책을 읽을 수가 없다.” 미시간의대 병리학자 프리드먼은 자신의 사고가 ‘스타카토’ 형식을 띠고 있다고 표현한다. 인간은 원래 책을 읽음으로써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독서를 대중적인 활동으로 만든 지난 5세기 동안 선형적·문학적 사고는 예술, 과학, 그리고 사회의 중심에 있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br />니콜라스 카 지음·최지향 옮김·청림출판 펴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콜라스 카 지음·최지향 옮김·청림출판 펴냄

예리하고 유연한 이 같은 방식의 사고는 르네상스를 불러온 상상력이었고, 계몽주의를 낳은 이성적 사고였으며, 산업혁명을 이끈 창조적인 사고였다. 모더니즘을 낳은 전복적인 사고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또한 곧 구식이 될 것이다. “제가 대부분의 읽는 행위를 웹에서만 하는 이유가 저의 읽는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단지 편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제가 사고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스콧 카프)” 정보를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인터넷 세상에서 링크와 하이퍼텍스트로 이어진 정보를 따라 인간의 생각은 흘러 다닌다. 오늘의 인간은 지식과 기억조차 아웃소싱에 의존한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컴퓨터에 의존하게 되면서 인공지능으로 변해버리는 것은 바로 우리의 지능이다.” 세계적인 IT 미래학자이자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니콜라스 카의 탁월한 예지력이다. 인터넷이 우리의 뇌구조를 바꾸고 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 간다. 인터넷이 우리의 사고방식을 ‘얕고 가볍게’ 만든다. 그래서 원제가 ‘The Shallows’다.

1950년대 마틴 하이데거는 “기술의 광란은 모든 곳에서 견고히 자리잡을 태세로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적었다. 이를 이어받은 니콜라스 카의 예언, “우리는 이 같은 현상이 확고히 자리잡고 있는 마지막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우리는 이 광란을 우리의 영혼 속으로 기꺼이 맞아들이고 있다.” 깊숙한 공명을 주는, 상반기 최고의 책이라 여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오는 2014년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하기로 했다.

최재천<변호사> cjc4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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