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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상부 견제해야 수사권이 바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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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수사권 조정안 국회 통과, 향후 경찰의 과제

6월 30일 검·경 수사권 조정안(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 논의과정에서 수사지휘권의 구체적인 내용을 법무부령으로 규율하느냐 대통령령으로 규율하느냐를 두고 검·경은 치열한 기싸움을 벌였다.

미리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 국회를 통과한 수사권 조정안의 핵심 내용은 3년 전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작성한 연구보고서의 내용과 일치한다.

조현오 경찰청장(오른쪽)이 6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사법개혁특위 전체회의에서 답변을 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조현오 경찰청장(오른쪽)이 6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사법개혁특위 전체회의에서 답변을 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2008년 경찰청은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정책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조국 교수가 책임연구원을 맡았다. 2009년 11월 2일, ‘검사 수사지휘권 행사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경찰청에 제출됐다. 정책연구정보 웹사이트 프리즘(PRISM)을 보면, 연구 기간은 2008년 12월 31일부터 2009년 9월 26일까지였다. 프리즘은 중앙부처의 연구용역 결과물을 게시하는 웹사이트로, 행정안전부가 운영한다.

검찰과 대등한 발언권 행사 발판 마련
보고서는 ‘우리나라 검·경 관계의 연혁’ ‘검사의 수사권 지휘 행사의 범위와 한계’ 등을 검토한 후 헌법, 형사소송법, 검찰청법 개정안을 제시했다. 형사소송법 195조에서는 검사만이 아니라 사법경찰의 수사권도 인정하고, 196조에서는 검사의 수사지휘 대상 범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지난 6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형사소송법 개정안)의 취지와 동일하다. 이번에 본회의를 통과한 조정안은 사법경찰의 수사 개시권과 진행권을 인정하고, 6월 20일의 정부 합의안과는 달리 검사의 수사지휘권 범위를 법무부령이 아니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이 보고서에 대한 발주처(경찰청 수사구조개혁팀)의 평가를 보면 “연구목적에 부합”하며 “향후 형사소송법, 검찰청법의 개정시에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보인다”고 돼 있다.

조국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2005년 참여정부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일할 때도 이미 주장했던 내용이다. 당시에도 시행령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와 관련해 논란이 있었는데 결국 어느 쪽으로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사법개혁 논의가 마무리됐다”며 “수사권 조정 논의는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돼야 한다. 대통령령에 어떤 내용을 담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합의안 발표 이후 밤샘 토론회와 1인 시위 등으로 불만을 표출했던 경찰은 이번 본회의 통과안에 대해서는 “대통령령 제정 과정에서 검찰과 상호 존중하며 국민 인권보호와 바람직한 수사구조를 만들기 위해 원만히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개정안은 수사권 조정의 ‘원칙’만 확인했다. 현재로서는 경찰이 오랜 숙원인 수사권을 확보했다고 하기는 이르다. 경찰이 확보할 수 있는 수사권의 구체적인 범위는 앞으로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 그럼에도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문구가 들어가면서 경찰의 태도가 반전된 것은 향후 논의 테이블에서 검찰과 대등한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수사권의 구체적인 범위를 법무부령으로 할 경우에는 법무부가 주무부처가 된다. 이 경우 법무부는 관련 부처와 ‘협의’하기만 하면 된다. 이때 ‘협의’는 ‘합의’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법무부는 경찰의 상급기관인 행정안전부의 의견을 들어야 하지만 ‘합의’해야 할 의무는 없다. 경찰 주장이 반영되지 않은 채 검찰 상급기관인 법무부의 의지대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대통령령으로 하는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대통령령으로 할 경우에는 국무회의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국무회의 심사를 받으려면 법무부 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은 ‘합의’를 해야 한다. 단순한 ‘협의’로는 안 된다. 경찰 주장을 반영해야 하는 강제력이 생기는 것이므로, 사실상 경찰이 검찰과 대등한 지위로 격상된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경찰에 유리한 방향으로 개정됐다.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분산시킴으로써 검찰 권력을 견제하는 것은 검찰개혁을 통한 사법개혁의 중요한 부분으로 꼽혀 왔다. 이번 개정안 통과로 검찰 권력 분산의 계기가 마련됐다. 그러나 이것을 진정한 검찰개혁으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해 유보적인 견해도 있다. 이창수 새사회연대 대표는 “이번 형소법 개정은 검찰개혁과 별 상관이 없다. 검찰의 권한을 빼앗았다고 보기도 어렵다. 경찰 통제방안도 같이 이야기해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말이다.

[사회]경찰 상부 견제해야 수사권이 바로 선다

“경찰이 수사에서 주체성을 인정받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몇 가지 생각할 문제가 있다. 먼저 형사소송법에 ‘모든 수사에 관해 검사 지휘’를 받도록 규정함으로써, 오히려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분명하게 해준 측면이 있다. 다음으로 사실상 현재 수사의 90%는 경찰이 하고 있는데, 그 영역에서는 검찰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드물다. 개정안에서 경찰의 수사 개시·진행권을 인정한 건 현재의 수사 현실을 명문화한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시행령이 어떻게 짜여지느냐를 좀더 지켜봐야 한다. 또 다른 쟁점은 경찰을 어떻게 통제하느냐는 문제다. 수사지휘권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할 경우 검·경 중 어느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결정되든 국회가 관여할 여지는 없다. 검·경이 특정 사안에 대해 같은 입장을 취할 경우엔 수사권을 쪼갠 의미가 사라진다.”

한 일선 경찰은 “경찰 입장에서는 현실적인 변화가 없다. 그냥 말만 그럴 듯한 것”이라며 “이미 수사를 하고 있는데 수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말하는 건 지하철을 아무 문제 없이 잘 타고 있는 사람에게 지하철을 탈 권리를 주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하위직 경찰인 그는 경찰 내부 민주화의 필요성도 거론했다. “경찰조직은 검찰보다 더 위계적이다. 어떤 비판도 허용되지 않는다. 경찰 수뇌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중징계를 받은 사람들이 있지 않았나. 경찰은 간부들의 숫자도 굉장히 많은데 수사권을 가져올 경우 윗선의 청탁 수사 압력을 어떻게 거부하느냐가 문제다.”

자치경찰제 도입으로 권력 분산해야
경찰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방안으로 거론돼 왔던 건 자치경찰제의 도입이다. 자치경찰제 도입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2003년 2월 참여정부는 국정과제로 “일부 민생치안범죄에 한해 검찰의 사법적 통제를 받는 전제 하에서 경찰 수사의 독자성을 인정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는데, 한 가지 조건이 더 붙어 있었다. “실질적인 자치경찰제 도입을 통한 권한 분산”이 그것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제 도입이 사법개혁이라는 맥락 안에서 함께 검토됐던 것이다. 자치경찰제는 2008년 10월 현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됐지만, 이전 정부들에서와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경찰 통제방안의 하나로 경찰노조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해 9월 경찰노조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킨 문성호 한국자치경찰연구소장은 “국가기관의 수사권은 검찰의 것이든 경찰의 것이든 지금보다 축소해야 한다”며 “경찰에 노조가 있어야 경찰 민주화가 가능하고, 국민 인권보호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위직 경찰 모임인 대한민국 무궁화클럽 전경수 회장은 “경찰이 수사권 독립을 하더라도 경찰 상부 권력을 견제하지 못하면 국민을 위한 경찰이 될 수 없다”며 “경찰노조추진위원회와는 별개로 경찰노조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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