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항구의 시간은 아다지오로 흐른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좌충우돌 해외방랑기 ‘알래스카 크루즈’(하)

알래스카 인사이드 패시지를 다니는 여객선 타쿠호 선실의 2층 침대가 편한 것은 아니었다. ‘최소 공간에 최대 적재’를 목표로 만들어진 세상의 모든 배 시설물답게 누우면 정수리와 발바닥이 양쪽 벽에 짝 하고 달라붙었다. 나보다 한 뼘쯤 긴 북극곰(여행 동행자)은 발목을 잘라내거나 무릎을 세워야 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자세로 잤다. 계속 잤다. 잘 수밖에 없었다. 원인을 찾으려면 72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플로리다를 강타한 태풍 메이의 영향이 캐나다는 건너뛰고 알래스카에 미쳤기 때문이었다.

알래스카 인사이드 패시지 항해 중에 만나게 되는 온대 우림의 풍경.

알래스카 인사이드 패시지 항해 중에 만나게 되는 온대 우림의 풍경.

미국 시애틀 다코마 공항을 정시에 출발한 우리의 알래스카 항공 69편은 케치칸 상륙을 20분 남겨놓고 시치미라도 잡아떼듯 “운항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케치칸 대신 싯카로 갑니다”라며 방향을 틀었다.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내리는 싯카 공항에 망연히 서 있던 비행기는 다시 케치칸으로 향했으나 시간당 100㎜의 폭우에 넋을 잃은 케치칸 공항은 상륙 따윈 허가하지 않았다. 

우리의 비행기는 공중에서 맴만 돌다 결국 알래스카의 주도 주노로 향했다. 항공사에서 끊어주는 호텔에서 2시간 20분을 자고, 새벽 비행기로 케치칸으로 날아와 2시간을 자다 나가 놀았다. 그날 밤 다시 3시간을 자고 새벽 배를 타서, 배 탐험에 정신을 팔다 다시 4시간을 자고, 일어나 점심을 먹고 다시 2시간을 잤다.

3시간씩 몰아 잠자기를 몇 번 했더니, 그렇잖아도 시차 때문에 없는 정신이 시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오늘이 어제인지, 어제가 내일인지 모를 지경이 됐다. 1년의 3개월은 낮만, 또 3개월은 밤만 계속돼 시간 개념이 우리의 그것과 다르다는 에스키모의 사정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 비몽사몽의 와중에서도 기항지에 도착했다는 뱃고동은 어김없이 울렸다. 우리는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두르고 몽유병 환자처럼 비틀거리며 갑판으로 나갔다. 케치칸에서 싯카까지 23시간의 항해 동안 타쿠호는 세 번 기항지에 들른다. 차례로 랭겔(Wragell), 피터스버그(Petersburg), 케이크(Kake) 라는 조그만 마을이었다.

크루즈는 다운타운에, 여객선은 교외터미널행
똑같이 알래스카 인사이드 패시지를 항해하고, 같은 기항지에 들르지만 초호화 크루즈와 대중 여객선 사이엔 큰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 크루즈는 다운타운에 정박하지만, 여객선은 교외 터미널에 댄다. 말하자면 같은 서울이더라도 크루즈는 여의나루에 서고 여객선은 암사 나루에 서는 식이다. 가이드북의 지도를 암만 뒤져도 크루즈 부두와 다운타운만 나오지, 우리가 서 있는 페리 터미널은 ‘화살표’로만 표시돼 있다. 1.5㎞나 2㎞는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기항지 체류는 짧으면 30분, 길면 1시간이었다. 우리는 터미널 간판 앞에서 브이자를 그리며 인증샷을 찍고, 저 먼 곳의 다운타운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다, 시계를 보고 돌아오기를 되풀이했다. 이룰 수 없는 것이 명백한 목표일지언정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인간 본연의 숭고한 자세를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기항지 투어’라기보다는 ‘터미널 투어’였다.

다행히 랭겔과 피터스버그에는 터미널 주변으로 집도, 사람도 있었다. 다시 말해, 케이크에는 터미널 주변에 아무 것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원두막 같은 대합실과 ‘케이크 원주민 투어(Kake Native Tours)’라는 스티커가 붙은 버려진 버스 한 대가 전부였다. 틀링깃 인디언 중에서도 케이크 부족인 이 마을 사람들도 관광산업에 뛰어들긴 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서너 걸음을 더 걸어가 못 쓰는 주유소로 보이는 ‘케이크 원주민 정유’ 앞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왔다. 그래도 모든 것이 ‘스타벅스’ ‘월마트’ 아니면 ‘쉘’인 미국에서 원주민 여행사나 주유소는 의미 있는 시도가 아니냐며, 대규모 독점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케이크의 현재와 그리고 미래를 기원했다.

알래스카 마린 하이웨이 소속으로 인사이드 패시지를 항해하는 타쿠 호의 모습.

알래스카 마린 하이웨이 소속으로 인사이드 패시지를 항해하는 타쿠 호의 모습.

한편 랭겔에서는 열심히 걸어 두 블록이나 떨어진 도서관까지 다녀왔다. 집집마다 마당에 색색깔 꽃과 풀을 가꾸는 예쁜 마을이었다. 부두로 돌아오니 아홉 살쯤 돼 보이는 소녀가 조약돌 같은 조그만 돌을 펼쳐놓고 팔고 있었다. 돌에는 자줏빛 구슬 같은 게 박혀 있었는데,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랭겔의 석류석’이라고 했다. 아프리카 킴벌리의 다이아몬드는 들어봤어도 랭겔의 석류석은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어른들은 캘 수가 없고, 아이들만 캐서 조금씩 팔 수 있게 돼 있다고 했다. 구슬이 반쯤 묻혀 있는 돌을 하나 샀다. ‘돌 사세요’라는 말 한 마디도 못하던 아이가 수줍어하며 몸을 배배 꼬았다.

러시아식 이름을 가진 미국령, 피터스버그
피터스버그는 지명은 러시아식, 공식적으로는 미국령, 실제로는 노르웨이인들이 모여 사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마을이었다. 크기로는 케치칸만 못 하지만 목재업이 발달해 형편은 훨씬 낫다고 했다. 그래서 케치칸처럼 관광산업에 ‘올 인’할 필요가 없단다. 지역 안내 브로셔에 나올 법한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이유는, 피터스버그에 도착하자마자 장대비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터미널 의자에 앉아 브로셔를 꼼꼼하게 읽었다.

피터스버그의 역사와 문화와 전통에 대해 다 알게 됐는데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다리를 박자 맞춰 흔들며 앉아 있는 우리만큼이나 승무원들도 심심해 보였다. 요리사처럼 흰 옷을 입은 바 승무원은 자동차가 주차돼 있는 카 데크에서 농구를 했다. 어젯밤 형광 막대를 흔들며 신분증을 검사하던 승무원은 어디서 구해 왔는지 종이컵에 흙을 담고 풀 한 포기를 심고 있었다. 키울 모양인가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새벽 빈 식당의 승무원은 몇 번을 망설이다 다가와 볼이 빨개진 채로 “니혼진 데스까”라고 물어봤었다. 나는 정말이지 다정하게 대해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일본어로 ‘아닙니다’가 “이에”인지 “아리마스”인지 자꾸만 헷갈려 결국은 “노 재패니즈”라고 손을 흔들고 말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배를 타고, 모든 기항지에 30분씩, 1시간씩 들르는 저들에게 시간은 아다지오의 속도로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밤엔 전망 라운지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양 옆 외에 정면에도 창문이 나 있는 조그만 라운지였다. 오늘의 기항지를 모두 들른 배는 푸르스름하게 어둠이 깔리는 바다로 천천히 몸을 밀고 나아갔다. 쌍안경으로 내다본 바다의 끝에는 산들이 있었고, 산들의 머리엔 어김없이 만년설이 덮여 있었다. 저것이 구름인가, 빙산인가, 혹은 흘러내린 빙하인가. 이어폰에서는 아이슬란드 밴드 시규어 로스의 ‘잇츠 유(It’s You)’가 무한반복 중이었다. 낮도 밤도 아닌 시간대에서, 눈 앞에선 빙하와 구름이, 귓전에선 바람소리 같은 음악이 영원히 반복되고 있었다.

머리를 기대는데, 북극곰이 어깨를 툭툭 치더니 창 밖을 가리켰다. 저 멀리 까마득한 끝에 세 개의 점이 보였다. 바다사자나 바다새가 아니다. 저 정도면 고래다. 창에 눈을 갖다 댔더니 검은 지느러미가 우뚝해도 보였다.

나는 지금도 그들이 범고래 오르카라고 믿고 있다. 이것이 세계의 끝에서 내가 고래를 본 이야기다.

<글·사진 최명애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glaukus@kyunghyang.com>

최명애의 북위66.5도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