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99발의 오인사격, 위험한 해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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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상 안보 긴장 높아 발생한 일… 재발 막기 위해 남북관계 개선이 근본 대책

“한국 측이 유효한 조치를 취해 비슷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를 바란다.”

지난 6월 17일 새벽 4시. 인천시 강화군 교동도에서 해병대 초병들이 아시아나 민항기를 북한 공군기로 잘못 인식하고 99발의 경고사격을 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중국 정부는 위와 같은 우려를 표명했다. 중국 외교부의 훙레이(洪磊) 대변인은 6월 21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은 이미 외교경로를 통해 한국 측에 우려를 표명했다”면서 “한국 영공을 지나는 민항기와 승객의 안전을 보장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6월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중진의원 회의에서 이경재 의원이 6월 17일 발생한 해병대의 ‘민항기 오인사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6월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중진의원 회의에서 이경재 의원이 6월 17일 발생한 해병대의 ‘민항기 오인사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중국 반응 과민하다고 할 수 없어
중국 언론들 또한 이번 오인사격을 연달아 보도하고 있다. 인민일보의 국제문제전문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여객기 총격사건이 한국의 체면을 떨어뜨렸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남북대치가 초목마저도 모두 적의 군대로 보이게 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언론 봉황망(鳳凰網)도 만약 항공기가 총을 맞고 격추됐다면 “제2의 천안함 사건이 됐을지도 모른다”며 비아냥조의 기사를 전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중국 언론의 보도와 중국 정부의 우려 표명이 과민한 반응이 아니냐고 지적한다. 당시 해병대원이 경고사격으로 사용한 K-2 소총의 사거리를 생각해볼 때 비행기 승객이 피해를 볼 가능성은 없다는 이유에서다. 민항기는 13㎞ 떨어진 곳에서 1㎞ 고도로 비행하고 있었고, K-2 소총의 사정거리는 최대 3.3㎞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기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이는 지나치게 우리나라 중심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서해상에 안보 민감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서해안 안보는 중국의 중요한 관심사항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군사 긴장도가 높은 지대에서는 작은 오해와 오인들이 큰 사건으로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며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이 민항기 오인사격과 관련해 정부 차원에서 안보적 관심을 표명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만약 오인사격한 비행기가 국내 민항기가 아니라 중국 민항기였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김 교수는 “국내 민항기가 아닌 중국 민항기에 오인사격을 했다면 심각한 외교문제로 번졌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선조치 후보고’ 체제 오인사격 가능성 높여
민항기에 대한 경고사격은 국제조약에도 저촉될 수도 있다. 민항기에 대해 군사적 공격을 금지하는 것은 보편적인 국제 규칙이다. 국제민간항공기구(International Civil Aviation Organization·ICAO)는 세계 항공업계의 정책과 질서를 총괄하는 기구로 유엔 산하 전문기구다. 우리나라와 중국 모두 당사국으로 ICAO 규정에 의거해 민항기의 안전 운항과 보장에 대한 의무가 적용된다. 국제법 전문가인 김현수 인하대 법학과 교수는 “우리와 중국 모두 ICAO 가입국인 상황에서 중국이 이번 사건으로 자국의 민항기가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우리에게 안전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오인사격이 상대국 민항기에 실질적인 피해를 입혔을 경우에는 ICAO 규정에 따라 국제적 소송으로까지 비화될 수 있다.

6월 23일 김관진 국방장관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남북관계발전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 민주당 신학용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며 ‘민항기 경고사격’과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6월 23일 김관진 국방장관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남북관계발전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 민주당 신학용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며 ‘민항기 경고사격’과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민항기를 적기로 오인할 경우 심각한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은 역사적 사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83년 소련 전투기는 KAL 007기를 미국 첩보기로 오인해 공격, 승객과 승무원 269명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1988년 이란 민간 항공기를 적기로 오인한 미 공군의 미사일 발사로 당시 민항기에 탑승했던 승객, 승무원 290명 전원이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모두 냉전시대에 군사적 적대감이 강화된 상태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그러나 군과 정부는 이번 민항기 오인사격 사건을 초병의 착각에 의한 단순한 ‘해프닝’으로 일단락하려는 분위기다. 합참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 대해 “초병들은 단지 착각을 했을 뿐이지 교육받은 대로 조치한 것이고, 만약에 그것이 적기였다면 매우 잘한 조치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공격을 행하는 방공무기는 해당 물체가 적기인지, 민항기인지를 식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모두 갖추고 있어 민항기가 실제로 공격을 받을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경고사격 당시 방공무기를 다루는 관제소 등에서는 해당 물체가 적기가 아니라 민항기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경고사격이 공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었다는 것이다.

외교부 또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본다. 이 사건을 다루고 있는 외교부 평화체제과 관계자는 “아무래도 국내 언론에서 많이 다뤄지다보니 중국 쪽에서도 관심을 표명한 것”이라며 “통상적인 외교 채널을 통해서 중국 측에 사건 경위와 후속조치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심각한 상황으로 번지지 않을 것이므로 크게 문제될 것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다. 김기정 교수는 “남북관계가 지나치게 긴장된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인 만큼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관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도 “최대한 남북관계의 긴장을 완화하고 관리하는 것이 제일 근본적인 조치”라며 “남북한 포격사건 이후 채택된 ‘선조치 후보고’개념도 완화하거나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남북한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선조치 후보고’ 체제만을 강조할 경우 초병이 느낄 압박과 긴장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사람이 긴장을 많이 하면 할수록 실수할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지나친 긴장상황에서 오인사격의 가능성도 커진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인간이 오인할 수 있듯이 기계도 얼마든지 오작동할 수 있다”며 “첨단기계나 시스템도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민항기와 적기를 식별하는 시스템으로 방공무기를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는 국방부의 설명으로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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