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문난 잔치’로 끝난 검찰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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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수사권 조정, 두 기관 신경전에 검찰 권력 분산 목적은 증발

국무총리실은 지난 6월 20일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내놓았다. 형사소송법 196조를 손질했다.

조정안을 보면, 종전처럼 경찰 수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유지하면서도 경찰이 자체적으로 수사개시권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국무총리실의 조정안 발표 이후에도 경찰의 수사개시권 및 검찰의 수사지휘권 행사 범위를 두고 검·경 사이의 이견과 불만이 표출됐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수사권 조정 논란이 마무리됐다. 그러나 두 기관의 상호 신경전이 비등점을 향해 가열되는 동안 수사권 조정의 본래 목적은 증발했다.

6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조현오 경찰청장(위)이 회의가 끝나자 이 귀남 법무부 장관 뒤로 빠져나오고 있다. |박민규 기자

6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조현오 경찰청장(위)이 회의가 끝나자 이 귀남 법무부 장관 뒤로 빠져나오고 있다. |박민규 기자

사법개혁의 핵심은 검찰개혁이다. 검찰개혁은 검찰의 권력을 분산함으로써 가능하다. 수사권 조정은 검찰의 권력 분산을 위한 도구다. 참여정부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자문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낸 김희수 변호사는 “수사권 조정의 핵심은 검찰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인데, 이번 조정안은 검찰이 경찰에 양보했다는 인상만 주었을 뿐 애초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해방 직후 경찰은 검찰에 독립적 지위 누려
우리 사법제도의 역사를 살펴보면, 검찰 권력 분산을 목표로 하는 수사권 조정 논의에는 역설적인 데가 있다. 해방 직후 미군정 통치 기간의 형사사법개혁 논의과정에서는 오히려 상황이 반대였기 때문이다.

해방 직후 경찰은 검찰과 심각하게 대립하면서도 검찰에 대해 상당히 독립적인 지위를 누렸다. 1946년에는 전남지역 경찰이 미군정청의 비호 아래 전남지검장을 구속한 사건도 있었다. 경찰은 수사권에 어떤 제약도 받지 않았다. 문준영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 교수는 <법원과 검찰의 탄생>에서 “(이같은 상황은) 이후 형사사법개혁 논의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경찰이 검찰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경찰의 인권유린을 조장한다고 인식되었기 때문에, 검사의 통제력을 회복시키는 것, 사법경찰기구를 검찰에 직속시키는 것이 인권유린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부각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기에는 오히려 검찰이 “경찰의 행태에 대한 비난여론을 방패삼아 수사지휘권 확보를 위해 집요하게 노력했다.” 현행법상 유일한 수사 주체이자 기소권을 독점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요즘 검찰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검찰은 국가정보기관과 군대를 핵심적인 통치수단으로 삼았던 군부독재가 청산된 이후 가장 강력한 권력기관으로 떠올랐다. 올해 4월 13일 참여연대가 발표한 ‘이명박 정부 3년 검찰 보고서’를 보자. 보고서에서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 정부 3년 동안 검찰의 행태를 ‘무원칙의 원칙’ ‘상대는 가혹하게, 우리 편은 관대하게’ ‘비상식적 법적용’ ‘바닥으로 떨어진 직업윤리’ 등 네 가지 특징으로 요약했다.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수사는 실무자 3명을 기소하는 것으로 끝났다. ‘꼬리자르기’다. 반면 대통령의 사돈 재벌인 효성그룹 비자금 조성 사건의 경우, 2007년 7월에 비자금 조성의혹의 존재를 알았으면서도 수사하지 않고 있다가 2009년 9월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주요 혐의에 대해 불기소처분을 했다. 정부 정책을 비판한 당사자들에 대해서는 법적 근거가 미약함에도 무리수를 뒀다. MBC ‘PD수첩’ 제작진 기소, 정연주 전 KBS 사장에 대한 기소,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에 대한 기소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세 사건에 대해 법원은 모두 무죄 판결을 내렸다. 검사가 연루된 사건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2008년 서울중앙지검 부부장 검사로 재직하던 정모 검사가 한 건설업자로부터 그랜저 승용차를 받은 사건에 대해 검찰은 2010년 7월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그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이 나온 다음에야 재수사를 통해 정모 검사를 구소기소했다.

[사회]‘소문난 잔치’로 끝난 검찰개혁

검찰이 집중적으로 비판받으면서 경찰은 상대적으로 비판여론의 탄착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시민의 권익 향상에 기여한 바가 적기로는 경찰 또한 검찰과 사정이 다르지 않다. 지난해 국가인권위가 발표한 ‘2009 국가인권위원회 연간보고서’를 보자. 2009년 5월부터 8월까지 쌍용차 노조원들은 공장 점거농성을 벌였다. 보고서는 식수·식량·의약품·의료진 차단, 최루액 다량 살포, 전기충격기 사용, 진압 종료 후 항거불능 상태인 조합원들에 대한 폭행 등을 경찰의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례로 적시했다.

앞서 2009년 1월 용산참사사건 당시 경찰은 경찰의 무리한 진압작전이 경찰을 포함한 6명의 사망자를 낳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8년 촛불집회 과정에서도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인한 인권침해 사례가 빈발했다. 국제앰네스티는 2008년 10월 보고서를 통해 “한국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겠다는 결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과도한 무력을 사용했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경찰의 무력사용 실태를 재검토하라”고 지적했다.

검·경 상호 견제해야 권한남용 예방
경찰은 내부 비판에 대해서는 엄격한 징계로 대응했다. 채수창 강북경찰서장은 지난해 6월 당시 강희락 경찰청장과 조현오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의 실적주의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는 이유로 파면됐다. 그러나 당시 채 서장 발언의 배경이 됐던 양천서 고문수사 책임자는 정직 1개월로 그쳤다. 법원은 달리 판단했다. 지난 6월 16일 서울행정법원은 채 서장이 낸 파면처분 취소 소송에서 ‘징계사유임은 인정하나 파면은 지나치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2009년 5월 당시 안산 상록경찰서에 근무하던 박윤근 경사도 조현오 당시 서울경찰청장의 실적주의를 비판하는 글들을 경찰 내부 게시판에 올렸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고 파면처분을 받았다. 박윤근 경사는 2011년 2월 대법원에서 복직 판결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의 수사권을 법적으로 현실화거나 경찰에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한다고 해서 시민들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 것일까. 김희수 변호사는 “경찰을 비호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며 “다만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검찰과 경찰이 서로 견제하도록 해야만 검·경의 인권침해나 권한남용을 예방할 수 있다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출범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는 6월 22일 활동을 마쳤다. 중수부 폐지와 특수청 설치는 검찰 반발에 밀려 합의하지 못했다.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견제하기 위해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기소심사위원회와 검찰시민위원회 설치 문제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사법개혁 촉구 인권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는 “사개특위는 정작 사법개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검찰개혁에 대해서는 아무런 소득이 없이 마무리했다”고 평가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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