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사는 문제가 개인 책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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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
10명이 의자 8개를 두고 다툰다. 의자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가 음악이 멈추는 순간, 8명은 앉고 2명은 서 있어야 하는 신세. 의자 뺏기 게임이다. 먼저 앉지 못한 사람에게 관심을 돌려보자. 왜 그 사람이 앉을 수 없었는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자기책임론’이다. 이 경우 모든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는 ‘본인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며 ‘본인의 책임’이다. 해결책은 본인이 더 노력하는 것밖에 없다. 반대로 의자의 개수에 주목해보자. 의자 수를 늘릴 수는 없다. 8개밖에 없다. 의자가 부족한 이상, 최경주 선수나 박지성 선수를 데려와도 반드시 2명은 앉을 수가 없다. 사회구조에 책임을 묻는 입장이다. 의자에 앉지 못한 것은 ‘본인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의자 개수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해결책은 의자의 개수를 늘리는 것이다.

<덤벼라, 빈곤> 유아사 마코토 지음·김은진 옮김·우석훈 해제·찰리북 펴냄

<덤벼라, 빈곤> 유아사 마코토 지음·김은진 옮김·우석훈 해제·찰리북 펴냄

도쿄대학교 출신으로 일본의 사회문제를 예리하게 읽어내는 이론가이자 현장에서 노숙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빈민운동가인 유아사 마코토가 일본 사회의 빈곤에 맞섰다. 빈곤의 ‘자기책임론’에 대들었다. <덤벼라, 빈곤>이다. 자기책임론을 유형화했다. ‘무슨 소리야, 열심히 하면 일자리 정도는 잡을 수 있다고.’ 자꾸 고르니까 일을 찾지 못하는 것이고, 노력하지 않으니까 빈곤한 것이야.(유형1) 헝그리 정신이 없다. 그저 뜨뜻미지근하다. 

옛날에는 다들 가난해도 열심히 살았는데, 요새 젊은이들은 누가 어떻게든 도와주겠지 하고 안이하게 서 있다. 나약하니까 성공할 수 없다.(유형2)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을 쐬어가며 24시간 원자로 청소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가다보면 아이들은 소외감을 느낀다. 결국 가족이 삐걱거린다. 그래도 죽을 힘을 다하면 해결된다고?(유형3) 한쪽은 먹고살기 힘든데 다른 한쪽은 잘 먹고 잘 산다. ‘불공평하다. 차라리 모두 다 못살면 좋겠다.’ 마지못해 따름으로써 불만만 쌓아두는 규칙은 바꿀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괜히 겁먹고 바꿀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리곤 불만 타령이다.(유형4) 생계가 곤란한 사람이 살기 힘든 것은 시쳇말로 ‘안 봐도 비디오’다. 그런데 나라는 빚투성이고 기업들은 외국으로 나가겠단다. 어렵다곤 하지만 들여다보니 먹을 게 없어서 죽을 만큼 절박해 보이진 않는다. 나라나 이웃도 여유가 없으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네.’(유형5)

<계층이동의 사다리> 루비 페인 지음·김우열 옮김·황금사자 펴냄

<계층이동의 사다리> 루비 페인 지음·김우열 옮김·황금사자 펴냄

자기책임론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다. 애당초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생활을 제대로 꾸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잘 나가는 사람들이 내던지는 논리다. 저자는 이런 논리와 밝은 미래를 향해 “피하지 않겠다, 덤벼라 빈곤아”라고 함께 외칠 것을 제안했다.

아하! 프로세스(aha! Process)의 설립자로 빈곤층 아이들의 삶과 교육에 헌신하고 있는 루비 페인이 ‘빈곤을 이해하기 위한 프레임워크(원제 A Framework for Understanding Poverty)’를 제안했다. 우리 책은 <계층이동의 사다리>라는 제목을 달았다. 자기책임론의 입장에서라면 이런 비판이 가능할까. 서문에서 방어와 함께 책의 논지를 제시했다. “이들은 사회적 결정론을 이론적 토대로 받아들입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빈곤층의 모든 문제가 사회 체계와 착취의 모순에서 양산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회 체계 때문에 발생하는 장벽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장벽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서로 다른 사회·경제적 환경에서 생겨나는 여러 계층의 사고 방식과 마음가짐을 인지적으로 다룹니다.”

사람들이 빈곤층에서 벗어나게 되는 데는 네 가지 요인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 첫째 계속 머무르기에는 너무 고통스럽거나, 둘째 목표나 비전이 새롭게 생기거나, 셋째 자신을 이끌어줄 사람을 만나거나, 넷째 특별한 재능 또는 기술을 얻게 되는 경우 등이다. 그렇다면 이런 원인에 근거한 해법은 ‘교육과 인간관계’일 수밖에 없다. 철저히 인지적 관점이다. 스스로 이 책의 대상을 빈곤층을 지원하고 가르치는 교사, 그리고 빈곤층과 함께 일하는 비즈니스맨과 복지가 등이라 적었다. 그저 양극화라는 현상론에 머물 일이 아니다. 절대빈곤층은 일본과 미국의 문제가 아니다.

최재천<변호사> cjc4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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