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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열차가 양저우로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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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번째 중국 방문 1주일간 6000여㎞ 답파 전세계 이목 집중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5월 20일부터 26일까지 중국을 방문했다. 김정일이 후계자 시절인 1983년 단독 방중한 이후 여덟 번째 중국 방문이다. 일주일간 6000여㎞를 답파한 그의 중국 방문은 이번에도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돼, 오히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북·중 양국은 김정일의 특별열차가 26일 귀국길에 오른 이후에야 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했다. 다만 예전 방문과 달리 김정일의 모습은 중국 네티즌들의 카메라폰에 포착돼 웹상에 올라왔고, 중국 정부 역시 그의 방문을 전적으로 비밀에 부치지 않고 필요시 정보를 제한적으로 알리는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아들 대신 부인만 띄웠다?

지난 5월 20일, 9개월 만의 중국 방문길에 나선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헤이룽장성 무단장의 홀리데이인 호텔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20일, 9개월 만의 중국 방문길에 나선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헤이룽장성 무단장의 홀리데이인 호텔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5월 20일 새벽, 특별열차가 남양~투먼 국경을 넘었을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그 열차 안에 탄 사람이 아들 김정은일 것으로 여겼다. ‘김정은 단독 방중설’은 지난해 9월 당대표자회에서 그가 후계자로 부상한 이후 국내 언론에 단골소재가 됐다. 그래서 걸린 ‘집단최면’이었을까, 열차가 넘어갔다고 하니 그것은 곧 ‘김정은의 단독 방중’이 돼버렸다. 열차가 국경을 넘었다는 첫 소식을 오전 9시쯤 타전한 연합뉴스는 그것이 오보임이 확인된 오후 5시30분쯤까지 ‘김정은 방중’이란 제목 아래 43건의 기사를 토해냈다. 이에 따라 국내 석간신문과 방송들은 물론 해외 언론들도 오보 대열에 동참했다. 오보의 진원지는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실세라는 청와대의 모 핵심 관계자로, 그날 새벽 틀린 국정원 보고에 기반해 언론에 말해줬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규형 주중대사가 이날 오전 중국 외교부를 찾아 김정일의 방중임을 확인했지만, 청와대가 오후 늦게까지 이를 정정하지 않은 것은 미스터리다. 이례적으로 김정일의 방중 사실을 확인해준 중국과의 신뢰관계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도 자주 등장했던 김정은의 이름은 그 후 일주일간 종적을 감췄다. 대신 그 자리를 메운 인물은 김정일의 네 번째 부인으로 알려진 ‘김옥’이란 여성이다. 5월 24일 김정일이 장쑤성 난징의 팬더전자(熊猫電子)를 방문할 때 그가 내린 리무진 반대편 문으로 연두색 재킷을 입은 여성이 내리는 모습이 중국 네티즌에게 포착된 것. 이 모습은 중국판 유튜브인 ‘여우쿠(YOUKU)’에 공개돼 전 세계에 퍼졌다. 이 여성은 김옥으로 추정됐지만, 다음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정상간 만찬 연회에서 중국 외교의 사령탑인 다이빙궈 국무위원과 양제츠 외교부장 사이에 앉은 모습이 중국 관영방송 CCTV에 잡히면서 심증은 굳어졌다. 김옥은 1980년대 초부터 김정일의 비서 역할을 해오다 2004년 셋째부인 고영희의 사망을 전후해 부인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은 이번 방중에 따라가지 않았다는 게 정설이다. 김정은 대신 김정일이 중국을 찾은 것은 설명을 요한다. 북한은 최근 김정은 후계세습과 관련, 속도조절을 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김정일의 건강이 비교적 호전됐기 때문이다. “물론 김정은이 후계자 위치를 점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진 않는다. 다만 공식 직함이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일 뿐이고 그가 중국에 가면 상견례의 의미를 갖는데, 북한이 지금 그렇게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려면 김정일이 전력을 다해 움직이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이봉조 통일차관)

김정일의 열차가 첫날 무단장, 창춘에 정차한 뒤 30시간을 내리달려 양저우까지 간 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여정이었다. 동북3성에서 방문한 곳은 무단장의 항일유적지와 창춘의 자동차공장이 전부다. 양저우까지 갈 거면서 동북3성은 왜 그렇게 우회했을까. 북·중 우호를 상징하는 선대의 유산 답사와 개혁개방 메시지를 적절히 섞었다는 게 최선의 설명이다.

우선 김정일의 열차는 국경 통과 이전에 북·중 경협의 현장인 나진·선봉을 지나간 듯하다. 주요 측근들과 함께 경협 현장에서 시작해 김일성 주석의 항일유적을 답사하고, 이어 자동차공장을 시찰했다. 이후 30시간을 달려 도착한 양저우는 장쩌민 전 중국공산당 서기의 고향이다. 장쩌민이 비록 퇴장한 권력이지만 상하이방의 대부로서 중국 공산당 상무위원의 3분의 2가 장쩌민 계열이다. 양저우·난징은 동구권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한·소 수교로 북한이 고립됐을 때인 1991년 장쩌민과 김일성이 만난 곳이다. 그로부터 20년 뒤 북한이 처한 상황은 남북관계 악화와 미·일의 대북제재 등으로 닮은 구석이 있다. 김정일은 어려웠던 시절 북·중 우호의 현장을 찾은 것이다. 게다가 장쩌민은 현재 암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이 불원천리 달려간 것이 장쩌민을 얼마나 감동시켰을지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중국이나 북한 측의 발표 어디에도 김정일이 장쩌민을 만난 사실을 공개하지 않아 두 사람이 실제로 만났는지는 아직도 의문부호가 붙어있다.

25일 낮 원자바오 총리가 별도로 김정일의 숙소인 댜오위타이를 찾았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원자바오는 건강이 넘치는 김정일을 다시 만나 기쁘게 생각한다며 김정일의 이번 방문길이 20년 전 김일성의 여정과 같다고 말했다. 원자바오가 “1991년 10월 김일성 주석의 장쑤성 방문을 동행했던 일이 눈앞에 생생하다고 회고했다”는 대목에 이르면 북측이 이번 방문에서 의도한 바가 보인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김정일은 이번에 무단장, 창춘, 양저우, 난징, 베이징에서 공업, 농업, 과학기술, 상업, 민생 관련 사안 등을 시찰했다. 무단장의 하이린(海林) 농장에서는 농촌의 산업화와 도시화 건설 상황을 봤고, 농장 노동자의 가정을 방문하기도 했다. 또 창춘에서는 창동베이(長東北) 중심지 계획건설 전람관을 둘러보았고, 이치(一氣) 자동차회사와 지에팡(解放) 자동차회사의 승용차, 트럭 생산라인을 참관하고, 조립공정, 생산가공, 완성차 성능 등을 두루 살펴봤다. 양저우에서는 즈구(智谷) 관계자로부터 전자도서, 스마트그리드 등 첨단기술 연구·개발에 대해 브리핑을 받고, 대형마트인 화룬쑤궈(華潤蘇果)를 찾았다. 난징에서는 팬더전자의 최신 액정 전자제품 생산라인을, 베이징 중관춘에서는 정보통신업체인 선저우수마(神州數碼)의 기업창업센터와 R&D 센터를 돌아봤다. 김정일 이번에 둘러본 산업시설들은 북한이 나진·선봉과 황금평 등에서 주력할 산업들로 알려져있다.

요컨대 “가는 곳마다 김일성 유적지를 방문하는 것은 북·중 전통적 유대라는 프레임 내에 북·중 경제협력을 위치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분석이 그의 이번 방중 코스를 집약한다.

김정일이 1년 새 세 번의 중국 방문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뒀는지 단언하긴 어렵다. 향후 압록강·두만강 접경지역에서의 경협 진전과 북한 내에서의 개혁개방 조치가 말해줄 것 같다. 핵문제를 포함한 동북아 정세도 유동성이 큰 소재여서 예상하기 쉽지 않다. 북·중 정상회담 결과 발표를 보면 누가 들어도 문제삼기 어려운 공자 말씀만 들어 있다. 다만 “쌍방은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고, 6자회담의 재개 등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추구하며, 장애적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 동북아시아지역의 전반적 리익에 부합된다고 인정하면서 이를 위해 의사소통과 조률을 잘해나가자는 데 대해 의견을 같이하였다”는 조선중앙통신 문구를 뜯어보면 실마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남측이 원하는 남북 비핵화 회담 제의에 대해 즉답한 것은 아니지만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의 재개 등 대화’는 남북대화, 북·미대화 등 양자 대화로 해석될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남북대화부터 시작하는 것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대신 ‘장애적 요소들을 제거하기 위해 의사소통과 조율을 잘 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장애적 요소는 남측이 걸어둔 천안함·연평도 사과라는 문턱과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을 유엔 안보리에서 규탄하려는 계획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남측이 말하는 ‘여건 조성’의 반대편에 서 있는 북한판 여건 조성이다. ‘의사소통과 조율’은 앞으로 중국이 한국, 미국 등을 다니며 맡게 될 중재역이 아닐까 싶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식량지원을 검토 중인 미국에도 모종의 역할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손제민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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