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효율 모범생’ 코레일 안전은 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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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신뢰도 추락…인력 감축과 외주화로 정비 인력 문제

2009년 취임한 허준영 코레일 사장은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을 모범적으로 수행한 기관장으로 꼽힌다. 2010년 6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09년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허 사장은 기관장 평가에서 근로복지공단,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한국전력공사 등과 함께 ‘우수’ 등급을 받았다. 기관장 평가는 ‘탁월’ ‘우수’ ‘양호’ ‘보통’ ‘미흡’ ‘아주 미흡’ 등 6개 등급으로 이뤄져 있으며, 2009년도 기관장 평가에서 ‘탁월’ 등급을 받은 기관장은 없었다. 취임한 지 1년 만에 76개 대상 기관장 가운데 최상위 그룹에 속한 것이다.

코레일은 지난 12일 운행편수를 줄이고 차량에 대한 전면 정밀점검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현대로템에서 제작한 KTX산천. |연합뉴스

코레일은 지난 12일 운행편수를 줄이고 차량에 대한 전면 정밀점검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현대로템에서 제작한 KTX산천. |연합뉴스

기관장 평가는 기관장 리더십, 공공기관 선진화(경영효율화, 노사관계), 고유과제로 구분해 각각 20%, 40%, 40%의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공사를 책임진 수장으로서 직무를 충실히 이행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건 좋은 일이다. 문제는 그것이 최근 빈발하고 있는 코레일 사고와 무관하지 않다는 데 있다. 전상용 철도공사노조 교선실장은 “허 사장은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을 코레일에 대단히 압축적으로 적용했다”고 말했다.

코레일은 지난 2008년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에 따라 2012년까지 5115명을 감축함으로써 ‘인력 효율화’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09년 4월 정기이사회에서는 선진화 계획 조기 시행 지침에 따라 감축이 필요한 인원을 일반직 3~6급에서 일괄감축하기로 결정했다. 감축하기로 한 5115명 중 2958명이 시설(989명), 전기(766명), 차량(1203명) 관련 인력이다.

분당선 유지보수 인력 6명뿐
그렇다고 해서 인력 수요가 줄어든 것도 아니다. 코레일이 2009년 4월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코레일은 경의선 복선 전철화, 전라선 복선 전철화, KTX II 신규도입 등을 이유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모두 2165명의 신규인력 충원이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이 중 2009년 신규인력 소요는 632명, 2010년은 980명이다. 반면 코레일은 인력 효율화 지침에 따라 2008년부터 2010년 12월까지 오히려 2134명을 감축했다.

반면 외주 비율은 늘었다. 차량, 시설, 전기분야 외주 비율은 지난 2006년 각기 7.6%, 17.6%, 6.3%였으나, 2009년에는 각기 21.3%, 18.5%, 13.2%로 늘었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이 비율은 2020년까지 각기 28.3%, 59%, 36.4%까지 늘어난다.

코레일은 정비인력 감축 관련 문제제기에 대해 “KTX 정비인력은 2009년 841명에서 2010년 960명으로 119명 늘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전상용 철도노조 교선실장은 “KTX 정비는 고양 차량기지에서 한다. 그곳 인원이 늘어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코레일이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2009년부터 KTX 중정비 기간이 도래했다. 중정비란 쉽게 말해 간단한 보수가 아니라 차량 전체를 뜯어서 보는 것이다. 기존에는 고양 차량기지에 경정비 인력만 있었다. 그런데 중정비 인력은 신규로 확보하지 않았다. 기존 차량사업소에서 일하던 이들을 중정비 인력으로 배치했다. 결과적으로 전체 정비인력은 줄어든 셈이다.”

이같은 인력 감축과 외주 비율 증가는 지난 2008년 10월 발표된 기획재정부의 3차 공공기관 선진화 추진계획에 따른 것이다. 코레일은 이 계획에 따라 경영효율화 대상으로 선정됐다. 계획안은 책임경영체제 강화와 함께 “외부위탁, 구조조정 등을 통한 비용절감 및 신사업 개발 등 수익 증대를 통해 영업수지 적자를 2010년까지 2007년 대비 50% 수준으로 축소하고 2012년부터는 흑자로 전환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수익성이 낮은 비채산역 및 차량사업소 정비, 유지보수업무 외주화 등을 통해 비용 절감”이라고 명시했다.

철도노조 “현장 피로도 한계치”
코레일은 2009년도 기관장 평가가 발표되기 석 달 전인 2010년 3월,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우수사례 워크숍’에서 모범사례로 소개됐다. 허 사장은 ‘노사관계’ 우수사례로 꼽혔다. “노조의 불법파업(2009년11월 26일~12월 3일)에 대응하여 무관용의 원칙을 유지함으로써 법과 원칙에 따른 합리적 노사 관계 구축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허준영 코레일 사장이 지난 2009년 11월 25일 코레일 사옥에서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 박민규 기자

허준영 코레일 사장이 지난 2009년 11월 25일 코레일 사옥에서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 박민규 기자

코레일은 2009년 파업 이후 대체기관사 양성에 몰두했다. 2010년에는 6차례에 걸쳐 철도차량 운전면허 시험 일정을 잡았다. 파업시 대체기관사로 투입할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조치였다. 철도노조에 따르면 코레일은 정비 쪽 인력만이 아니라 타 직종 사업소장 이상도 의무적으로 차출해 두세 달 동안 면허 취득에 필요한 교육을 받고 면허를 따도록 했다. 2010년의 경우, 제1종 전기차량은 400명이 응시해 374명이 면허를 취득했고, 디젤차량은 450명이 응시해 78명이 면허를 땄다. 제2종 전기차량의 경우에는 90명이 응시해 68명이 면허를 땄고, 고속철도차량은 32명이 응시해 32명이 면허를 취득했다. 

지난 4월 29일 원주시 만종역에서 무궁화호 열차가 역 진입 구간에서 시속 90㎞로 들어오다 급정거하면서 승객과 승무원이 다친 사고는 대체기관사가 열차를 운전하다 발생했다. 송승훈 정책실장은 “당시 지역본부 관리자 2명이 대체기관사 견습을 위해 탑승한 채 차량을 운전하고 있었다. 기관사 출신 지도운영과장이 운전 지도를 위해 동승하고 있었으나 열차 운전 현업에서 물러난 지 오래됐고 해당 선로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코레일은 만종역 사고 다음날 운전실무수습 교육을 당분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철도노조는 일련의 사고들이 “몇 년간 진행된 인력감축, 외주 위탁, 검수 주기 조정 등의 정책에 대한 현장의 피로도가 한계치에 이른 결과 발생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코레일은 잇따른 사고에 대한 대책으로 지난 12일 KTX 운행편수를 줄이고 KTX 차량에 대한 정밀점검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코레일의 대책은 KTX와 열차 차량 문제에 집중돼 있다. 그동안 철도노동조합이 사고의 근본적인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해온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에 따른 인력 감축과 업무 외주화에 대한 대책은 담겨 있지 않았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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