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의 결혼식 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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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의 신데렐라를 실제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일까. 영국 왕실의 윌리엄 왕자가 평민 출신의 케이트 미들턴을 아내로 맞이한다는 결혼 이야기에 지구촌이 들썩거린 한 주였다. 영국은 두 사람의 결혼을 전후해 밀려든 관광객과 취재기자들로 한바탕 북새통을 이루며 온 나라가 축제의 나날을 보냈다.

윌리엄과 미들턴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발행한 영국 우표와 뉴질랜드 자치령 나우에의 우표. 나우에 우표는 가운데 천공이 나 있다.

윌리엄과 미들턴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발행한 영국 우표와 뉴질랜드 자치령 나우에의 우표. 나우에 우표는 가운데 천공이 나 있다.

우리 눈으로 보면 영국의 왕실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구시대적 유물이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시대에 왕자니 왕비니 하는 게 조금은 우습게도 보인다. 하지만 서양인들에게 영국의 왕실은 버리고 싶지 않은 전통문화와 같다. 왕실의 이야기 하나 하나에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며 감정의 위로를 받는 모습이다.

영국 왕실의 결혼은 그 자체로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하기도 한다. 웨딩드레스에서 신혼여행까지 신랑 신부의 일거수 일투족은 각종 문화상품이 되어 대중 앞에 다시 태어난다. 그 중 하나가 우표다. 영국은 물론 영연방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는 이번 결혼식을 앞두고 어김없이 두 사람의 얼굴이 들어 있는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그런데 뉴질랜드의 소(小) 자치령 니우에가 발행한 우표가 영국인들의 강한 비난을 받아 우표계에서 화제가 됐다.

대개 이런 종류의 기념우표는 두 사람이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을 넣는 게 보통이다. 니우에에서 낸 우표 역시 두 사람의 약혼식 사진을 가져다 썼으니 다정한 포즈까지는 여느 것과 다를 바 없다. 문제는 이 우표가 한 쌍으로 돼 있지만 손쉽게 둘로 떼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윌리엄과 미들턴의 다정한 사진을 우표 한 장에 넣지 않고 두 장짜리로 나눠놓고, 한가운데 위에서 아래로 천공(우표에서 손으로 쉽게 뗄 수 있도록 구멍을 뚫어놓는 것)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왼쪽의 미들턴 우표는 2.40 뉴질랜드 달러(1883원), 오른쪽 윌리엄 우표는 3.40 뉴질랜드 달러(3638원)로 액면가에 차등을 두기도 했다. 필요에 따라 낱장으로 분리해 사용할 수 있는 커플 분리형인 셈이다.

니우에에서 발행했다고 하지만 실제 도안 및 인쇄를 뉴질랜드 우정에서 담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영국인들은 “무슨 결혼 축하 우표가 그따위냐”며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두 사람이 갈라지기를 바라기라도 한다는 거냐, 그런 암시라도 하고 싶은 게냐”며 격하게 쏘아붙이는 말도 나왔다.

니우에의 해명은 이렇다. 이 우표는 전문수집가들을 겨냥해 제작한 것이므로 실제 편지 부칠 때 사용하기 위해 우표를 낱장으로 쪼개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니우에의 탈라기 총리는 “사람들은 이 우표가 미래의 파경을 시사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왜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왕실의 결혼을 기쁜 마음으로 축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가 결혼했다가 파경에 이른 과거사를 떠올린다면 신중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런 우표가 나온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1981년 찰스와 다이애나가 결혼할 때 호주 우정이 이번 니우에 우표처럼 커플 분리형 우표를 냈다가 큰 비난을 산 적이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우표전문잡지 기븐스 스탬프의 편집장 휴 제프리스는 “의도적으로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우표당국으로서 창피스런 일”이라며 니우에와 뉴질랜드 우정을 함께 비난했다. 니우에는 이 외에도 얼마 전 수집가용 우표시트 커버 안내문에 ‘1982년 6월 21일’이라고 써야 할 윌리엄 왕자의 생일을 ‘5월 21일’로 오기(誤記)를 해 비난을 산 바 있다.

일각에선 이번 윌리엄·미들턴 커플 분리형 우표가 영국 왕실의 인가를 어떻게 받았을까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영연방에선 왕실 관련 우표 디자인을 사전 승인받는 게 관행이기 때문이다. 영국 왕실에서 가타부타 언급하지 않아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니우에가 영국 왕실에 승인용으로 제출한 우표 디자인에는 가운데 천공이 없는 상태 아니었겠느냐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윌리엄과 미들턴이 찰스·다이애나 커플과 달리 행복한 결혼생활을 오래오래 영위한다면 니우에의 ‘실수’ 우표는 다시 입방아에 오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만에 하나 좋지 않은 일이라도 일어나면 모든 비난을 뒤집어쓸 판이다. 남태평양의 작은 자치국가가 우표 하나 잘못 냈다가 영국 왕실의 화목을 진심으로 기원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종탁 경향신문 사회에디터 jt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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