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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사업도 ‘MB식 밀어붙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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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도 무인 정찰기 구매 관련 특정기종 도입 서둘러

고(高)고도 무인정찰기 구매사업을 놓고 ‘MB(이명박)식 밀어붙이기’ 논란이 일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 3월 23일 방위산업추진위원회(이하 방추위)를 열어 고고도 무인정찰기를 정부간 계약 방식으로 2015년까지 구입하는 내용의 고고도 무인정찰기 도입사업 추진 기본전략을 승인했다. 고고도 무인정찰기 도입은 공군의 정보수집 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다. 앞으로 구매계획을 최종 확정하는 단계가 남아있지만, 고고도 무인정찰기로 사실상 글로벌 호크가 결정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전망이다. 글로벌 호크는 1대당 가격이 4840억원을 넘는다.

글로벌 호크 |경향신문

글로벌 호크 |경향신문

이와 관련해 정부가 특정 기종의 구매를 너무 고집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방추위에서 승인한 사업추진 기본전략 내용이 사실상 글로벌 호크 구매계획이나 다름없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원래 사업추진 기본전략은 국외에서 직접 구매를 할 것인지, 국내에서 연구·개발할 것인지, 국내에서 연구·개발을 한다면 그 주체는 누구로 할 것인지 등 사업 초기의 계획을 결정하는 단계다. 하지만 방추위는 사업추진 기본전략을 마련하면서 고고도 무인정찰기 기종으로 글로벌 호크를 명시하고, 구입방식도 정부간 계약으로 특정했다. 통상적인 사업추진 기본전략과는 매우 달랐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한 방추위원은 “그동안 방추위 회의에 계속 참여해 각종 무기도입과 관련한 사업추진 기본전략을 심의·승인해왔지만 이번과 같이 특정 제품과 구입방식을 명시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고고도 무인정찰기로는 글로벌 호크와 글로벌 옵서버의 두 기종이 있다. 둘 다 미국에서 생산한다. 하지만 정부는 글로벌 옵서버에 대해서는 일절 고려하지 않고 있다.

사업추진전략이 사실상 구매계획
글로벌 호크는 성능이 우수하다. 20㎞ 상공에서 지상 30㎝의 물체까지 파악할 수 있다. 탐지거리는 200㎞, 작전반경은 2500㎞에 달한다. 북한 전역 외에 한반도 주변국들까지 정찰할 수 있다.

글로벌 옵서버의 정찰범위는 966㎞이다. 감시 가능한 지역의 넓이는 66만~78만㎢. 최대 7일 동안 쉬지 않고 정찰 비행할 수 있다.

글로벌 호크는 전 세계를 작전개념으로 둬 대당 가격과 운용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 성능이 우수하다. 글로벌 옵서버는 한정된 지역에서 작전하도록 돼 있어 가격과 운용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일부 국회 국방위 위원과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글로벌 호크와 글로벌 옵서버를 함께 구매대상으로 놓고 작전개념, 경제성 등을 고려해 유리한 기종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협상력을 키우기 위해 경쟁입찰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된다.

고고도 무인정찰기 사업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 사업은 참여정부 때인 2003년 6월 ‘국방개혁2020’에 따라 합참에서 수립됐고, 2005년 6월 글로벌 호크 판매를 미국에 요청했다. 미국 측은 전략물자 반출규제 등의 이유로 거절했다. 당시 윤광웅 국방장관 등은 미국 측에 끈질기게 판매를 요청했으며, 마침내 미국은 2007년 11월 글로벌 호크를 판매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에는 고고도 무인정찰기로 글로벌 호크만 존재했으며, 글로벌 옵서버는 그 이후에 개발됐다.

[정치]국방사업도 ‘MB식 밀어붙이기’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 4월 정부는 갑자기 구매를 취소하겠다는 입장을 정했다. 국방예산은 한정됐는데, 도입 비용이 과도하다는 문제 제기가 일면서 무인정찰기 도입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북한과의 전면전을 대비한 육군 위주의 전력개편 분위기가 대세라는 점도 입장 변경의 배경이 됐다. 필요하면 정보는 미국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이른바 ‘연계전력’)는 것이 국방부의 바뀐 논리였다. 그러나 이 같은 기조는 최근 다시 바뀌었다. 정부가 무인정찰기 도입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무인정찰기 구매와 구매 불가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동안 글로벌 옵서버 기종이 등장했다. 글로벌 옵서버는 초도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곧 실전에 배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무인정찰기 시장이 바뀌었는데도 정부가 초기 구매 추진 당시의 성능 조건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군 요구성능(ROC)’이다. 군 요구성능에는 정찰기의 속도, 운항거리 등의 조건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군 요구성능을 충족시킬 수 있는 정찰기는 글로벌 호크밖에 있을 리 없다. 군 요구성능이 나올 당시에는 글로벌 호크가 유일한 고고도 무인정찰기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어서 글로벌 옵서버는 명함도 내밀기 힘들게 됐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옵서버는 순항속도와 탑재중량 부문에서 군 요구성능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환경 변화에도 초기 조건 고수
일각에서는 글로벌 옵서버를 구매 대상에 포함시키기 위해 군 요구성능을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나아가 전 세계를 작전대상으로 삼는 글로벌 호크를 굳이 한반도같이 좁은 공간에서 사용하는 것은 규모의 경제에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소형차(글로벌 옵서버)만 타도 충분한데, 굳이 대형차(글로벌 호크)를 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군당국은 무인정찰기가 특정 기종으로 결정되지 않았다면서 군 요구성능을 수정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여권의 고위 인사가 글로벌 호크 구매를 강력히 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한 국회 국방위원은 “현 정권 고위층들이 미국에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비싼 정찰기를 구매함으로써 미국에 선물을 안겨줘야 한다고 생각했을 듯하다”며 “그래서 현 정권 임기 내 계약을 성사시키려고 이렇게 밀어붙이는 것 아니겠나”라고 추측했다.

군사전문지 D&D포커스 김종대 편집장은 “건물을 짓다가도 여러 번 설계변경하듯이 정찰기 구입도 환경이 바뀌면 군 요구성능도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며 “현재 글로벌 호크에 대한 계약단계가 아닌 만큼 기존의 군 요구성능도 당연히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 방위사업청 등 군당국은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밝히고 있다. 군 관계자는 “글로벌 호크 도입이 결정된 것은 아니며 글로벌 옵서버에 대한 자료도 미국 측에 요청했다. 글로벌 옵서버에 대한 자료가 한국에 도착하는 대로 요구기준에 맞는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앞으로 고고도 무인정찰기로 글로벌 호크를 확정하고 글로벌 호크 도입을 위해 예산을 신청하면 국회 심의과정에서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국회 국방위 신학용 의원(민주당)은 “고고도 무인정찰기 도입은 꼭 필요하지만 수천억원 이상의 고가의 장비들이기 때문에 최대한 유리한 조건에서 협상해야 한다”며 “그런 객관적 검토 없이 정부가 졸속으로 도입하려고 한다면 향후 예산 심의과정에서 문제사업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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