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위기의 한기총, 개혁이냐 해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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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회장 선거로 불거진 ‘내부 권력다툼’ 점입가경

지난 3월 30일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이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에서 탈퇴했다. 월드비전은 한기총 산하 19개 단체(2010년 기준) 가운데 하나다. 월드비전에 소속된 실행위원(1명)과 총대(2명)는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 및 인준 과정에서 표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지난 3월 16일 오전 한국기독교연합회회관 정문 앞에서 한기총 해체를 위한 기독인 네트워크 회원들이 한기총 해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지난 3월 16일 오전 한국기독교연합회회관 정문 앞에서 한기총 해체를 위한 기독인 네트워크 회원들이 한기총 해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월드비전은 왜 한기총에서 탈퇴한 것일까. 이 단체가 4월 1일 발표한 성명서가 그 사정을 간명하게 요약하고 있다. “교회 지도자들이 정치나 분쟁에 개입하지 않고 지구촌의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섬기는 일에 진력하고자 한기총을 3월 30일부로 탈퇴했다.” 탈퇴의 목적이다. “지구촌의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섬기는 데 있어서 교회들과의 협력이 필요해 교회 연합기관인 한기총 회원으로 가입했지만 수많은 후원자들이 한기총의 문제점을 거론하면서 탈퇴하라고 요구했다.” 탈퇴의 이유다.

월드비전의 한기총 탈퇴는 최근 한기총이 출범 22년 만에 맞고 있는 위기의 산물이다. 한기총은 현재 신임 대표회장의 직무가 정지되고 직무대행 체제로 유지되고 있다. 위기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한기총 대표회장 돈선거 파문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지난해 12월 21일 길자연 목사가 대표회장으로 당선했다. 그러나 올해 1월, 정회와 속회를 반복하며 강행된 22기 정기총회에서 길 대표회장에 대한 인준이 무효로 처리되면서 사태는 내부 폭로전 양상으로 치달았다. 지난 2월 9일에는 전임 이광선 대표회장이 “돈선거로 당선됐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어 3월 10일에는 길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최요한 목사가 “길 회장에게 돈을 받아 뿌렸다”고 폭로했다. 길 대표회장의 직무정지는 지난 3월 28일 법원이 이광선 목사 측이 제기한 대표회장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인 결과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한기총 내부인사들이 선택한 방향은 ‘개혁’이다. 개혁의 중심을 자임하는 세력은 지난 3월 9일 출범한 ‘한국 교회와 한기총 개혁을 위한 범대책위원회’(범대위)다. 전임 한기총 대표회장인 최성규·이광선 목사가 공동대표위원장을 맡아 범대위를 이끌고 있다. 이광선 목사는 3월 29일 <주간경향>과 만나 “한기총의 선거문화가 더 이상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자각을 통해 범대위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범대위가 말하는 개혁의 수위는? “범대위의 목표는 금권선거를 종식시키는 것이다. 정관과 선거 절차 등 제도 개혁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바꾸고 한기총 차원의 자성운동을 벌이겠다.”

범대위도 돈선거 관행 자유롭지 않아
기자회견에서 스스로 고백한 것처럼, 이광선 목사 또한 돈선거 관행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런 그가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오히려 개혁의 대상은 아닐까. 선거 과정에서 길 대표회장으로부터 받은 5000만원을 뿌렸다고 폭로한 최요한 목사(범대위 상임부위원장)는 “이광선 전임 대표회장이 책임을 인정했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한기총 개혁세력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다르다. 지난 3월 교회개혁실천연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생명평화연대 등 10개 단체가 참여해 출범한 ‘한기총 해체를 위한 기독인 네트워크’는 범대위가 주도하는 한기총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남오성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은 “(범대위의 개혁 요구는) 한기총 내부의 권력 다툼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기총에는 2010년 기준으로 66개 교단, 4만5069개 교회가 소속돼 있다. 이 중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것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예장통합)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교단(예장합동)이다. 예장통합은 산하에 7997개 교회가 있고, 예장합동에는 1만1353개 교회가 있다. 이 두 교단을 제외하고 가장 교회 수가 많은 교단(예수교장로회 백석)의 교회 수는 3000여개에 불과하다. 66개 교단 중 한기총 가입 요건인 200개 교회에 못 미치는 교단이 31개에 이른다.

대표회장 선거 및 인준과정에서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교단 규모에 비례한다. 사실상 예장합동과 예장통합이 한기총을 양분한다고 볼 수 있다. 길자연 대표회장은 한기총 최대 교단인 예장합동 소속이고, 이광선 전임 대표회장은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예장통합 소속이다. 남 사무국장은 “길자연 목사가 대표회장으로 당선돼 인수위를 꾸리는 과정에서 과거에 기득권을 누렸던 사람들이 배제됐다. 그런 사람들이 이광선 목사를 중심으로 뭉쳐 개혁을 부르짖고 있다”고 주장했다.

3월 9일 범대위가 ‘한국 교회에 드리는 글’에서 요구한 것은 길자연 목사의 사퇴, 칼빈대(총장 길자연) 종합감사 결과 발표, 각 교단의 개혁 동참 등이다. 그러나 정작 시민들이 한기총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든 대형교회 지향, 과도한 정치 지향, 반기독교적 가치 옹호 등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한기총은 지난해 5월 25일 유엔환경계획이 4대강 살리기 생태복원 시도를 칭찬했다는 내용을 성명서에 담았고,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인 지난해 11월 25일 성명서에서는 “북한의 도발을 철저하게 억제하고 즉각 응징하여 제압하라”고 주장했다.

기독인 네트워크에서 말하는 ‘해체’란 구체적으로 한기총 산하 교단들이 한기총으로부터 탈퇴하는 것을 뜻한다. 기독인 네트워크의 문제의식에 동조하는 목소리는 한기총 산하 교단에서도 나오고 있다. 한기총 최대 조직 중 하나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예장통합) 소속 경북노회는 4월 7일 “한기총 탈퇴를 공식 안건으로 하는 안을 지난 5일 채택했다”고 밝혔다. 한기총 산하 고신 교단 소속 학생 조직인 ‘학생신앙운동’(SFC)은 3월 25일 ‘한기총해체추진위원회’(한기추)를 결성해 한기총 해체운동을 벌이고 있다. 앞서 고신 교단 미래교회포럼준비위원회는 지난 2월 28일, 한기총 해체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김영환 학생신앙운동 간사의 말이다.

고신 교단 중심 한기총 해체운동 전개
“돈선거 파문은 교회의 기준이 세상의 기준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을 온 세상에 다 까발린 사건이다. 범대위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같다. 돈선거를 했다고 고백했으면 먼저 그 사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데, 돈선거를 했다고만 하고 책임지는 게 없다. 범대위 자체가 오십보 백보다. 범대위가 한기총을 개혁할 수 있을 거라고 보지 않는다. 한기총은 개혁 가능한 수준을 이미 벗어났다.”

이광선 목사는 “한기총 해체는 기독교를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라며 “한기총은 지난 20년 동안 국가와 교회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한기총에는 자정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남오성 사무국장은 “한국 개신교 200년 역사에서 한기총 출범 후 20년이 바로 교회가 세상의 신뢰를 잃기 시작한 출발점”이라며 “한기총은 이미 자정능력을 잃었다”고 말했다.

범대위와 길자연 대표회장 측의 갈등은 회복 불능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최요한 목사는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에서 돈을 뿌리는 건 오래된 관행이다. 이번에 드러난 건 그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길자연 대표회장 인수위원장을 맡았던 홍재철 목사는 4월 8일 전화통화에서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며 “(최요한 목사에게) 정신 좀 차리라고 전해달라”고 말했다.

지난 2월 고신 교단 미래교회포럼준비위원회 성명서는 이렇게 끝난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장 23절).”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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