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물가폭등·취업불안·희망상실 문제”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대학가 등록금 투쟁노선 변화 ‘단순 동결넘어 사회적 대책 촉구’

지난 4월 4일 총학생회를 비롯한 고려대 학생들이 서울 안암동 본관 총장실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총장님 대화합시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총장 면담을 요구하며 총장실을 점거했다. 3월 31일 2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비상학생총회를 열고 등록금 문제 등 10대 요구안을 학교 측에 제시했지만 수용하지 않자 투쟁 수위를 높인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볼 수 없었던 격렬한 등록금 투쟁이다.

지난 2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4·2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시민·대학생 대회’에서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지윤 기자

지난 2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4·2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시민·대학생 대회’에서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지윤 기자

개나리 꽃이 피는 기간에만 이어지는 소위 ‘개나리 투쟁’으로 끝날 줄 알았던 등록금 투쟁이 노동계의 춘투를 방불케하는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서강대에서도 20여 년 만에 학생총회가 성사돼 1000여 명의 학생들이 등록금 동결을 외쳤다. 이화여대는 개교 이래 최초로 많은 학생들의 참여 속에 졸업필수과목인 채플(예배) 수업 거부에 들어갔다. 앞선 3월 24일 경희대에서는 2000여 명의 학생들이 모인 전체 학생총회가 열렸고, 결국 학교 측으로부터 등록금 동결 약속을 받았다.

올 대학 등록금이 유달리 크게 오른 것은 아니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 4년제 국·공립대 등록금은 지난해에 비해 1.1%, 사립대는 2.3% 올랐다. 한국은행의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인 3.5%보다 낮은 수준. 사실상 등록금 인하라고 봐도 무방할 인상률이다.

그럼에도 투쟁이 격화되는 것은 등록금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해 있기 때문이다.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국·공립대학 학·석사과정 연평균 등록금은 4717달러(미국 달러 기준 구매력지수 환산액)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사립대학의 학부·석사과정의 연평균 등록금 역시 세계 2위인 8519달러다. 연세대, 이화여대의 인문사회계열은 올 등록금을 동결했지만 연간 등록금이 835만원, 759만원으로 전체 1, 2위 자리를 지켰다.

10년새 57∼83% 인상 물가 앞질러
지난 10년간 등록금 인상폭 역시 물가인상률을 앞질러 왔다. 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공개한 교육과학기술부의 ‘학생 1인당 등록금 변동 추이’ 자료는 2001년과 2010년의 대학 등록금을 비교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국립대 등록금은 241만원에서 444만원으로 82.7% 인상, 사립대 등록금은 479만원에서 753만원으로 57.1% 인상됐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1.5%였다.

높은 등록금에 반해 대학 교육여건은 개선되기보다 오히려 후퇴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2010 대학 교육 현황 분석 자료집’에 따르면, 전임교원 1인당 재학생 수는 일반대의 경우 2005년 1인당 29.5명에서 2010년 36.2명으로, 전문대의 경우 2005년 44.1명에서 2010년 68.9명으로 악화됐다.

비싼 등록금, 낙후된 교육환경, 밀려오는 학자금 이자 등을 견디지 못한 학생들은 학교를 그만두기도 한다. 앞서 언급된 대교협 자료집에 따르면, 2000년 4년제 대학생들의 학업중단율은 1.5%에 불과했으나, 2010년에는 4.0%로 2.5배 높아졌다. 전문대의 경우 같은 기간 동안 2.3%에서 7.3%로 3배 이상으로 상승했다.

정부는 2007년 대선 당시 ‘등록금절반인하위원회’를 설치, 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리겠다는 공약을 내건 바 있다. 이후 등록금인상률과 정부의 재정지원을 연동시키는 등 등록금 동결을 유도해 왔다. 실제 서울대, 부산대, 성결대 등이 지난 3년간 등록금을 동결했다. 전체 대학 등록금 인상폭도 3년간 3~4%에 머물렀다.

지난 4일 고려대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한 채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지난 4일 고려대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한 채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올해 역시 예년과 마찬가지로 등록금 동결이 예상됐지만, 사립대 110곳 중 79곳이 등록금을 인상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운영하는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현재 비상학생총회, 수업거부, 삭발식 등 등록금 인상에 격렬히 반발하는 고려대, 이화여대, 덕성여대, 서강대, 경희대, 동국대, 숙명여대 모두 작년과 재작년에 등록금이 동결된 곳들이다. 고려대학교 본관 총장실 점거농성에 참여 중인 ‘고대녀’ 김지윤씨는 “이명박 정부에서의 물가폭등, 취업불안 등 누적된 불만이 등록금 인상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높아진 20대 투표율, 홍대 청소노동자 투쟁 등으로 20대의 사회참여 활성화라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다는 분석도 있다. 김재연 한국대학생연합 집행위원장은 “이미 작년부터 20대 청년들의 활발한 사회참여 움직임이 있었다”며 “올해 등록금 투쟁이 특히 격화된 것은 전체적 사회 흐름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동시에 여러 대학에서 학생총회가 성사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각 대학 총학생회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많은 학생들이 참석했다”고 했다.

MB정부 공약 ‘반값 등록금’ 공염불
올해 ‘춘투’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남을 위한 투쟁’도 할 줄 아는 특징을 보였다. 총장실 점거에 나선 고려대 학생들은 ‘청소노동자 처우개선’을 주요 요구안으로 내세웠다. 등록금이 동결된 연세대 학생들은 청소노동자들의 파업농성에 적극 가담, 시급과 상여금 인상을 약속받는 데 일조했다. 이화여대 학생들도 신입생, 약대생 등 일부 학생들만 등록금 인상 대상이었지만 전교생이 적극적으로 등록금 동결에 나서고 있다.

김동규 등록금넷 조직국장은 올해의 활발한 등록금 투쟁이 실질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국장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반값 등록금 현실화·청년실업 해결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국회의원들이 이를 법제화하도록 압력을 행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장 지금의 등록금 문제뿐만 아니라, 내년 총선·대선에서 대학생들의 고민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해결할 수 있는 후보들이 당선되도록 실질적인 움직임을 조직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질적인 움직임’을 위한 다음 행보도 이미 준비되어 있다. 김 국장은 “4월 셋째 주부터 숨진 카이스트 학생을 위한 추모식,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한 릴레이 1인 시위를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5월부터는 각 학생회 대표들의 삭발식과 3만배 행진 등이 계획되어 있다. 4·27 재·보선 후보들에게도 등록금 문제에 대한 입장을 물어볼 예정이다. 2011년의 대학생들은 등록금을 깎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더 나은 삶을 위한 제도를 쌓아나가고 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