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의 제일은 믿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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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431년 3월 20일 기사입니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제 <태종실록>을 춘추관에서 편찬했으니, 내가 이를 한 번 보려고 하는데 어떤가” 하니, 우의정 맹사성·제학 윤회·동지총제 신장 등이 아뢰기를, “전하께서 만일 이를 보신다면 후세의 임금이 반드시 이를 본받아서 고칠 것이며, 사관(史官)도 또한 군왕이 볼 것을 의심하여 그 사실을 반드시 다 기록하지 않을 것이니 어찌 후세에 그 진실함을 전하겠습니까”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그럴 것이다” 하였다.

책을 많이 읽은 것으로 알려진 세종도 읽지 못한 책이 있으니 그 책이 <태종실록>입니다. 아버지 태종의 업적을 평가한 기록입니다. 세종으로서는 아버지에 대해 사관들이 어떻게 평가해 놓았는지 궁금했을 것입니다. 만약 세종이 <태종실록>을 봤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럴 리 없었겠지만 표현이 잘못됐다고 수정을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왕조실록의 진실성과 가치는 땅바닥에 떨어졌을 것입니다.

권력자들도 무서워했던 것이 역사입니다. 하지만 믿을 만한 신뢰성이 없다면 역사책도 무서워할 존재가 아닙니다. 가짜 역사서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중학교 교과서 검정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개악입니다. 내년부터 사용할 모든 지리·공민 교과서에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기술돼 있습니다. 

가짜 역사 교과서는 두려워할 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믿을 만한 역사적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가짜 역사 교과서를 맹목적으로 믿고 배운 일본인들입니다. 이들에게 올바른 역사적 사실을 알려줘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본 도호쿠 대지진 이후 독도 교과서 파문이 일면서 신뢰를 생각합니다. 두 나라 간, 두 나라 국민 간 신뢰가 없기에 ‘지진은 지진, 역사는 역사’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또 한번 신뢰를 떠올리는 이슈가 부각됐습니다. 신공항 건설 백지화입니다. 선거 공약으로 제시됐지만 백지화되면서 또 한번 MB 정부의 신뢰성을 무너뜨렸습니다. 백지화된 것이 워낙 많아 열거하는 것이 번거로울 지경입니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진다면 이제 국민들은 누구를 믿어야 할까요. 최근 방사성 물질 검출, 더 거슬러 올라가 구제역 사태, 천안함 사태 등을 보면 국민들은 정부를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연 국민의 잘못입니까, 정부의 잘못입니까?    
 
믿음은 인류가 오래전부터 소중하게 여겨왔던 덕목입니다. 공자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일부 높은 자리에 있는 인사들은 요즘 ‘공자왈’ 하면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양해한다면, 이들이 알아듣기 쉬운 문투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자, <논어>를 펴십시오. 제12편 안연편 7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믿음과 경제와 군대 중에 그 중의 제일은 믿음이라.”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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